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조각, 한 조각

Shining stars 3화

 나는 동현이 형의 집을 나와서 대휘의 집으로 갔다. 갈 곳 없어서 밤새 고민하다가 가게 된 곳이었다. 내가 가도 되냐는 물음에 대휘는 쉽게 ‘오케이’를 했다. 이래서 좋은 친구가 적어도 하나는 꼭 있어야 된다는 것 같다. 대휘가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점이 아주 살짝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분들은 적어도 누구처럼 내쫓지는 않는 좋은 분들이니까.

 “야. 박우진, 그래서 화해는 언제 할 거야?”

 “뭔 화해.”

 “동현 선배님이랑.”

 “… 해야 되나.”

 “안 하면 뭐, 평생 내 집에서 살 생각이냐?”

 “누가 평생 산대? 돈 좀 벌면 나갈 거야.”

 “돈은 중3 때부터 벌고 있지 않았냐.”

 “그치, 근데 아직 집은 못 구하잖아.”

 “아하.”

 내가 집을 당장 구할 수 있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대휘는 정말 바보 같다. 바보.


 “아오. 더워서 뒤지겠네.”

 “야, 그래도 바람 좀 불잖냐.”

 “더운 바람이잖아. 에어컨 바람이 더 좋은데.”

 “징징 대지 말고.”

 “아니. 그래서 왜 올라온 건데.”

 “그냥 오늘은 딱 옥상 삘이 막 오는 거 있지?”

 “…… 죽을래?”

 “죄… 죄송…”

 그런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 뭐지. 마법인가. 이렇게 갑자기 시원해 진다고? 오. 근데 또 바람이 안 분다. 뭐… 뭐냐고… 내가 ‘뭐지…’하고 있는데 동현이 형이 나를 부담스러울 장도로 쳐다보고 있었다.

 “야. 그냥 내려 가자.”

 “왜. 시원한데,”

 “… 동현이 형 있어.”

 저 멀리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동현이 형이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그냥 피하는 게 답인 것 같아서 대휘한테 내려가자고 했다.


 동현이 형이랑 어릴 때부터 친했는데 그렇게 크게 싸워본 적도 없었고 동현이 형이 욕을 하는 건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놓고 오늘 갑자기 나를 엄청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뭐야. 내가 그런 사람이랑 너무 오랫동안 살아버린 것 같았다. 내가 시간을 아깝게 쓴 것 같다. 같이 있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더 뛰어서 돈이나 벌 걸 그랬다.

 “야! 박우진! 뭔 생각하냐? 점심 안 먹으러 갈 거야? 나 배고픈데… 야? 야?”

 “… 너 혼자 먹어라, 배가 안 고프네.”

 “나 혼밥 싫은데… 같이 있어주기라도 해라! 응? 응?”

 “알겠어, 가자.”

 오늘 대휘가 뭔가 좀 달라 보였다.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 내가 동현이 형한테 느꼈던 그런 것이랄까. 뭐지. 공부를 안 하니까 이런 것도 뭐라고 설명을 못하게 됐나 보다. 어릴 때 공부 좀 할 걸.

 “야… 오늘 급식 미쳤어…”

 “왜. 뭐가.”

 “고기야! 꺅! 와, 오늘 아침 안 먹고 왔는데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와, 와.”

 얘는 무슨 애처럼 점심시간이라고 계속 급식 얘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급식도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 학교 급식은 맛이 없어서 뭐가 나와도 별론데. 맨날 먹으면서 맛없다면서 급식실 갈 때는 그 기억을 다 잊나 보다. 이거 그냥 바보라 기억을 못하는 건가.


 대휘는 신나게 줄을 서러 뛰어갔다. 내가 본 대휘 중에 가장 빠른 것 같았다. 쟤가 저렇게까지 빨랐나. 나는 평소에 대휘와 앉는 자리에 앉아서 대휘가 오기를 기다렸다. 너무 안 오길래 두리번거리다가 또 동현이 형이랑 눈이 마주쳤다. 동현이 형은 좀 놀란 눈치였다. 몇 초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동현이 형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김동현 완전 나쁜 놈. 어떻게 사과 한 마디를 안 하냐. 김동현 쓰레기!

 “뭘 그렇게 보냐?”

 “아, 아니야.”

 ‘죽여버릴 거야.’라는 눈빛으로 김동현을 째려보고 있었는데 대휘가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아. 동현이 형? 그냥 가서 사과나 해, 그러지 말고.”

 “뒤질래? 내가 왜? 죽어도 안 해. 아니, 못해.”

 “하기 싫면 말아라. 니 손해지, 내 손해냐? 에휴, 바보 같은 놈.”

 “지가 더 바보면서.”

 괜히 화가 나서 대휘한테 잠깐 버럭 했다. 역시 스트레스 푸는 것은 대휘한테 해야지! 가 아니고 조금 미안했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


 “어머, 우진아! 오랜만이다! 어서 들어와.”

 “잘 지내셨어요?”

 “당연하지, 우진이는?”

 “아, 엄마. ‘어서 들어와.’라고 해놓고 못 들어오게 막고 있는 건 또 뭐야. 들어가서 얘기하게 해줄게, 잠만 비켜봐.”

 “너한테 들어오라고 안 했어. 우진이는 들어와~”

 “아, 이거 차별이야!”

 역시 대휘네 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신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어른도 분명히 있는데 왜 많은 어른은 나쁠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랑 하나도 맞지 않을까.

 “우진아, 우리 오늘 밤새울래?”

 “오, 좋지.”

 “밤새우면 또 이대휘 졸리다고 징징거릴 거잖아! 그냥 일찍 일찍 자라.”

 “아, 엄마! 우진이 이제 같이 살게 된 첫날인데!”

 “그게 뭐, 그거랑 밤새우는 거랑 뭔 상관이 있어!”

 “어… 그… 니까! 그…”

 “없지? 없지, 없지, 없지? 그러면 그냥 자,”

 “… 치,”

 어린애들이 싸우는 것처럼 엄청 유치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현이 형이랑 싸우고 나온 거라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분명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금 이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을 정도로 행복했다. 물론 동현이 형과 있을 때 불행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이 더더욱 행복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