
정국이와 여주는 그 어느 커플 부럽지 않은 천생연분 커플이었다. 이 커플을 본 솔로들마다 서럽다고 할 정도로 이뻤었지.
권태기라는 말은 이 둘에게는 평생 없을 줄 알았다. 가장 큰 이유는 결혼부터 시작해서 둘을 쏙 빼 닮은 2세까지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오로지 서로에게 쏟던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서로가 아닌 한쪽이 더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 걸로 바뀌어버렸다.
그토록 부정했던, 오지 않을 줄 알았던 귄태기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 한쪽은 여주였고, 그 누구보다 정국이를 잘 알고, 그 무엇보다 정국이를 사랑했기에 차분하게 기다렸다.
짧게 지나가는 권태기겠지, 라는 생각은 점점 무뎌져 갔고. 정국이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기다림에 지쳐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날이 하루가 멀지 않게 되어서, 여주의 몸과 마음은 약해져만 갔다. 그래도 계속해서 정국이를 기다렸다. 가벼운 사랑이 아니었기에.
"정국아, 난 널 믿어"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로 정국이를 포기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 여주는 기분전환도 하면서 잠시 슬픔을 잊기 위해서 집에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던 여주. 반대편에서 다른 여자랑 웃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정국이를 발견하게 된다.

정국이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나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여사친이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한 여주지만, 정국이에게 팔짱을 끼는 여자에 여주의 발걸음이 멈췄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신이 나간 채로 빨간불인지도 모르고 길을 건너는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그만 치이고 만다.
끼이익- 쿵!
"쿨럭... ㅈ,정구..,ㄱ아..."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이 된 여주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야 해서 여주의 가장 마지막 발신자인 정국이에게 몇번이나 전화를 해서 받지 않자, 병원의 업무용 전화기로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김여주씨의 전화에 답이 없으셔서 전화 드립니다.
김여주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급하게 이송되었습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오늘 아침만 해도
웃으면서 인사했던 사람이 왜 병원에..."
"지금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니,
서둘러 병원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전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국이는 여주가 이송된 병원에 도착한다. 여주가 옮겨진 병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연 정국이는 미동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여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정국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즘 여주에게 너무 차갑게 대하고 신경을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에 서툰 여주는 항상 손가락을 칼에 베여서 다치고는 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덕지덕지 가득한 반창고. 그런 여주의 손을 살며시 잡은 정국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을 위해서 여주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는데, 항상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었던 미소를 띈 여주의 얼굴에 정국이의 눈에 아른거렸다. 그런 여주의 모습이 눈물이 되어서 정국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ㅇ,여주야... 여주야..."
"내가.., 내가... 흐윽... 미안해... 미안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걸 잃지말자.
정국이는 익숙함에 속아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여주를 잃은 것이다. 아무리 후회해도 이제 다시 되돌아갈 길은 없다.
쓰윽- 차갑지만 따뜻한 손이 정국이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울지마, 정국아. 난 괜찮아"
"ㅇ,여주야...?"
"너... 내가 보여...?"

"아흐... 여주야... 내가 미안해... 미안해..."
"정국아. 너를 만나서 난 정말로 행복했어"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서 너무 고마워"
"ㅇ,여주야... 여주야..."
"ㅇ,안으면 안 돼..."
"괜찮아. 어차피 나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없어도 잘 먹고 난 잊고 다른 사랑 꼭 찾아"
짧지만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입맞춤이었다.

"사랑해. 정국아"
스르륵- 투명하게 사라진 여주의 뒤로 삐-하는 기계음이 방안 가득히 퍼졌다.

"ㅇ,안돼... 여주야... 여주야...!!"
하얀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뛰어들어와 급하게 응급처치를 해보지만, 이미 여주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영혼에 대한 법칙:
4.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영혼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이번생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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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담]
특별편 처참하게 망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시길...💜 특별편 하나 더 남았네요 허허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