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이돌

05: 뭐지?

“야, 나 이한결인 거 티나?”

“어. 너 선글라스 끼고 마스크 써도 이한결인 거 티나.”

“아니. 너가 봤을 때 말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나 아이돌 같냐고.”

“글쎄... 그냥 염색 좀 한 평범한 학생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네가 데뷔한 이후로는 학교를 막 열심히 돌아다니지는 않았잖아.”

“그런가...”


그저 그런 급식을 먹으면서 한결은 주변 눈치를 보며 옆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본인이 너무 눈에 띄거나 하지는 않냐고. 처음에는 한결의 말을 대충 넘기던 친구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한결에게 물었다.


“너 왜 이렇게 사람들 시선 의식해? 몇 달 전만 해도 안 그랬잖아.”

“...어?”

“너 그냥 누가 알아보면 알아보는거고 아니면 말고 그런거였잖아. 뭐, 누가 널 좀 알아봐주기를 바라면 모를까 지금 넌 누가 알아볼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서.”

“아 그게...”


한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예비종이 쳐서 옆 친구는 식판을 들고 급하게 자리를 비웠다. 늦게까지 급식실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급식을 해치우고 교실로 돌아가기 바빴다. 한결은 아직 다 비우지 못한 식판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남은 밥을 천천히 먹었다. 어차피 오후 수업 때는 조퇴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 5교시 이내에 교무실로 가서 얼굴만 비추면 된다. 다른 학생들이 봤을 때는 부러울 법한 상황이 한결에게는 크게 좋았던 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


“빨리 올라가자니까.”

“... 어어.”


나 빼고는 다 교실로 올라간 거 아니었나... 저 혼자만 급식실에 남은 줄 알았던지라 한결은 아직 급식실에 남아있던 다른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명찰을 보아하니 급식 첫 순서인 3학년이었다. 3학년이 이 시간까지 급식실에 남아있는 게 신기했다. 사실은 그것보다 그 두 명 중 한 명이 자신을 좀 빤히 쳐다본 느낌이 들었던 게 더 신기했다.


“보통 나 알아보는 건 2학년 애들인데... 선배 중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나?”


-


“승연이는 방송부 기장이라 밥을 늦게 먹었고, 김우석 너는?”

“속이 안 좋아서 점심 거르려고 했는데 좀 나아져서 늦게라도 먹다 보니...”

“그래, 잘했어.”


수업에 몇 분 늦었는데 오히려 밥을 먹기는 했다는 말에 칭찬을 받았다. 이게 뭔가 싶어 웃음이 났다.


3학년 2학기가 되니까 모든 교사가 진도를 마치고 자습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이게 학교인지 독서실인지. 출석만 아니었으면 학교에 올 시간에 독서실을 가는 게 차라리 효율적일 것 같았다. 이번 시간 선생님의 자습시간은 정말 자유였기 때문에 노트북이나 테블릿으로 놀고 있어도 잡지 않았다. 우석은 노트북에 저장해놓은 논술 기출 문제들의 모범답안을 암기하고 있었다. 모범답안을 공책에 그대로 옮겨적으면서 하는 공부는 참 따분했다. 계속 따분하게 공부를 하다보니 자꾸 딴 생각도 하게 됐다. 결국 교탁 쪽에서 졸고 있는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우석은 잠시 논술 모범답안 대신 다른 걸 화면에 띄웠다.


한결이 있는 그룹의 공식팬카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팬카페는 아니라 팬들이 쓴 팬레터 말고는 다 며칠 전에 본 글들이었다. 혹시나해서 그룹 멤버들이 쓴 편지를 확인했는데 한결이 쓴 편지는 몇 달 전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방문일도 1달 전이었다.


‘얘는 공카 잘 안 들어오네.’


원래 잘 안 들어오는 앤가 싶었는데 예전에 올린 편지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바쁜 일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석은 다시 모범답안을 화면에 띄웠다.


-


수시 원서접수 때문에 우석은 전산실로 갔다. 학교 내 와이파이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아서 대학 원서접수를 개인 노트북으로 하기에는 무척 불편하기 때문이다. 막 컴퓨터를 켰는데 언제 온건지 승연이 우석을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승연이 우석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후배한테 말을 걸었다.


“얘가 그 덕후야.”

“응?”

“앗 형, 그렇게 말하니까 저 선배가 당황하잖아요.”


다짜고짜 우석을 덕후라고 소개하는 승연에 우석은 어이가 없었다. 덕후가 맞기는 한데 처음 보는 후배한테 자신을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도 그렇고 대체 무슨 덕후라고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서 그랬다. 승연이 급하게 뒤에 이한결 덕후라고 덧붙이자 우석은 금방 아까의 소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석아, 얘는 김요한인데 이한결 친구래.”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한결이 절친 같잖아요. 그냥 마주치면 인사 좀 하는 사인데.”


얘기를 들어보니 요한이 원래 있던 동아리에서 승연이 있는 방송부로 옮겼는데 한결이를 좀 아는 것 같아서 바로 우석한테 데려온 것이었다. 한결의 학교 생활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한 우석이지만 막상 한결과 친하다는 후배를 만나니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한결이가 요즘 학교를 자주 나오는 것 같던데.”

“맞아요. 오늘도 등교하다가 만나서 저랑 인사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거의 매일 나오는 것 같아요.”

“김우석 너도 가끔 이한결 만나지 않아.”

“엄연히 말하자면 내가 학교에서 한결이를 본거야. 만나지는 않았지.”


확실히 요한은 한결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학교였다고 하면서 여러 일화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같은 태권도 학원을 다녔던 얘기, 한결이 댄스부에 들어가서 학교축제 때마다 공연을 했던 얘기, 데뷔조에 들어서 하교하는 한결이 벤을 탄 걸 봤다는 얘기. 인터넷에서는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얘기가 대부분이라서 원서접수는 잠시 잊을 정도로 우석은 요한이 해주는 얘기에 집중했다.


둘이 방송실에 가야한다면서 승연과 요한이 떠난 후에 원서접수를 마친 우석은 컴퓨터를 끄기 전에 공식팬카페에 접속해봤다. 오늘따라 새글이 많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개인팬카페 마냥 새로운 글들은 전부 한결과 관련된 글들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공지게시판을 확인하니 몇 시간에 올라온 공지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본문을 읽지 않고서는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공지에 우석은 불길함을 느꼈다. 보통 아이돌 팬카페에서 이런 제목의 공지는 안 좋은 주제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