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차라리 마녀가 되겠습니다.

마녀를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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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알 수 없는 장소로 도착했다. 이 마녀는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뭘까. 그리고 왜 나에게 구원을 내려달라는 걸까.



내가 어떠한 구원을 내려줄 수가 있길래?



"....."



"심란한 표정은 집어넣어 둬."



"아..."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세아는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의 피가 우리 마녀들을 살려낼 수 있어."



"그게 무슨..."



"이 물 잔에 너의 피를 담아 주문을 외우면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마녀들을 깨울 수 있어."



영롱한 빛깔로 빛나는 투명한 물. 성수보다 좋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 같다.



"만약 대마녀였던 일레시아님이 깨어나시게 된다면 너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몰라."



나의... 소원?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소원이 있었던가.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다. 가문을 지켰고, 오라버니와 여주와 함께 잘 살고 있다. 더 이상 큰 걸 바라지 않고 지금을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려나.



내 마지막 소원. 사실 소원이라기엔 너무나도 가망이 없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아무리 마녀라도... 어떻게 죽은 사람을 되살리겠어?



성녀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걸.



"앞일이란 알 수 없는 법. 어차피 너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야. 오히려 너의 동족이 생기는 일이니 좋은 거 아니겠어?"



"글쎄. 내가 정말 마녀들을 살리는 게 이득이 생기는 일인 걸까. 다시 전쟁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잖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마녀들이 복수를 꿈꿔 버린다면? 또 한 번의 지옥이 열린다면?



절대 마녀들을 다시 일깨워선 안되는 일이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 너도 한때에는 인간이었고, 마녀들의 큰 적인 카르나니까."



"하지만 너는 이제 카르나이자 대마녀. 너의 힘은 절대적이다. 마녀들은 너의 허락이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너의 말을 어기고 인간들을 공격한다면 그 마녀들은 곧바로 소멸당하니까."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고작 20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몇 백 년을 살아온 마녀들이 내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절대적인 복종. 어쩌면 원망스러운 마녀의 피가 흐르는 내가... 오라버니들을,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다.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어. 다른 사람도 아닌 너에게는 특히나."



세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마녀는 원치 않는다면 원래 있던 곳으로 바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가 마녀고, 자신은 원치 않은 피가 몸에서 흐르게 되었다.



미안한 감정 따위 느끼지 않는 게 마녀라지만, 세아는 특별한 존재니까. 마녀의 적의 피가 흐르는 동시, 마녀의 피도 흘고 있으니까.



"할게. 나에게 오는 피해가 없다면... 나쁘지 않겠지."



세아는 앞에 놓여진 칼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자신의 손바닥을 베었고, 피는 곧장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피를 물 잔에 떨어트렸고 외워야 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솨아아 - !



물 잔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밝은 빛이 사그라들길 기다렸다.



"눈을 떠도 돼."



"...!"



세아는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여인에 놀라 뒷걸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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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란 거 같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는데,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여자가 나를 압도하듯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누구...시죠?"



"···대마녀, 아니, 이제는 아니지. 선대 대마녀라고 해야겠군요. 일레시아라고 합니다."



"아..."



세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단지 대마녀였던 존재일 뿐인데... 어째서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을 수가 있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동화책에는 늘 마녀가 못생기게 나왔지.



하지만 그건 나의 고정 관념. 아무리 마녀라지만, 모습만큼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별로 길게 잠든 것도 아닌데... 어색한 거 같네."



"아,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마녀들도 천천히 깨어나겠지요."



"전 대마녀가 아니에요."



일레시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다시 깨어난 이상, 제가 대마녀일 리가 없어요. 전 그냥..."



"흠, 잘 모르시나 보네요. 대마녀가 마음대로 아무나 정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자격이 갖춰진 자만이 대마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저보다 강한 힘을 가지셨기에 대마녀만 새겨지는 문양이 세아님께 옮겨져가 새겨졌겠죠."



"문양...?"



"실례할게요."



일레시아가 손을 뻗어 세라의 이마에 가져다 대자 이마에서 빛이 나더니 문양이 생겨났다. 옆에 있던 마녀는 거울을 만들어 내 세아에게 가져다 댔다.



"이 문양은 마녀들에게만 보여요."



일레시아가 완전히 문양을 넘겨주는 동시, 세아는 진정한 대마녀가 되었다. 그 누구도 무시 못 할, 아주 절대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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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적 없는데."



세아는 복잡했다. 원한 적 없는 삶.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싶지만, 인간 김세아로서의 삶 조차도 버겁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면 풀수록 왜 꼬이는 기분이 드는 걸까. 피곤해.



"충분히 입장은 이해해요. 억울한 점인 거 잘 알고 있고, 미안하기만 할 뿐입니다. 죄송해요, 이런 무거운 짐을 드려서. 욕심 많은 인간이 아무런 죄 없는 존재들에게도 피해를 줘버렸으니..."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마녀들도 아무런 죄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상황으로 이르게까지 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게 역겹다.



인간의 더러운 욕심은 한계가 없다. 추악하고 더러운 짓을 해서라도 욕구를 채우지. 과연 인간들이 떳떳하게 고개를 들 존재인가?



"어쩌면 세아님이 평화의 열쇠가 되실 수도 있어요. 인간과 마녀의 사이에 계시니, 한 쪽의 편만 들지 않는다면 모든 게 좋은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죠."



맞는 말이다. 내가 정말 절대적인 힘을 가진 거라면 나는 어쩌면 황제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황제가 마녀들도 다스리는 건 아니니까.



정말 내가 이런 자격을 가져도 되는 걸까.



두려운 마음을 떨쳐낼 수 있을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아요. 모든 게 세아님이 원하시는 대로 흘러갈 거예요. 세아님의 뜻이 모두의 뜻이 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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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믿어요."



나를 믿는다라... 이 말은 무거우면서도 여러 방향으로 긍정적인 말이 될 수가 있다. 단지, 내가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렸을 뿐.



"어쩌면 이게 내 운명일지도."



불행했던 나날들이 드디어 끝이 날 수 있는 걸까. 난 이제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싱긋



"선물을 드릴게요."



"...?"



갑자기 선물을 준다는 말에 세아는 당황했다. 선물? 혹시 아까 저 마녀가 말했던 소원을 말하는 건가.



기대 따위는 없었다. 난 소원이 없으니까. 다 이뤘으니까. 더 이상 무언갈 바라지 않는다. 욕심이 불러오는 건 끔찍한 결과물 뿐일 테니까.



"우리가 만날 날은 많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제 선물은 집으로 돌아가시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아..."



"금기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래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거 같네요."



세아는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어떠한 선물이 나를 기다리는 걸까.



"이 마녀가 데려다줄 거예요. 다음엔 공식적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앞으로의 평화를 이끌어줄 세아님. 고맙고, 미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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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집으로 들어가 보세요."



"아... 그래. 반가웠어."



"다음에 또 뵙길···."



마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마녀들을 깨우다니...



세아는 감쪽같이 사라진 손바닥 상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타다닥 - !



"공녀님!!"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뛰어오느냐."



"무슨 일이긴요, 대공님께서 점심을 같이···."



세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장난이라도 치는 건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펼치는 시녀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넌 지금 나를 상대로 장난을···."



"세아야, 어딜 그렇게 다녀오는 거야?"



멈칫



익숙한 목소리. 선뜻 뒤돌기가 무서워졌다. 뭐지?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왜.........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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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목소리!?!?!






손팅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