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2주차에 부상을 입었고 이번 활동기간은 2달 남짓. 근데 한결은 막방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번 활동 마지막 음방 무대라는 영상을 잠시 보던 우석은 한결이 무대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영상을 멈췄다. 한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그룹이라 그런지 한결이 없는 무대를 굳이 보고싶지는 않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영상이...”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고3 수험생 생활 중 어쩌면 가장 여유로울 기간이 찾아왔다. 사람에 따라 다른데 지금은 자기소개서를 슬슬 쓰기 시작하기도 하고, 수능이나 기타 시험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하는 시기이다. 논술 아니면 정시로 밀어붙이려는 우석한테는 그동안 하던대로 계속 하면 되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시기인 것이다.
어지간한 논술 기출 문제들은 다 풀어놔서 혹시 아직도 못 푼 문제가 있나 찾아보던 중에 한결이 생각나 우석은 한결을 검색해봤다. 가장 최근에 그룹으로 나온 예능 관련 기사가 제일 먼저 보였다. 1시간은 족히 잡아먹는 예능 영상은 대입이 끝난 후에 보기로 했으니 우선 넘기고 짤막한 영상들은 없나 영상 사이트를 들어가봤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직캠이 우석의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보니 약 한 달 전쯤 영상인데 무려 무대 직캠 영상이었다. 썸네일 속 한결의 모습이 그동안 봐온 모습과 조금 달라보여서 우석은 고민없이 그 직캠 영상을 클릭했다.
“우리 학교 다닌다는 아이돌 있잖아, 나 한 번 본 것 같아.”
“어디서?”
“등교하는데 지도하던 쌤이 갑자기 ‘이한결 파이팅!’ 이러는거야. 걔가 등교하고 있었더라고. 음, 다리 절뚝거리던데 다쳤나?”
문뜩 한 달 전에 친구한테서 들은 한결의 목격담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다고 했는데... 어쨌든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우석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음악방송에서 타이틀곡 무대가 잘리지 않고 온전히 나가면 다행인 그룹이라 수록곡 무대를 보는 건 학교 축제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학교 축제에서 한 그 수록곡도 거의 새컨드 타이틀 수준의 노래인지라 이 무대 직캠은 지금까지의 무대 영상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타이틀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 무게감이 있는 노래와 가사에 멤버들의 의상도 활동기 때보다 더 심플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상 느낌이 달라진 건 직캠의 주인공이었다.
“왜 진작에 이런 옷을 안 입혀줬던거지... 컨셉 때문에 어쩔 수 없었나.”
심플하면서도 세련되고 살짝은 섹시하기도 한 의상과 헤어가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만들었다. 많은 홈마가 있지 않은만큼 탑시드 홈마를 찾기가 정말 힘든 그룹인지라 한결 직캠 중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직캠은 우석한테는 처음이었다. 그런 홈마가 찍은 영상 속 한결의 모습도 처음인데, 새로운 홈마와 스타일링이 잠시 잠잠했던 팬심을 끌어냈다. 학교 축제 직후만큼이나 계속 한결이 보고싶어졌다. 한결의 발목 상태에 대한 의문은 잠시 잊어버릴 정도였다.
-진짜 레전드다...
-
여름방학 때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2학기가 찾아왔다. 말 그대로 공포의 2학기였다. 올해는 앞당겨진 추석 연휴 때문에 수시 접수 기간도 확 앞당겨졌다. 9월에 있는 모의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수시 접수를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자소서나 대학 상담 부탁으로 교사도 고3 학생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 논술로만 다 쓸거니?”
“안전하게 하향 지원할 그런 대학은 합격해도 안 가고 싶어서요. 제가 붙었을 때 갈 대학들은 논술 아니면 못 갈 것 같았거든요.”
“아, 그러니까 우석이 성적이... 여기 대학들이 학생부 종합으로 그래도 좀 가능성 있는 대학들인데 이 중에도 맘에 드는 대학 없으면 다 논술로 쓰고. 근데 논술로 가면 학교에서 딱히 도와줄 게 없다는 건 알지? 수능 최저 맞추는 것 말고는.”
“그럼 논술은 제가 알아서 하면 되는거죠?”
“그래. 상담할 것도 없겠네.”
논술과 수능만 선택한 우석은 긴 상담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직전 때처럼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꾸준히 하면 됐다. 자소서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선생님들께 추천서를 부탁하느라 바쁜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한가로웠다. 교무실에 죽치고 있어 수업 시간에 교실에 없는 친구들을 보니 솔직히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상담하러 가?”
“난 어느 학과를 갈지 모르겠어서.”
“어차피 같은 스카이면서.”
“그래도. 아무 학과나 갈 순 없잖아.”
학과도 대학도 다 정해놓은 우석은 정말 할 게 없었다. 그렇게 남들에 비해 평범한 하루를 보내니 대입과는 상관없는 쪽의 생각들을 하게 됐다.
“한결이가 정말 이 학교 다니나.”
그냥 우석은 뭔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결이 자신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한테 목격담이나 일화를 듣는 것만으로는 정말 같은 학교 학생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지랖인 것 같지만 왜 아이돌이 계속 일반고인 여기를 다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석은 한결이 조만간 이 학교를 어떻게든 뜰 것이라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전에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축제 때는 너무 멀리서 봤고 좀 더 가까이에서, 같은 학교 학생이라니까 스쳐지나가는 것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학년이었으면 거의 매일 마주쳤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유급당하던가. 적어도 내년에는 같은 학년일거고 같이 졸업하겠네.”
“미쳤다고 3학년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유급을 당해?”
현실적인 듯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승연의 조언에 잠시 접힌 한결에 대한 생각은 그 날 점심시간에 다시 펼칠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한결이 같은데.”
“누가?”
“저기 살짝 금발인 애 있잖아. 아, 맞네 이한결.”
처음에는 저렇게 티가 나는 염색을 하고도 아직까지 무사히 학교를 다니는 저 녀석은 누구지 싶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친구랑 대화를 나누느라 고개를 돌린 순간 확신했다. 작년 2학기 말부터 자신이 늘 궁금해했던 이한결이 저기 있다고.
“눈코입 간신히 보이는 정도인데도 잘 찾네. 난 암만 봐도 모르겠는데.”
“넌 코앞에서 봐도 못 알아볼거잖아. 내가 그룹으로 사진 주면 한결이 찾을 수 있어?”
“내가 어떻게 찾아내. 네가 힌트를 주면 모를까.”
“그럼 그렇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