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아.. 쫌 ㅜㅠ 마중 나오지 말랬지!

#15-1 작업실

ㅇㅇㅇ
[오늘의 BGM - 윤석철트리오 "우주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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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일로 야근거리가 생겨서 늦게 퇴근 했는데, 태형이는 내가 안되보였는 지, 쉬라며 수아 재우겠다며 데리고 들어갔다. 

피곤하기도 하고... 딱히 뭔가를 더 하고 싶진 않아서, 수아랑 태형이가 저녁 먹은 흔적들을 치우고 난 뒤에 태형이를 기다리며 작업실에 그냥 앉아있었다... 저녁 때 집에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후다다닥 해치운 업무의 잔상들이 여전히 눈앞을 아른거렸다. 

컴퓨터에 들어있는 태형이의 플레이리스트들을 틀고 난뒤에 잠깐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음악을 틀어놓으니까 머릿속에 가득하던 잔상들이 소리에 샤워를 하듯 씻겨서 사라진다. 플레이리스트의 곡들이 지나가면서 예전에 태형이가 들려주던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니까 뭔가 애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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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마련한 작업실은 태형이를 위한 특별한 곳이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기 좋아하는 태형이가 작업실 겸 자취방에서 지내며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던 모습이 좋았던 나는, 태형이가 괜찮다는 대도 굳이 가장 큰 방을 작업실로 꾸몄다. 

단단히 방음벽 공사도 하고, 바닥도 울리지 않도록 신경써서 보강했다. 덕분에 드럼이며 브라스들이며 여기저기 작업실에 널어놓을 수 있었다. 

나랑 처음 보금자리를 트는 이 곳에서도 음악은 열심히 해야하니까.. 덕분에 둘이서 모은 신혼집 꾸미는 비용 대부분을 태형이 작업실에 써버렸지만 딱히 아쉽진 않았다.

그만큼 태형이가 음악하는 건 나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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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힘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던 내 베프이자 남자친구..ㅎㅎ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도 아무말 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노래하나 불러줘도 되냐고 노래 불러주고..

가사를 잘 모르겠는 어려운 영어노래였지만...
네가 어떤 마음인지 느껴져서 울었었는데...

또 어떨 땐 느닷없이 틀어준 음악들이 
네가 하는 말 같아서 너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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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태형이 기다리다보니 꽤 많은 노래가 지나갔다..


엥...??? 그런데 얘 왜 안나오지..?

잠들었나...? 
괜찮다면 와인이라도 같이 한잔 할까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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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가보니까 태형이가 수아 옆에 깜빡 잠들어있었다.


으이구 이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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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이 옆에 앉아서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기니,

태형이가 아직 잠이 덜깬 듯 부스럭거리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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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나 지금 수아 재우다가 잠든 거 맞지..? ㅎㅎ"


"응 .. 그런 것 같아..

 너 기다리면서 잠깐 작업실에 있었어...
 음악 듣다보니까, 이런저런 옛날 생각이 나더라..ㅎㅎ"



태형이는 수아 머리 밑에 있던 손목을 살짝 빼더니 조심스럽게 유아용 베게를 놓았다. 



"이리와봐~ 사랑하는 내 짝지... ㅎㅎ "



태형이가 돌아눕더니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잡아당겨 끌어안고 눕는다. 



"그래서..? 무슨 생각했는데...?"



태형이가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머.. 니가 예전에 나 우울할 때 음악 들려주고, 
 노래 불러주던 거...?

 그 모습들 다 녹음하고 녹화해둘 껄.... ㅎㅎ
 생각해보니 아쉽다.."


"에이 추억은 추억으로 흘려보내야지.... ㅎㅎ 
 
 그 때 진짜 서툴렀는데..... 
 아쉬워해주고 고맙수다 ㅋㅋㅋ..

 차라리 다시 불러줄까...?
 지금 부르면 색다를껄..?"


"그래도 그 때의 풋풋한 분위기가 그리운데..."



태형이 품에 가만히 안겨있다가 생각해보니 예전에 축제 때 녹화한 영상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맞다~ 나 너가 축제 때 처음 자작곡 불렀을 때, 
 녹화한 거 있는데, 그거 같이 보자~~^^"


"아... 나는 쑥스러울 것 같은데...그거 꼭 봐야해..?"



태형이는 나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도 않고 영 움직일 기색이 안보였다.



"가자 가자~~ 수아 잘 때 봐야지 ㅎㅎㅎ"



꽉 끌어안은 팔을 억지로 풀고, 태형이를 작업실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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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와인 한 잔씩 따라놓고는 작업실 벽면을 비추는 빔으로 영상을 보았다. 



"아 역시 옛날 모습은.. 쑥스러워.. ㅎㅎㅎ .."



컴퓨터 모니터로 영상을 보던 태형은 약간 오글거리는 듯 움찔 거리면서도 집중하며 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너무 소싯적 영상이네...



"나 노래 잘 못하긴 하는데, 엄청 애쓰는 게 보인다.... 
 정성이 갸륵하네.. ㅋㅋ

 이 때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엄청 연습했던 거 생각나.. ㅎㅎ"


"오 진짜? 나한테 보여주려고 무대 위에서 한거야..?
 난 이 때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도 너무 좋아.."


"형들이 하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너한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게 더 컸었지...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거여서
 얼마나 떨렸는지 알아...?"



오호라.. 그랬군.. ㅋㅋ 
사실 객석에서 보고 있던 나도 엄청 떨렸었는데.. ㅎㅎ



"보고 있는 나도 무대 위에 있는 너랑 눈 마주칠 때마다 
 엄청 떨리더라... 그런데 떨리는 거 진짜 하나도 티 안난
 다... 너무 프로페셔널 했는데..?

 가만가만... 지금 보니까, 
 내용이 완전 공개 고백 같은 곡이잖아..?"


"그럼~!!
 내가 가사도 멜로디도 얼마나 정성들여서 썼는데,
 
 김여주~~~ 그걸  여태 몰랐다니..약간 실망인데..?"



이제 알았냐는 태형이의 말에 왠지 미안해졌다.
아.. 하긴 그래.. 내가 눈치가 워낙 없긴 하지....



"아.. 우리 김태형씨의 화살이 나에게 꽂히고 있었서, 
 눈 마주칠 때마다 부끄럽고 엄청 떨렸던 거구나... ㅋㅋ"


"뭐래.. 그걸 이제 알다니...!! 너무해....ㅜㅠ"


"아니 무의식 중으로는 느끼고 있었지.. 

 이 날 나 완전 너한테 반해서.. 얼마나 넋을 놓았는지..

 내 친구가 나 숨 안쉰다고,
 노래 끝나고도 멍하니 있으니까, 
며칠 동안 놀려대서, 내가 진짜... 그때 생각하면 ㅋㅋㅋ"



옛 생각을 하면서 투닥거리다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 태형아, 근데 너는 나 어디가 좋았어?"


"응..? 그걸 꼭 말로 해야하냐..."



태형이가 내 허리에 감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얼~~ 이대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아니, 잠깐 근데 진짜 궁금하단 말이야..

태형이의 팔을 풀고 다시 물었다. 



"아니 .. 그게... 네 마음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진짜로 궁금해서~

 너 사실 엄청 인기 많았잖아.. 
 널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많았고...

그런데 왜 나였어...?"


"글쎄... 그건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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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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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