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는 그럭저럭 참아줄만 했다. 작년에는 우석이 속한 동아리에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아서 학교 축제 때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런저런 체험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만이였지 오전 내내 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오후에 하는 공연이 막 볼만한 것도 아니었다. 진짜 폰을 학교에서 걷어가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던 작년보다는 올해 축제가 그나마 나았다. 오전 내내 우석은 본인의 동아리 부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부원들이 잠깐이라도 돌아보고 오라고 해도 굳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진짜 난 여기 있는 게 더 편해서 그래.”
“어디에 죽치고 앉아있는 건 평소에 늘 하잖아. 축제 때는 좀 돌아다... 아니다.”
그렇게 나름 괜찮았던 오전이 지나 점심시간이 끝난 후 공연을 봐야하는 오후가 찾아왔다. 우석한테 정말 이 순간만큼 수능이 끝나서 오후에 하는 공연을 보지 않고 하교해도 되는 고3 선배들이 부러운 적이 없었다.
불만이 있는 건 불만이 있는 거고 공연을 봐야하는 건 봐야하는 거다. 얼떨결에 무대와 매우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어서 중간에 슬쩍 자리를 뜨거나 딴짓을 하기도 참 뭐했다. 다른 애들처럼 폰으로 무대를 촬영하는 척하면서 딴짓을 해야하나 싶었던 우석은 아직까지는 배터리가 충분한 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1부 공연이 끝났습니다. 20분 후에 2부 공연이 시작되는데요,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거나 할 분들은 얼른 다녀오세요.”
“참고로 2부의 오프닝은 스페셜 게스트분들이 꾸며줄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스페셜 게스트? 처음 듣는 출연팀 정보에 우석은 누군가에게 밟힌 흔적이 가득한 팜플렛을 주웠다. 아무리 팜플렛을 훑어봐도 우석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학교 학생들의 이름만 가득했다. 팜플렛에 기재하지도 않은 스페셜 게스트라니, 대체 그게 누굴까 싶었던 우석은 문뜩 누군가를 떠올렸다.
“걔가 오는거면... 팜플렛에 기재 안 할 만도 하네.”
우석은 바로 제 생각이 맞음을 확신했다. 아무리 스페셜 게스트라고 해도 팜플렛에 출연진의 존재 자체를 담아내지 않았다는 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테니까.
“뭔 스페셜 게스트? 공연 순서에 스페셜 게스트는 없었는데.”
“걔네겠지.”
“걔네? 누구?”
역시나 스페셜 게스트에 대해 의아해하는 친구는 우석과 달리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사실 굳이 잡아야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은 우석 본인이 눈치를 챘으니까. 우석은 괜히 폰으로 앞으로 더 촬영 가능한 영상 길이를 확인했다.
“자, 이제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부의 오프닝을 열어줄 스페셜 게스트분들이 2분 전쯤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이분들이 저희 학교 축제에 참여해주시다니, 너무 영광이네요. 신인 아이돌그룹 ***입니다.”
우석이 예상한대로 스페셜 게스트는 한결이 있는 그룹이었다. 설마했는데 정말로 학교 축제 무대에 아이돌로서 서는 한결이 마냥 신기한 우석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주변 사람들을 따라 폰을 꺼내서 촬영을 시작했다. 아직 무대 커튼이 조금도 걷히지 않았는데 벌써 무대 하나를 본 기분이었다.
“그럼 저희 한명씩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쇄골을 맡고 있는 이한결입니다. 반가워요!”
쇄골이라, 그룹 컨셉에 잘 어울리지는 않는 자기소개였다. 메인댄서라고 소개하면 되는데 왜 쇄골이라고 말한건가 싶었다. 그런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우석은 여전히 폰으로 영상을 찍었다.
“사실 데뷔한 이후부터 제가 여기 오면 안되냐고 멤버들이나 사장님한테나 계속 졸랐거든요. 저 잘했죠?”
자기소개할 때 사용한 단어와는 다르게 귀여운 한결의 말투나 행동에 우석의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우석은 계속 그룹 단체를 대상으로 촬영하다가 이내 한결에게 초점을 맞췄고, 카메라를 더 땡겨서 화면에 한결만이 온전히 담기도록 했다.
“앞으로 우리 한결이 잘 부탁하고요...”
“한결이? 한결이만요?”
“형 저만 얘기하면 어떡해요.”
“...한결이 잘 부탁하고 저희도 잘 부탁해요.”
마무리 멘트를 하다말고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모습에 귀엽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리더 빼고는 다 미성년자인 그룹이라서 그런지 또래 친구들 같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석은 결국 자신이 이 그룹의 팬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는 이한결의 개인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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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연습까지 다 마친 후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시침은 3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주 많이 자면 3시간 정도 잘 듯하다. 내일은 스케줄이 없지만 대신 학교를 가야하니까.
“얼른 자야 하는데 피곤은 하고 잠은 안 온다.”
“이한결 내일도 학교에서 졸겠네.”
눈을 비비면서 중얼거리던 한결은 동갑인 멤버의 놀림에 피식 웃으면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올라가 있어도 잠은 오지 않아서 한결은 벌떡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을 계속하다가 눈이 좀 아파오면 잠이 더 잘 오는 느낌이라서...보다는 그냥 문뜩 보고 싶던 영상이 생각나서 그랬다.
“학교 축제에서 공연한 거 혹시 영상이 올라왔으려나.”
철저한 비공식 스케줄이었고 스케줄 장소도 일반 학교이다보니 홈마들이 촬영을 했었을 리가 없다. 만약 홈마 중 누군가가 그때 영상을 찍었다면 그건 좀 소름돋는 일이니까. 한결은 팬계정으로 들어가서 온갖 홈마의 계정을 살펴봤다. 역시 아무도 그때 영상이나 사진을 찍지 않았고 그런 낌새도 없었다. 이번에는 그룹명과 학교 축제 날짜를 검색해봤다. 그러자 학교 학생들이 찍은 영상들이 몇 개 떴다. 누가봐도 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한결은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오, 이거 폰으로 찍은 거 맞아? 꽤 잘 찍었는데.”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그 날 영상 중 가장 잘 나온 영상을 보며 한결은 감탄했다. 그 날 총 2개의 무대를 하고 중간에 멘트 타임이 있었는데, 무대와 멘트 중 재미있는 부분의 촬영분만 뽑아낸 10분짜리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화질이 살짝 떨어지는 것만 제외하면 홈마가 올린 영상 같았다. 한결은 그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 후 그 사람을 구독할까 잠시 고민했다. 영상 소개글에 올라온 응원이나 영상 편집 정도를 봐서는 어느 정도 본인한테 관심이 있거나 팬인 사람 같아서 구독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사람의 계정이 본인의 본명으로 되어있는 걸로 봐서는 그냥 머글같기도 해서 그대로 노트북을 덮었다. 아, 완전히 덮기 전에 그 계정의 이름을 괜히 읽어봤다.
“김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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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올리고 며칠 후, 학교 축제 때의 영상들을 쭉 둘러보던 우석은 본인이 찍은 영상이 제일 반응이 좋음을 확인하고는 괜히 뿌듯해했다. 본인이 이한결의 팬이 되었다는 건 진작에 인정했다.
-한결이랑 같은 학교시구나 좋은 영상 감사해여!!
-폰캠인데 화질이 꽤 좋네요
-이날 애들 스타일링이 괜찮은데? 공식 스케줄에서 이렇게 해주지
신인이다보니 댓글이 많이 달리지는 않았다. 얼마 안되는 댓글들을 읽어보며 이 와중에 달린 악플은 과감하게 삭제하던 중 우석은 이 영상을 공식팬카페에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친, 이제 고삼인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이제 진짜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말로는 안된다고 했으면서 우석은 이미 한결이 있는 공식팬카페에 가입을 하고 등업신청도 완료했다. 등업문제도 딱히 없어서 곧 등업을 할 것 같았다. 등업신청이 잘 됐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우석은 한숨을 쉬며 로그아웃을 했다.
“왜 하필 이럴 때에 빠져서는... 하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이 끌려서 팬이 된건데도 우석은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시기도 시기지만 정말 얘를 좋아해서 팬이 된건지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로 떴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건지 애매했다. 계기가 뭐 중요한가 싶으면서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 싶어 우석은 그냥 피식 웃었다. 어차피 진심이 아니면 금방 떨어져나가겠거려니 하고 일단은 이한결을 좀 더 지켜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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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제한이 있었나봐요.. 1편을 제외하고는 자꾸 끝부분이 잘리더라고요. 그래서 나눠서 천천히 다시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