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리오스
21××년
- 백리연구실 -
“ 오늘은 어때. 아직도 기분이 별로야? ”
“ ....흐.....으윽.... 싫어요.......... ”
흰가운을 입은 남자가 아이에게 물었다. 매일 아침마다 묻고, 또 묻고 아이의 기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아이의 대답은 매일 똑같았다. 싫어요......, 싫어요. 울며 말하는 아이는 눈가가 벌게지도록 눈을 비비며 숨이 넘어갈듯 울었다. 흰가운의 남자는 그래도 물었다. 진짜 안되겠니? 이거참, 너가 자꾸 울기만하니까 옆방에선 울음소리조차 안들리는구나.
“ ...흐읍......네? ”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남자와 마주보았다. 조금 늙어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지나치게 상냥해보였다.
싸한 공기가 돌며 소름이 끼칠정도로 이질적이게.
아이는 영리했다.
하지만 고작 ‘아이 ’였다.
“ 옆방이요? .... ”
이곳에 온지 몇주가 지났을까. 아이는 처음으로 남자에게 질문을 했다. 옆방에 누가 있냐고? 그럼, 당연하지. 새파란 벽지뿐인 넓은 방안에는 아이와 남자 단둘이였고 벽 너머 감시실엔 대여섯명의 흰가운이 있었다.
“ 옆방에는 너와 또래인 아이들이 많아.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같이 얘기할 수 있을거야. ”
아이는 눈알을 또륵 굴리다 시선을 떨궜다.
“ ...거짓말, ...... 옆엔 어른들밖에 안보이는데.... ”
아이는 자신을 숨기지 못했다.
“ ....너. ”
“ 벽너머가 보이는구나. ”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역시, 널 발견한건 정말 큰 행운이야. 아이가 흠칫 떨었다. 이제 재료는 있으니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남자가 중얼거릴 때 아이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문을 향해 걸었다. 파랗게 칠해진 벽 사이 유일하게 흰 문.
“ 얘야, 거긴 너가 갈곳이아니야. 이곳에 있어야지. ”
왜요?
아이는 하려던 말을 끝내 하지않았다.
문 앞에 서서 애꿎은 손잡이만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왠지 흰가운의 아저씨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을것 같았기때문이다.
무서워.
나가고 싶어.
다시는 그곳에 가고싶지않아...
싫어.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수백번을 빌었다. 요정이 있다면 날 좀 집에 데려다달라고. 내가 당신의 정체를 못본 채 해주겠다고.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을테니까 나에게 한번만 와달라고.
남자는 구석에 쪼그린 소년을 보고 방을 나가 감시실로 들어갔다. 방안에선 보이지않고 감시실에선 투명하게 보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소년을 관찰했다.
“ 아무래도 내가 세상에 둘도없을 재료를 찾은 모양이야. ”
남자가 하하 웃었다. 세상을 다 가질것만 같은 얼굴로.
“ 박사님, 저 애는 굳이 희생시킬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이미 저 자체로도, ”
“ 김선생, 안그래도 생각할게 산더민데 쓸떼없는 소리 말게나. ”
“ ........예. ”
-
.
.
.
태형아!
김태형!
“ 야! 빨리 일어서! ”
아,
“ 뭐야, 너 왜울어? ”
지민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태형을 돌아봤다.
“ 누가 울어. ”
“ 태형이가 운다고? ”
윤기와 석진이 놀란듯 말했다.
“ 아, 아니야.. 안우러... 꿈을 꿔서그래. ”
태형이 젖은 눈가를 소매로 벅벅 비볐다.
이미 마른 눈가를 닦고 또 닦았다.
“ 그만 비벼. 더 빨게진다. ”
태형은 지민의 말에 그제서야 손을 내렸다.
“ 응... ”
연구실에서의 꿈을 꿨다.
왜,
꿈 아니라도 매일 괴로운데.
“ 무슨 꿈이길래, 일단 빨리 가자. ”
태형이 몸을 일으키고 짐을 챙겼다. 낡은 배낭안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쑤셔 넣었다. 손전등, 배터리, 초코바, 전선, 물 등. 그리고 머리끈 세개를 깨진 시계와 함께 손목에 감았다.
태형과 지민은 제일 마지막으로 건물에서 나왔다.
“ 총은? ”
태형은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곤 으쓱했다.
“ 근데, 이 차는 뭐야? ”
“ 여기 로고 보여? 벤츠. 내가 발견했다. ”
석진은 운전석에 타며 시동을 걸었다.
“ 이거 튼튼해? ”
“ 예전 차 만큼은 아니여도 꽤 쓸만할거야. ”
태형은 발로 차를 툭툭 쳐보곤 조수석에 앉았다.
“ 그러게 차를 왜 말아먹어선. ”
한숨쉬며 차에 타는 지민 옆에
윤기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씹었다.
“ 어! 나도 씹을래, 내것도 있어요? ”
마침 입이 심심하던 지민이 윤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빛나는 눈빛은 덤으로.
빨링. 내것두.

“ 석진아, 출발안해? ”
지민은 처참히 무시당했다.

“.......?”
“ ㅋㅋㅋㅋ 박지민. ”
태형은 총을 장전하다 지민 덕분에 웃음이 터졌다.
“ 아, 민윤기. 너 그걸 그렇게 무시해버리면
지민이 또 내일까지 삐진다. 귀찮아져. ”
“ 후딱 껌 줘. ”
석진이 지민을 달래는건지 놀리는건지 모를 말로
윤기를 다그쳤다.
진짜 지민이 삐지면 좀 많이 귀찮아지거든.

근데 이미 세상 속상하단 표정으로 창문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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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뉴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