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소원을 빌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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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이야기




고깃 씀.









정국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그리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눈을 비빈다. 아, 오늘 알바 가야 되는데. 기지개를 한 번 쭉 펴준 뒤 씻으러 나가려는데, 살짝 열린 방 문틈 사이로 누군가 보여 잠시 멈칫한다. 그때처럼 어머니께서 반찬을 갖다 주러 오셨나? 그러나 어머니라기엔 등치도 훨씬 컸고 아버지라기엔 등치가 살짝 작았다. 그리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검은색의 상의와 하의를 입고 있었고 심지어 검은색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내 가족 중 한 명이거나 친구라면 신발을 신을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정국은 그때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이라는 것을.




정국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서 형에게 다가간다. 형, 여기서 뭐 해? 형은 정국의 물음에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곤 정국이라면 자기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달려든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형이 제압했을 때 정국은 약간의 몸부림만 쳤지 형을 제대로 떨쳐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형은 그럴 줄 알고 정국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가 달랐다. 정국은 자신을 붙잡으려던 형의 두 손목을 잡고서 힘으로 눌렀다. 그러자 형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윽…”




꽤 아픈지 얕은 신음 소릴 내며 당황해한다. 정국은 그대로 형을 넘어뜨려 제압한다. 그 탓에 형은 움직이질 못 한다. 그동안 고분고분하기만 했던 동생이, 항상 내가 이겼던 동생이 이렇게 나오니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전정우는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국이가… 날 제압했다고…? 대체 어떻게…?




“형.”




형을 부르는 정국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딘가 서글퍼 보이면서도 뭔가를 다짐한 듯 보이면서도 화가 난 듯 보이면서도 또 서글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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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고. 소중하면서도 독이 되는 존재는 이미 소중하지 않은 거라고. 그러니 도려내야 한다고.”




“……”




“그래서 난 형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기로 했어. 더 이상 품지 않으려고.”




전정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저 몸부림을 멈춘 채 훌쩍이고 있을 뿐. 정국은 그의 눈물에도 굴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리곤 전정우를 바라본다. 예전에는 우리 사이 참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국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전정우는 오열을 한다. 미안하다고. 정국은 그의 사과에 냉정하게 대답한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우린 어차피 이제 안 볼 사이 아니냐면서, 쪽팔려서라도 내 앞에 다시는 안 나타나지 않을 거냐면서, 평생 반성하면서 살라면서.




몇 분 후 경찰이 도착해 들이닥쳤다. 그리곤 전정우를 체포했다. 전정우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잡혀갔다. 정국은 그런 전정우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내일이면 어머니 생신이셔. 그건 알고 있었어? 전정우는 가던 길을 멈춘다. 정국은 그런 전정우에게 말한다. 형은 축하해 드릴 자격도 없으니 축하는 하지 말고, 그냥 반성해. 어머니 생신 전날에 도둑질을 하고 잡혀갔다는 걸. 전정우는 정국의 말에 입술을 잘근 씹는다. 그리곤 어서 가자는 경찰에 말에 군말 없이 따른다.




전정우가 경찰에 잡혀가고, 정국은 이제 모든 게 끝났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아직 월급날이 아닌데 어쩌지. 어머니 생신은 내일이고… 정국은 오랜 고민 끝에 사장님께… 그러니까 신께 월급날을 좀 앞당길 수 없냐고 정중히 부탁을 드려 보기로 한다. 그리고 자존심이 꽤 셌던 정국에겐 어머니의 생신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그런 알량한 자존심 따위 버리기로 했다.




-




“저, 혹시 지금 사장님 계세요?”




정국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부터 찾는다.




“당연히 계시지.”




먼저 와 준비를 하고 있었던 지민이 말한다.




“어디에 계세요?”




“창고에 계실걸?”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국은 창고로 향한다.




-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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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왔구나. 무슨 일이야? 날 찾아오고.”




“이미 다 알고 계시잖아요. 신이니깐.”




“그래도 네 입으로 알려 줘. 지금은 신이 아니라 사장님일 뿐이니깐.”




“저 월급날 좀 오늘로 앞당길 수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다 알고 있으면서 참 짓궂게도 구시네요.”




“하하 미안해, 미안해. 아무튼 그렇게 해 줄게. 그 대신 넌 원래의 월급날에는 못 받아.”




“네, 당연하죠. 월급날을 앞당긴 것 뿐이니까요. 그 정도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기특하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월급날 앞당겨 주셔서.”




“그래, 일하러 가 봐.”




정국은 사장님께서 아무런 고민 없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는 것에 놀라기도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약간의 미움과 분노가 아주 조금이지만 사그라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