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수빈아. 그거 알아?
내 모든 첫 페이지는 전부 너로 시작했다는거.
너는 항상 그랬어.
바람이 불면 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 한쪽을 쓱 빼서
내 귀에 찔러 넣어 주며 물었잖아.
"여주야, 너도 이 노래 좋아해?" 하고.
솔직히 말하면, 귀가 먹먹해질 만큼 시끄러운 록 음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어.
근데 소년처럼 해맑게 번지는 수빈이 네 보조개를 보면,
이상하세 숨이 멎을 것 같아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응, 나 요즘 이 노래만 들어." 하고 거짓말하면서 말이야.
수빈이 너를 잃는 것보다 내 취향을 잃는게 훨씬 쉬웠으니까.
그날 이후로 내 플레이리스트는 온통 너의 색깔로 물들었어.
나 매운거 진짜 못 먹잖아.
근데 수빈이 네가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하면
제일 매운 단계에 고개를 끄덕였고,
주말엔 집에서 쉬고 싶으면서도 농구를 좋아하는 최수빈 너를 따라
뼛속까지 시린 체육관 스탠드에 웅크리고 앉아
네 뒷모습만 밤새 눈에 담았어.
"우린 진짜 취향도, 성격도 잘 맞는다. 그치?"
그때 네 눈을 보면서 생각했어.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바보같이 다 맞춰주고있는거야.'
근데 미련하리만큼 다정하기만 한 수빈이 너는 죽어도 모르더라.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수줍게 웃으면서 그러더라.
좋아하는 사림이 생겼다고.
그 순간 내 세상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
나를 바라볼 때의 편안한 눈빛과 다르게,
그 애의 이름을 부르는 네 눈은 잔뜻 일렁이며 빛나고 있었거든.
그래서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애써 웃었지.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하고.
그날 이후로 매일 밤 다짐했어.
이제는 내 세상에서 최수빈을 억지로라도 지워내야겠다고.
선을 지키려고 너한테 연락도 줄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몇 년 동안 우리는 단 한 통의 연락도 하지 않는
완벽한 타인이 되었어.
그렇게 너를 겨우 묻었다고 생각한 어느 새벽이었어.
고요함만 가득하던 새벽 2시에 핸드폰 화면이
밝아지면서 진동이 웅웅 울렸어.
화면속에 뜬 '최수빈' 세 글자를 본 순간,
몇 년간 꽁꽁 얼려두었던 심장이 밤하늘 아래로 가차없이 추락했어.
지독한 정적 속에서 메인 화면 위로 뜬 한 줄.
-여주야 혹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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