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이돌

07: 상황 전환

한결은 어기적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간만에 주말 내내 늦잠을 좀 잤다고 월요일 아침이 힘겨워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껏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사람이 절반, 폰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한결은 책상에 엎드린 사람이 과반수가 되도록 했다. 아니, 그럴 뻔했다.


“너 이제 매일 학교 나오는거지?”


한결과 가장 친한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저 질문의 정확한 의도는 더 이상 연예인을 할 생각이 없냐일테다. 절대 비꼬기 위한 질문은 아니다. 탈퇴 이유가 알려진 바로는 발목 부상이니까 혹여나 속상해하고 있을까봐 돌려서 조금 밝은 질문을 한 것이다. 한결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특별한 일 없으면 이젠 매일 나와.”

“그동안은 매일 특별한 일이 있었잖아. 그래서 툭하면 조퇴하고 지각하고 결석하고.”

“그래. 이제는 매일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을거야... 나머지 출석일수라도 잘 채워야지.”

“잘 생각했어.”


너 없는 동안에 참 외로웠다면서 친구가 장난스레 툭툭 건들자 조금은 쳐져 있었던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시는 연예인으로 활동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소소한 일상은 계속될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슬플 것도 없었다.


“근데 오늘 시간표 대박이야. 내내 자야겠다.”

“정말 졸리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수업 잘 들어야지.”

“뭐야. 일반 학생이 됐다고 바로 모범생 모드 돌입이야?”


친구의 놀림에도 한결은 그저 허허 웃었다. 학교에서 최대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밤늦게까지 연습했던 것 때문에 자꾸 졸아서 선생님께 사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나름의 추억인 그 때와 지금부터는 다르게 할 거라고 결심하며 한결은 책상 서랍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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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

한 한결아

결 결국 그렇게 되었네


누가 한결의 책상 서랍에 작년 학교 교지를 넣어뒀다. 뭐지 싶어서 딱 펼쳤더니 작년 한결네 반에서 한 삼행시 페이지가 있었고 그 중에서 ‘이한결’ 삼행시가 눈에 띄게 체크되어 있었다. 삼행시 밑에는 삼행시를 만든 친구가 절대 쓰지 않았을 ‘ㅋㅋㅋㅋㅋ’가 적혀 있었다. 적어도 이 교지를 한결의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사람은 탈퇴한 그를 비웃으려고 한 것일테다. 네가 얼마 못 가 연예인 그만할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


말없이 그 삼행시를 보던 한결은 이내 교지의 페이지를 넘겼다. 생각해보니 이 교지가 나왔을 때는 아이돌 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교지를 받지도 못했다. 누가 그걸 알고 자기가 받았던 교지를 나한테 준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했다. 누가 이 교지를 자신에게 줬을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 말이다.


한결이 고개를 돌리니 괜히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결이 생각했던 딱 그 사람이다. 그냥 싱긋 웃어주고 한결은 다시 고개를 돌려 교지를 찬찬히 읽었는데, 그 전에 목차로 넘어가보니 각 기사를 누가 썼는지가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 김우석.”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번에는 페이지를 확 넘겨 맨 뒷장으로 갔다. 교지편집 동아리 부원들의 편집후기와 함께 얼굴 사진이 나와있었다. 한결은 기장이라고 그 중에 첫 번째로 나오는 우석의 사진을 잠시 쳐다봤다. 아는 사람은 아닌데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


한결의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이번 달은 2학년이 급식 순서 꼴등이고 한결은 맨 끝반이라 전교에서 가장 늦게 급식실에 들어갔다. 그 때는 보통 첫 번째 순서인 3학년이 급식실에 없는데, 오늘은 3학년이 딱 한 명 있었다.


“오늘은 진짜로 배 아파. 후, 말이 씨가 된다더니...”

“근데 오늘 메뉴가 딱 형을 위한 거잖아. 죽이랑 사과. 그니까 이것들이라도 좀 먹어.”


한결과 만나면 인사하는 그 정도 사이인 요한과 함께 급식실에 있는 3학년이 한결이 교지에서 본 김우석이었다. 아니, 그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동안 급식실에서 자꾸 보게 되었던 3학년이 김우석이었다. 자꾸 자신을 알아보는 것만 같아서 보게 될 때마다 정말 자신을 알아보는 건가 한결이 궁금해했던 3학년 선배였다. 우석의 얼굴을 직접 보니까 생각났다.


“진짜 조금 먹었네. 이래서 집에 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겠... 어, 이한결 안녕.”

“안녕.”

“...아, 좀 기다리지.”


잔반을 처리하던 요한은 한결과 눈이 마주친 후 가볍게 인사를 했는데 옆에 같이 있던 우석은 말도 없이 먼저 가버렸다. 그래도 우석이 이 상황에서 자신을 의식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너무 단호하게 지나쳐버리자 한결은 당황했다. 요한도 우석이 이럴 줄은 몰랐던건지 급식실 밖에서 우석을 붙잡고 물었다.


“형 왜 먼저 가버렸어. 내가 한결이랑 인사했는데.”

“너는 원래 걔랑 인사는 하는 사이라며. 나는 완전 남이잖아.”

“그래도 뭐 팬이라고, 응원한다고 말하지. 아니면 그냥 인사만 해도...”

“그룹 탈퇴한 애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모른 척 한거야.”

“아.”

“내가 팬이라고 말하거나 그런 눈치를 주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어쩌면 앞으로 연예인 쭉 안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한편 한결은 아까 자신을 그냥 지나쳐버린 우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 알아보는 거 맞는 것 같는데.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동안 너무 자주 눈이 마주쳤어. 근데 왜 막상 인사라도 할 수 있을 때 그냥 지나쳐버린거지. 아...’


아니면 그 선배가 그룹 팬인데 내가 그룹에서 탈퇴를 해서 화났나? 탈퇴를 결심하기 전에 앞으로 오래보자고 자신과 약속하곤 했던 팬들을 많이 걱정했던지라 한결은 어쩌면 팬일지도 모르는 우석이 많이 신경쓰였다. 그냥 팬까지는 아닌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결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