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짐승을 주워버렸다
w. 연탄이밥
도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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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깊숙한 숲길. 태형이 여주와 처음만났던 그 장소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와있었다. 덩치 큰 우직한 표범 한 마리가, 태형을 발견하고는 이내 사람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하는 그였다.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오다니, 의외인걸?"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야. 허튼 짓이라도 할까봐."
"멍청하긴.. 인간을 사랑하는거야, 설마?"
같잖은 표정으로 태형을 비웃는 정국이였다.
"도망쳐봤자 우리 손 안이야. 차기 수장후보가 도망이라니, 내가 다 부끄럽네-"
"말했잖아, 난 수장 그런거 관심없다고."
"네가 그렇게 나오면 안되지."
순식간에 태형의 멱살을 붙잡아 올리는 정국이다. 그 많던 여유는 어디가고,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한 매서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태형이다.
"수장이 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힘 한번 안들이고 수장자리를 물려받게 생긴 너 따위에게..."

"정국, 그만해. 목적은 이게 아니잖아."
"...."
지민의 다그침에 할 수 없다는 듯, 잡은 태형의 멱살을 세게 놓아버리는 정국이다.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고, 태형에게 타이르 듯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지민이다.
"수장님이 널 찾으셔. 지금 안가면 태형 넌 바로 수장님 손에 죽게 될거야."
"뭐..?"
"수장님이 네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계셔. 그러니까, 얼른."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금 돌아가버리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이대로 아무말없이 여주와 영원히 헤어지는건 죽는 것 만큼 싫었다.
"잠시, 아가씨한테 다녀올게."
"뭐? 한시라도 빨리 가야해. 수장님은 그리 오래 기다려주시지 않아."
"금방 올테니까, 잠시만."
그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발걸음을 다시 돌리는 태형이다. 꼭대기 층에 위치한 여주의 방. 높게 뛰어올라 여주의 바깥창틀에 안착하며 유리창을 들어올리는 태형이였다.
드르륵-

"아가씨..!"
"태형아, 어디갔었어. 갑자기 가버려서 놀랐잖..응?"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여주를 냅다 와락- 안아버리는 태형이다.
"아가씨, 잠깐 멀리..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요.."
"멀리? 어디로?"
"제가 원래 있던 곳.. 신수들의 공간으로.."
"어..?"
맞다. 태형이는 브루주아 제국을 다스리는 신수였지, 참. 그동안 일어난 일이 너무도 생생해서, 꿈만 같아서. 태형의 존재가 신수라는 것을 잠깐 잊고있었다. 자신의 품안에서 흐느끼는 태형에 그를 감싸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더욱이 여주의 목덜미로 고개를 파묻는 태형이다.
"다시 돌아올거잖아, 응?"
"....그래도 아가씨를 못본다는게.."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돌아와서 네가 생각한 너와 내 미래를 꾸려나가야지."
"꼭 돌아올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귀여운 내 고양이, 잘 다녀오렴."
이내 그의 한쪽 볼을 감싸고 입을 짧게 맞추면, 되려 입술을 다시 덮어오는 태형이다. 잠시동안 떨어져있어야 한다는게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태형을 기다릴 수 밖에. 몇 일이 되던, 몇 달이 되던, 몇 년이 되던.

"...정국, 가만보면 태형이 꼭 수장이 되어야하는건 아닌것 같기도 해."
"무슨 말이야?"
"저렇게 사랑하는 상대가 있는데. 굳이 브루주아의 수장이 되어야 할까."
"...."
밖에서 이 모든걸 지켜본 지민의 생각이 많아진다. 항상 지민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정국이였지만, 방금 한 지민의 말은 동의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아끼는 그였다.

"지민, 수장이 되기 위해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지."
"...알지. 너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수장이 될 만한 신수들은 모조리 죽였어. 신수를 죽였다는 공포감을 얻으면서도 수장이 되려 했는데.."
"...응, 다 이해해.
"태형에게 수장의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을땐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어. 수장이 되기 위해 감수했어야 할 그 많은 아픔들이.. 자꾸만 내 심장을 아프게 찌르고.."
이내 정국을 품에 안는 지민이다. 그동안 정국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알기에, 아무리 여러 신수를 죽였다해도 나무랄 수 없었다. 그의 아픔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한참을 정국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면, 그새 태형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내 정국은 다시 표범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지민은 태형을 반겼다.
"가자, 이제."
태형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앞서가는 정국이다. 뒤이어 지민과 태형이 짐승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신수들의 성지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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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을 내 앞으로 들이거라."
낮고 굵은 수장의 목소리가 신전 전체를 울렸다. 곧 신전의 대문이 열리고, 양 팔이 묶인 채 기사들에게 붙잡혀 끌려오는 태형이다. 기사들에 의해 태형은 바닥으로 던져졌고, 이내 수장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한 쪽 무릎을 꿇는 기사들이다.
"차기 수장인 태형 네가 감히.. 이곳을 도망치려하다니, 참 실망스럽구나."
"전.. 수장 자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풀어주십시오.."
"네 이놈!! 기꺼이 내 말을 거역하는구나. 좋다, 너에게 벌을 주지."
"....."
"네가 마음에 품고있는 그 여인, 지금쯤이면 이미 사지가 찢겨 까마귀 밥이 되어있겠구나."
그 한마디에, 흐트러져 있던 태형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고 큰 눈으로 수장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그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부디, 그 분만은 해치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제 인생의 전부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발.. 차라리 절 벌해주십시오, 그 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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