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쟤도 같이 먹어?"
"야 분위기 개살벌해 어쩌냐?.."
앞에 말한 건 나.. 다음에 말한 건 수빈이였다.
어쩌다 같이, 아니지 우연도 아니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나한테 달려온 태현이와 범규를 챙겨 우리 반으로 온 연준오빠가 마주치자
왠지 모를 살벌한 분위기에 수빈이와 나는
존나 쫄은 상태다.

"배고프지 여주야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어어.. 응!"
아무래도 뒤에서 존나게 째려보는 눈빛들은 감당을 못 할 것 같아 냉큼 태현이를 따라갔다.
그런 나를 보던 수빈이가 눈치를 보자
연준오빠가 수빈이의 뒷덜미를 확! 잡아챘다.
넌 우리랑 먹어야지. 단호하게 말 하는 오빠의 말투에 쫄은 수빈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아 어제 네 옷..못 갔다줘서 미안해"
"아 그거 천천히 줘도 돼. 아니 안 돌려줘도 돼"
"안 돼 돌려줘야돼 너무 미안하잖아"
"귀여워.. 알았어 얼른 가자"
그 옷 존나 비싸보였단 말이야.. 안 돌려줬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뀐 태현이가 돈 내놓으라 협박하면 어째;
별 같잖은 생각을 다 하며 급식판을 들었다.
일단 밥이나 먹어야지
***

"둘이 잘 어울리네"
"뭐? 말이냐 그게?"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뭐라고"
"아오 속터져 이 새끼. 야 최수빈 뭐라고 좀 해봐"
내 옆에서 떠드는 형과 최수빈은 신경도 안 쓰였다.
묵묵히 밥 먹고 있는 여주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문득 그 옆에 있는 강태현을 바라봤다.
괜찮은 애 맞겠지.
솔직히 나도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여주 옆에 원래 내가 있어야 하는데.. 병신같이 그동안아무것도 못 하고. 그 생각을 하며 옆에 있는 물컵을 들었더니 팔이 아려왔다.
소매를 슬쩍 걷어보니 시퍼렇게 물든 멍이 사라질 생각도 없는지 자리잡고 있었다. 뭐.. 괜찮아
여주가 안 다쳤으니까 상관없지
***

"너 강태현이랑 사이 좋아보인다? 마음 좀 바뀜?"
"우리?..뭐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닌데"
"내가 그걸 물어봤냐? 어떠냐고 태현이"
"...흐음.."
태현이.. 잘생겼긴 해. 착하고 다정하고..
공부도 잘 하는 것 같고.. 아 운동도 잘 하더라
진짜 완벽한 애긴 해
"그치!! 근데 왜!! 왜 안 사귀냐고"
"뒤질래?"
"..아 미안. 그래서 결론이 뭐야"
"..."
그냥.. 모르겠다. 아직도 범규를 보면 마음이 복잡한데 어제 범규 얘기를 들었더니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건
"나 아직 연애 할 생각 없어"
내 말에 지 이마를 탁 친 수빈이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연애 할 생각 없으면 폐인처럼 살지나 마"
"..내가 왜 폐인이야"
"너 요즘 눈에 초점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거야"
"몰라.. 수업 끝나면 나 깨워."
내 마음은 뭘까. 모르겠다. 그럼 범규 마음은?
..그것도 모르겠다. 별다른 얘기도 없었잖아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우울해졌다.
.
.
.

"..일어나"
"허업!..."
뭐야.. 왜 범규가 왜 내 앞자리에 앉아있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채 주위를 둘러봤다.
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범규랑 나 빼고
아니 최수빈 개새끼가 깨워달라니까!..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
"30분 됐나"
"뭐!? 날 깨웠어야지"
"곤히 잘 자길래 안 깨웠지"
"그게 무슨-!"
"일어났으면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아니 얘가 뭐 이렇게 막무가내야
먼저 일어난 범규가 가방을 챙기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
쟤 진짜..자꾸 설레게
.
.
"범규야"
"..어?"
"나 왜 데려다줘?"
"위험하잖아"
.. 언제 이렇게 신경을 썼다고 이제와서 걱정이래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그렇지?"
"응"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데려다 줄거야"
"..."
범규가 그 말을 하며 앞서 걸었다.
다리를 절뚝 거리는게 너무 속상했다. 도대체 얼마나 맞았길래 저러고 다니냐고..
"..범규야"
"왜?"
"왜 맞고만 있었어"
"말해줬잖아..걔네가 너 건들이는 건 죽어도 싫었다고"
... 참 나.
병신 같은데 멋있다는 말은 여기서 써야하나
내 말은 왜 쳐맞고만 있었냐는 거지!..
가만히 째려보자 범규가 내 눈치를 보았다.

"너 집에 다 왔다. 나 갈게"
"어딜 가. 들어와"
"..나도?"
범규가 놀란 듯 움찔한게 보였다. 얼른 오라니까? 재촉을 하니 그제서야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파스랑.. 연고, 연고가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에 있네. 서랍 구석에 박혀있던 약을 챙겨 범규를 돌아봤다.
"앉아봐 약 발라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범규의 말을 무시하고 파스를 들으니 범규가 헛기침을 하며 소파에 앉았다. 발목을 조심스레 잡았는데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너가 관리 안 하는 것 같길래 해주는 거야"
"...응. 고마워"
"됐다. 이제 가봐"
발목에 조심스레 파스를 붙여준 뒤 몸을 일으키려는
그 때, 범규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어라
"..."
"..."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이 서로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범규의 시선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
내 입술에 머물렀다.
..이제 솔직해져야겠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소파에 기댄 범규에게 폭 안긴 자세로 입을 맞추자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끌어 안는 범규가 어색하지 않았다.
너나 할 것도 없이 서로의 혀를 찾으며 옭아매던 우리는 한참을 민망한 소리를 들으며 집중하다 숨이 찰 즈음에 입을 떼어냈다.

"그동안 속 썩여서 미안해.. 우리 다시 시작해도 될까?"
"다음부턴 절대.. 절대 용서 안 해줄거야 나쁜놈아"
범규가 내 대답을 듣고서 예쁘게 웃더니
또 한번 입을 맞춰왔다.
서로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