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리오스
태형은 윤기의 말을 듣고 꽁지빠지게 도망가는 남자를 쫓아 잡았다. 남자는 벌벌 떨며 살려달라 빌었다. 태형은 한심하고 귀찮다는 얼굴을 하곤 그의 명치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남자가 쿨럭거리며 신음을 토했다. 으, 석진은 자기가 맞은것처럼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형이 남자의 짧은 머리칼을 쥐고 들어올렸다. 억지로 올려 마주본 남자의 눈동자엔 두려움이 요동치고있었다.
“ 사, ..살려... 제발요. 잘,.. 잘못했습니다. ”
“ 죽이려고 덤벼놓고 살려달라고? ”
태형은 짜증난다는 듯 남자를 내팽개쳤다. 됐고, 누가 시켰어. 태형이 물었다. 윤기형 하나에 전멸할 정도로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주도했을리는 없잖아. 남자는 여기서 죽는 것보다 일단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막힘없이 술술 불었다. 누군가 찾아와 시켰다, 보수로 식량을 준다기에 수락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의뢰자의 신분은 모른다는 등 이들에게 하등 쓸모도 없는 정보들만 나열했다. 윤기는 남자를 잡아먹을듯 쏘아보다 이내 탕 -,
아무 감흥없이 남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 애들에게 해가 되는 놈들은 미리 싹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해 듣고 있었더니 정말 시간낭비였을 뿐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태형은 남자의 주변으로 피가 퍼지는 시멘트 바닥을 조금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이 그런 태형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태형의 시선을 돌렸다. 뭘 보고있어.
석진은 그들이 타고있던 갈색차량에 올라타 물건을 뒤졌다. 뒷자석에 있던 가방을 열어보니 여러 총알들이 가득했다. 오올, 하며 좋아하던 석진이 가방 구석에 있는 액자를 보곤 올라가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윤기에게 죽은 남자 중 한명이 웃으며 가족과 찍은 사진이었다. 석진은 잠시 멈칫하다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액자를 차량 바닥에 던지곤 가방 지퍼를 닫았다.
가방을 들고 내려 모두에게 흔들어보였다.
야 ~ 우리 당분간 총알 걱정은 없겠다.
지민은 태형과 함께 도로를 뒤졌다. 총에 유리가 다 깨져버린 차량은 더이상 몰고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석진은 적이 타고 다니던 차는 운전하지 않는다. 그런 차들은 핸들을 잡기 싫다나 뭐라나.
“ 야, 난 저쪽 가볼테니까 넌 반대편으루 가. ”
“ 쓸만한 차 보이면 소리질러라. ”
태형은 알겠다며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보였다.
따로 찢어지기 직전 태형은 지민에게 말했다.
“ 아, 근데 너는 차 찾아도 소리지르지마. 좀비 몰려. ”
지민은 좀비걱정은 말라는 듯 너나 잘하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태형이 절 너무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꽤 걸었을까, 이상하게 좀비가 별로 없었다. 그러고보니 총소리가 울렸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뭐지? 지민이 빠르게 도로 위를 뛰었다. 뛰면서 괜찮은 차량을 눈으로 수색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출발한 지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름냄새가 났다. 주유소 기름냄샌데. 차 시동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누가 또 있나. 지민은 점점 발을 늦췄다. 조금 멀리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눈을 찡그리며 본 결과 여자 하나와 남자 둘.
으음, 좀 더 보다 갈까 돌아가서 알릴까.
지민은 그들의 말소리가 들릴만큼 적당한 거리에 숨어서 쭈그려 앉았다. 쪼금만 있다가 가야징. 혹시 모르니까, 쟤들이 의뢰인일수도. 지민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 아, 시바 - 그래서, 내가 미끼가 되라고? ”
“ 무슨 또 미끼야, 스파이라는 좀 더 멋있는 말이 있잖아. ”
“ 뭐래! 오빠는 내가 걱정되지도 않아? 더러운 놈이 걸리면 어떻하라고. 아무한테나 들러붙으래? ”
“ ...해연아. 너가 잘 만 꼬시면 우리 맘편히 먹고 살수 있는거야. 잠깐 고생 좀 하면서 우리 쪽으로 유인만 해주면 돼.
일단 이 주변에 사람이 있는건 확실하니까. 할수있지? ”
“ ... 진짜 존나.. 어이가 없어서.
알겠으니까 빨리 가. 얻은거 반은 내꺼야 알았어? ”
“ 어 그럼 ~ 당연하지. 그럼 나중에 보자. ”
남자 둘이 차를 타더니 어느새 멀어졌다. 여자 한명만 남기고 말이다. 아까부터 서로 나누던 대화를 모두 들은 지민이 엉덩이를 훌훌 털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미끼. ”
전형적인 수법이다. 힘없어보이는 사람을 한 무리에 잠입시키고 약점 파악해서 방심하게 만든 뒤에 때거지로 치는거. 아까 힐끔보기에 가진게 많은지 꽤 여유로워보이던데, 지민은 여자가 우리에게 붙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슬슬 돌아가야겠단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콰앙 -!
태형이 간 방향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아무리 좀비가 없다고 해도 저정도 큰소리면 구석에 박혀있던 좀비도 몰려나올 것이다. 김태형 혼자서도 죽진 않겠지만 최대한 체력은 소모하지 않는게 좋으니까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지민이 신발끈을 고쳐 묶고 빠르게 뛰었다.
-
한편 태형,
그는 인상을 한껏 구기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멀쩡해 보이는 차를 발견해 어찌저찌 시동을 걸어보고 괜찮나 확인해보려는데 탄내가 나더니 차가 폭발하는거 아니겠나. 그냥 작은 폭발도 아니고, 차 안에 누가 폭탄이라도 설치해놨는지 존나 크게. 까딱하면 휘말릴뻔 했지만 탄내가 날때 직감으로 차에서 벗어나 피해는 없었다. 오늘부로 차에서 뛰쳐나와 바닥에 구른게 두번째다.
한번도 승질나는데 두번? 태형은 이딴 장난치는 놈 면상보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생각하면서 손을 뚜둑뚜둑 풀었다.
지민의 예상대로 건물곳곳에 어슬렁거리던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왔다. 태형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 높은 높이임이 분명한 트럭 위 컨테이너 박스를 점프해 잡고 오직 손아귀 힘으로 휘릭 - 손쉽게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올라탔다. 좀비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서 태형은 총을 꺼내 들어 장거리의 좀비들을 쏴 죽이고 근접한거리에서 트럭위로 올라오려는 좀비들은 발로 밟아
떨어뜨렸다. 총에는 소음기가 달려있어 소리가 크지 않았다.
떨어진 총알을 느긋하게 다시 장전하는 사이 태형의 뒤에서 좀비들이 서로 밟고 밟아 올라와 태형의 종아리를 턱 잡았다.
“ 악! 미친! ”
소름끼치는 감촉에 놀란 태형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좀비 대가리에 총을 쏴대면서 제 다리를 잡은 팔을 우직 밟아 떼어냈다.
지민보다 먼저 윤기와 석진이 태형에게로 달려왔다. 석진은 트럭 위에서 여유롭게 총을 쏴대는 태형과 거의 다 죽어가는 좀비들을 보곤 굳이 안도와줘도 될 것같아 걸음을 멈췄다.
윤기는 잠시 뒤 달려오는 지민에게 차는 찾았냐고 물었다.
“ 어.. 괜찮아 보이는 차가 없었어요. ”
“ .... 삼십분동안 뭐했냐. ”
“ 하핳. 그래도 뭘 주워듣긴 했어요! ”
“ 뭐. ”
“ 쩌어기 누가 미끼를 놓고 갔는데. 우리가 물어서 확 잡아먹어버릴까요? ”
지민은 가끔 앞뒤 설명을 다 짤라먹고 자신이 이해한대로, 자기 생각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윤기는 뭔 소리야. 하며 지민의 말을 곱씹어보다 이내 미끼란 말의 뜻을 이해했다. 미끼를 잡자는건 역으로 걔네를 치자는 건데, 그 과정이 너무 귀찮단 말이지. 윤기는 별로 미끼를 물고싶지 않았다. 그딴거 안 잡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하니까. 힘드는 일은 질색인 윤기였다.

여주는 건물 4층으로 올라갔다. 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유리를 발로 깨뜨렸다. 챙그랑 -!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 밖으로 유리조각이 떨어지고, 자켓주머니에 손을 넣은 여주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재빠르게 창문 옆 벽으로 등을 기댔다.
건너편 건물에서 작은 빛을 보았다. 총구 렌즈에 의해 반사된 빛.
뭐야, 누구지. 여주는 바지춤에 걸친 총을 꺼내 장전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있던 거울을 주워 창문에 슬며시 갖다댔다.
팔을 뻗어 거울이 창문에 도달하자마자 파직 -! 총알이 관통해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다.
“ 에이씨 - ”
조준까지 다해놓고 대기중이네. 조금만 빼꼼해도 당하겠는데? 여주는 몇가지물건을 더 주워 창문쪽으로 스윽 보였다. 어떤 것에는 총알이 날라오고 또 어떤것에는 반응이 없었다. 여주는 어깨를 확 내보였다가 다시 숨었다. 바로 총알이 날라와 뒷편의 벽에 박고 튕겼다. 여주는 허리를 숙이고 계단쪽으로 향했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함이었다. 저격수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대략 다여섯명, 모두 날 노리고있다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한정적이다. ...정국인, 죽진 않겠지.

여주는 건물의 꼭대기, 뻥뚫린 옥상에 올라와 탄창을 갈아끼웠다. 낮은 콘크리트 아래 몸을 낮추고 건너편 건물을 눈으로 훑었다. 쿵 - , 쿵 - 여주의 심장박동은 빨라지긴 커녕 점차 느려졌다.
정국은 좀비들을 다 해치우곤 여주를 찾아 계단을 올랐다.
2.., 3..., 4층에 도달했을까, 계단에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멀끔한 폰이 떨어져있었다.
“ 누나 폰이 왜 여기...”
검정색, 심플한 투명케이스. 여주의 것이었다. 정국은 휴대폰을 집어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잠금같은건 없었다. 휴대폰이 켜지자마자 흰바탕에 검정글씨. 메모가 보여졌다.
[이거 들고 옥상. 대략 다여섯, 건너편 건물 스나이퍼 매복.]
통신이 안되니 메모로 남겨뒀구나.
못보고 지나쳤으면 어쩌려고 폰을 버리냐.
“ ... 그나저나, 오늘 진짜 피곤한 일 많네. ”
정국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계단을 오르며 여주의 가방에서 사탕하나를 꺼내 입안에 굴려 먹었다.
-
건너편 건물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