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남친과 동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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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자마자 보이는 퉁퉁 부은 눈이 어제의 일들이 사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사실 어젯밤 김태형과 어떤 말을 했고, 무슨 짓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우리는 오늘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남이라는 거. 간단하게 씻고 거실로 나가자 보이는 건 어제의 흔적이었다. 거실 탁자에 놓인 캔맥주 몇 캔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직도 자나… 거실에 널부러진 캔맥주들 중 절반 이상을 김태형이 마셨기에 거하게 취했을 거라 감히 예상했다. 김태형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나는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환기도 좀 시키고-.”
제 집인 것 마냥 하루만에 완벽히 적응한 나는 약간의 콧노래가 세어나왔다. 우리 집도 안 치우는데 여길 치우고 있는 내가 어이없었다. 그렇게 맥주캔을 버리고, 탁자도 닦고, 청소기도 돌리며 거실이 깨끗해졌다 싶을 때가 돼서야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하-, 오랜만에 청소했더니 힘드네.
“눈 붓기도 좀 빼야 하는데…”
다행히 몸 붓기가 빠르게 빠지는 편이라 청소하면서 많이 가라앉긴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신경쓰이는 눈 붓기에 양손을 눈두덩이 위에 올려 꾹꾹 눌렀다. 몇 분을 붓기를 빼는데 열중하다 손을 내려놓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제는 감정에 못 이겨 모든 걸 끝내긴 했는데 막상 오늘이 되니 자신이 없어진 것이었다.
“X발… 나 김태형 어떻게 보냐……”
욕이 절로 나온다. 두 눈을 감으며 이마를 짚은 나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김태형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가 머릿속에 떠다녔다. 어제의 내가 조금은 후회되는 걸지도. 너무 조용해 떠오르기 싫은 것들도 막 떠오르는 그런 숨 막히는 시간이 지금 나에게 찾아왔다.

나와 김태형은 대학생 때 만나 3년정도 꽤 오래 만났다. 나와 김태형이 스물셋이던 시절, 나는 대학교 4학년 재학생으로, 김태형은 군대를 다녀와 대학교 2학년 재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그런 우리가 쭉 만날 수 있던 건 수업도 겹치고, 우연히 만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겹치면서 과제를 같이 한다던가, 그걸 계기로 밥을 먹는다건가. 김태형과 만나는 일은 꽤 많았다. 그렇게 자주 겹치다 보니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운명이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덮쳐 매일 설레발을 쳤고, 그런 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여주야, 내가 많이 좋아해. 우리 연애하자.”
“응…!”
생각지도 못한 날 김태형의 고백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던 나였고, 고백하던 김태형의 귀가 유달리 빨갰던 것도 같다. 나와 김태형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대표 cc로 자리잡은 건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우릴 보고 하는 말이, 너네는 결혼까지도 꼭 갈 거라고. 서로 죽고 못 사는데 절대 안 헤어질 것 같다고. 매번 그랬다. 뭐, 그때는 나도 김태형도 우리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런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우리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내가 졸업을 하고 몇 개월만에 취업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김태형은 군대를 다녀오느라 나보다 대학을 2년 더 다녀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먼저 취업에 성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물론 우리 사이가 급격하게 막 나빠진 건 아니다. 내가 취업에 성공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던 사람이 김태형이었으니.
“여주야, 취직 축하해-.”
“고마워! 취직이라니… 너무 좋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것도 잠시, 나와 김태형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막내 생활인 나는 회사 일과 윗사람들 잔심부름으로 인해, 대학 졸업이 코앞인 김태형은 취업 준비로 인해 우리는 각자 인생을 살기 바빴다. 인생이 바쁜 건 좋은 거라고 하지만, 연애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내 인생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거의 수학공식 같은 것이다. 특별한 사이가 아닌 이상 일과 연애를 병행하기에 나와 김태형은 아직 많이 어렸다.
각자의 생활에 신경쓰다보니 우리가 연락하는 시간도, 만나는 시간도, 대화를 하는 시간 마저도 점점 줄었다. 겨우 시간을 내서 만나도 어느 날은 김태형이.
“상사가 자꾸 나한테 허드렛일이나 시ㅋ,”
“여주야, 미안한데 나 면접 연락이 와서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아, 응!”
어느 날은 내가 일이 생겨 약속이 깨지기 일쑤였다.
“요즘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뭐, 나름. 너야말로 회사 다니는 건 좀 어때?”
“나도 괜찮지. 근데 곧 인사이동 있을 예정이ㄹ,”
“무슨 연락인데 그래.”
“태형아,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해……”
“아니야, 얼른 가봐. 일 끝나면 연락하고-.”
우리가 만나는 건 2주에 한 번쯤, 그것도 서로에게 아무 일이 없는 때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멈춰주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미치게 바쁜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서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나와 김태형의 연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 먼저 손을 놓으면 끝나버리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바쁜 상황 탓이라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많았다. 힘들 때 옆에 있어줘야하는 존재가 연락도 안 되고, 가끔 만나도 면접이나 업무로 훌쩍 먼저 가버리고 하니 서운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우리는 서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그 정도의 시간도 투자하지 못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말이다.
“김태형, 우리 그만하자.”
“……”
“솔직히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한테 상처만 주고 있잖아. 계속 뭔가에 뒷전이고, 버려지고, 남겨지고…! 계속 반복하고 있잖아, 우리. 너랑 나, 누가 먼저 끝내자고 하면 바로 끊어질 사이 아니야?”
“그래, 그만하자.”
“……”
“위태로운 관계는 더이상 이어나가기도 힘들 테니까.”
담담했다. 나는 김태형과의 이별이 이렇게 쉬울 줄 몰랐다. 대학생 시절, 그리고 취직 초기 때만 해도 김태형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헤어지자는 말이 쉽게 튀어나왔다. 김태형 역시 나처럼 이 관계에 지친 건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뒤돌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왜였을까, 이별이 이렇게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가던 길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던 건.
“흐으, 흡… 나쁜, 끅, 새끼……”
어쩌면 나는 이날 김태형과 끝을 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김태형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만하자는 말에 한 번이라도 잡아주길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김태형을 잡고 싶었다. 내 인생에 김태형만큼 나를 좋아해준 사람이 없었고, 김태형만큼 내가 좋아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김태형에게 돌아가려는 내 발목을 자꾸만 잡은 건, 죄책감이었다. 내가 직장보다 김태형한테 시간을 조금만 더 썼더라면, 아무리 피곤해도 연락 한 번 했었으면 하는 죄책감 때문에 나는 김태형을 잡을 수 없었다.
3년간 애틋하게 사랑했던 우리는 이렇게나 손쉽게 끊어졌다. 헤어진 그날 이후, 나도 김태형도 술김이라도 서로에게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대학생 시절 그렇게 운명이라고 믿던 우연 마저도 없었다. 김태형이 없는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스쳤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현실을 바라보니 벌써 1년이 훌쩍 지나와있었다.
*
[발문]
Q. 만약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아요?
“김태형 한 사람을 미친듯이 사랑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그때보다 더 예뻐할 거고, 더 좋아할 거고, 더 사랑할 겁니다. 무조건 김여주보다 제가 더 많이 사랑할 거예요.”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시던 이별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네여… 둘의 이별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슬픈 거ㅠㅠ 댓글 한 번씩 부탁드리고,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