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 허티] 쪽팔려 게임

1화. 그냥 게임이잖아

연습실에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은호와 밤비였다. 스피커에서는 이미 음악이 꺼진 지 오래였고, 바닥에는 둘이 벗어둔 후드집업과 물병만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씻으러 간다, 먼저 들어간다 하며 하나둘 사라졌고, 결국 넓은 연습실 안에는 어색할 정도로 조용한 공기만 남았다. 은호는 거울 앞에 앉아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이미 묶여 있는 끈을 괜히 풀었다가 다시 묶는 중이었다.

 

 

밤비는 그런 은호를 한참 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 뭐 해?” “신발 끈 묶잖아.” “아니, 아까부터 세 번째잖아.” 은호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느슨해서.” “안 느슨해 보이는데.” 밤비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은호는 고개를 들어 그를 흘겨봤다. 밤비는 이미 바닥에 길게 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연습복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고, 땀에 살짝 젖은 앞머리가 눈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은호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너 안 가?” “너도 안 가잖아.” “난 정리하고 가려고.” “나도.” “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보고 있잖아. 네가 정리하는 거.” 밤비가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은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원래라면 그냥 말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같이 나갔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둘 다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그런가. 아니면 연습 끝나고 몸이 풀려서 그런가. 은호는 자꾸만 옆에 있는 밤비가 신경 쓰였다. 평소에도 둘이 장난을 많이 치긴 했지만, 이렇게 연습실에 단둘이 남으면 괜히 말 하나, 표정 하나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때 밤비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야.” “왜.” “심심한데 게임할래?” 은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게임.” “쪽팔려게임.” “뭐?” 은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름부터 너무 별로였다.

 

 

 

 

밤비는 혼자 신난 얼굴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룰은 간단해. 서로 질문을 해. 대답하기 쪽팔리면 벌칙. 대답하면 넘어가고.” “벌칙은 뭔데.” “그건 그때그때 정하는 거지.” “완전 네 마음대로잖아.” “그럼 너도 마음대로 해.” 은호는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해.” “왜? 쫄았어?” “내가 왜 쫄아.” “그럼 해.” 밤비가 웃으면서 은호를 빤히 봤다. 별거 아닌 도발인 걸 알면서도, 은호는 이상하게 그 말에 쉽게 넘어갔다. “좋아. 대신 이상한 질문 금지.” “쪽팔려게임인데 안 쪽팔리면 왜 해?” “선 넘지 말라는 뜻이잖아.” “알겠어. 선은 안 넘을게.”

 

 

밤비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너무 순순히 대답해서 오히려 더 못 믿음직했다. 둘은 연습실 한가운데 마주 보고 앉았다. 거울에는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평소에는 수없이 봐온 장면인데, 오늘은 괜히 낯설었다. 밤비가 먼저 손을 들었다. “내가 먼저 질문.” “그래.” “은호야.” “왜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데.” “질문하기 전에 분위기 잡는 거야.” “하지 마.” 밤비는 웃음을 참는 얼굴로 은호를 바라봤다. “너 오늘 연습하다가 안무 틀렸지?”

 

 

은호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대답해. 틀렸어, 안 틀렸어?” 은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틀렸다. 그것도 밤비랑 마주 보는 파트에서. 순간 밤비랑 눈이 마주쳤고, 그 짧은 찰나에 박자를 놓쳤다.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안 틀렸어.” “거짓말.” “아니거든.” “그럼 벌칙.” “대답했잖아.” “거짓말하면 벌칙이야.” “그 룰은 없었거든?” “방금 생겼어.” 밤비가 너무 천진하게 웃어서 은호는 억울하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뭔 벌칙인데.” 밤비는 잠깐 고민하다가 손뼉을 쳤다. “거울 보고 자기 칭찬 세 개 하기.” “진짜 최악이다.” “쪽팔려게임이니까.” 은호는 한숨을 쉬고 거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써부터 얼굴이 뜨거워졌다. 뒤에서는 밤비가 아주 기대된다는 얼굴로 턱을 괴고 있었다. 은호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크게.” “아, 진짜.” “벌칙이잖아.” 은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말했다. “나는 춤을 잘 춘다.” 밤비가 바로 박수를 쳤다. “맞지.” “나는 노래도 잘한다.” “그것도 맞지.”

 

 

 

 

“나는…” 은호는 세 번째 칭찬에서 말문이 막혔다.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밤비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더 민망했다. 밤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 멈춰?” “생각 중이야.” “생각할 게 뭐 있어. 잘생겼다고 하면 되잖아.” 은호는 순간 밤비를 돌아봤다. 밤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은호를 보고 있었다. “뭐?” “잘생겼다고. 너 잘생겼잖아.” 연습실 공기가 아주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은호는 괜히 웃었다. 웃음이 너무 어색하게 나와서 본인도 당황했다. “그걸 왜 네가 말해.” “내가 보면 안 돼?”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해. 나는 잘생겼다.” 밤비가 장난스럽게 재촉했다. 은호는 결국 거울을 보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나는 잘생겼다.” “뭐라고?” “아, 들었잖아!” 밤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도 못 이기는 척 웃었다. 웃고 나니 조금 전의 이상한 공기는 다시 장난 속으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이번엔 은호 차례였다. 은호는 밤비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 질문.” “해.” “너 오늘 연습하다가 왜 계속 웃었어?” 밤비의 웃음이 살짝 멈췄다. “내가?” “응. 나랑 마주 보는 파트에서.” “그랬나?” “그랬어.” 은호는 생각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왜 이 질문을 했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냥 궁금했다. 밤비가 왜 웃었는지. 그 웃음이 누구를 향한 건지. 밤비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냥.” “그냥은 대답 아니야.” “그럼 벌칙 받을게.”

 

 

은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대답 못 할 정도야?”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말하면 되잖아.” 밤비는 잠깐 은호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넘기면 될 질문인데, 이상하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은호가 너무 진지한 얼굴로 안무를 하고 있어서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그대로 하면 이상할 것 같았다. 귀여워서 웃었다고 들릴까 봐. 아니, 사실 그렇게 들려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 더 문제였다. 밤비는 결국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네 표정이 웃겼어.” “내 표정이?” “응. 너무 열심히 해서.” “그게 왜 웃겨.” “귀여우니까?”

 

 

말이 나온 순간, 둘 다 멈췄다. 밤비도 자기가 뭘 말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얼굴이었다. 은호는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연습실 조명이 괜히 더 밝게 느껴졌다. “벌칙.” 은호가 말했다. 밤비가 당황한 듯 웃었다. “나 대답했는데?” “방금 그건 반칙이야.” “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잖아.” 말하고 나서 은호는 자신이 더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밤비의 눈이 조금 커졌다. 둘 사이에 다시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장난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장난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했다.

 

 

 

 

밤비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럼 벌칙 뭐 할 건데.” 은호는 고민했다. 사실 아무 벌칙이나 말하면 됐다. 애교 한 번 하기, 이상한 포즈로 사진 찍기, 멤버들 단톡방에 이상한 말 보내기. 그런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벌칙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은호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 질문에 무조건 대답하기.” 밤비가 은호를 봤다. “그게 벌칙이야?” “응.” “무슨 질문인데.” “그건 지금 말 안 해.” 밤비는 입술을 살짝 삐죽였다. “치사한데.” “네가 만든 게임이잖아.” 은호가 그렇게 말하자 밤비는 결국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아까처럼 가볍지만은 않았다.

 

 

게임은 계속됐다. 처음엔 정말 별것 아닌 질문들이 오갔다. 최근에 제일 많이 들은 노래, 멤버들 중 제일 늦게 답장하는 사람, 무대 전에 제일 긴장하는 순간. 대답하기 싫으면 벌칙을 했고, 벌칙은 대체로 유치했다. 밤비는 거울 앞에서 세상 진지하게 귀여운 표정을 지어야 했고, 은호는 물병을 마이크 삼아 삼십 초 동안 즉석 인터뷰를 해야 했다. 둘은 웃느라 바닥에 엎어질 뻔했다. 그런데 웃음이 잦아들수록 질문은 조금씩 달라졌다.

 

 

“너는 사람 좋아하면 티 나?” 밤비가 물었다. 은호는 물병 뚜껑을 만지던 손을 멈췄다. “갑자기?” “쪽팔려게임이잖아.” “티 안 나겠지.” “진짜?” “응.” “나는 나는 것 같은데.” 은호는 밤비를 봤다. “내가?” “응.” 밤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눈은 은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은호는 웃으려다가 실패했다. “어떻게 나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괜히 툴툴거려.” 그 말에 은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툴툴거린다. 그 말이 왜 자꾸 자신에게 꽂히는지 몰랐다.

 

 

밤비는 괜히 손바닥으로 바닥을 문질렀다. “아니면 말고.” 은호는 잠깐 숨을 고르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너는?” “나?” “너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티 나?” 밤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깐 은호를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는…” “응.” “잘 모르겠어.” “그건 대답 아니야.” “그럼 벌칙 받을게.” 또 벌칙. 은호는 밤비가 피하려는 걸 느꼈다. 아까부터 밤비는 정말 쪽팔린 질문 앞에서는 웃으면서 벌칙을 선택했다. 그게 괜히 신경 쓰였다.

 

 

“아까 내가 말했지.” 은호가 낮게 말했다. “다음 질문에는 무조건 대답하기.” 밤비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응. 지금.” 장난이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연습실은 여전히 밝았고, 문밖에서는 멀리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 사이만 이상하게 조용했다. 은호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 “너…” 밤비가 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은호는 질문을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잠깐 시선을 내렸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이건 그냥 게임이었다. 심심해서 시작한 게임. 대답하기 싫으면 벌칙을 받으면 되는, 유치하고 쪽팔린 게임. 그런데 왜 이렇게 진지해지는지 모르겠다.

 

 

 

 

은호는 다시 밤비를 바라봤다. “너 나랑 단둘이 있으면 어색해?” 밤비는 예상 못 한 질문이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웃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대답처럼 느껴져서 은호는 먼저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때 밤비가 작게 말했다. “어색해.” 은호의 손끝이 멈췄다. 밤비는 바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싫은 건 아니야.” 연습실 안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밤비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마주 앉은 채,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게임판 위에서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 순간 연습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났다. 밤비는 급하게 몸을 뒤로 뺐고, 은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병을 집어 들었다. 문이 열리기 직전, 밤비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다음엔 네가 대답해.” 은호가 밤비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문은 열리고 있었다. 게임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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