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했다. 모두가 기억을 잃은 것 마냥, 원래부터 아버지와 정국이가 계속 살아있었다는 듯 행동하고 말했다.
"아버지, 이번에 세아가 황실 회의에서···."
"아픈 나 대신에 회의에 참석한 것도 모자라, 그런 큰일을 해내고 오다니... 이 아비는 너에게···."
"아, 오라버니... 그만 얘기해요ㅋㅋ"
모든 게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가주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 나대신 재상이 된 남준 오라버니. 은연 기사단의 단장이 된 태형 오라버니. 황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기숙사 생활 중인 여주. 여전히 나를 향하는 태도가 그대로인 정국이까지.
마치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 것만 같다. 박지민 공작님은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나를 찾으러 왔다. 가끔은 상처를 달고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늘 내게 잔소리를 듣고 가셨지.
왜 몸이 다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길래 캐묻는 건 포기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석님!!"

"또또 뛰어오지?"
호석님이 살아있다. 나처럼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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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아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저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내 걱정을 했고, 가족들은 내 기분을 어떻게든 풀어주려 노력했다.
"세아야, 또 악몽을 꿨느냐...?"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게 뭐가 있니. 나는 단지 악몽이 자꾸 너를 괴롭히니 걱정이 될 뿐이란다."
"자꾸만... 모두가 저를 떠나는···."

"이렇게 예쁜 딸을 두고 어딜 간단 말이야."
석진은 세아의 손을 잡아줬다. 절대 너를 두고 어딜 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같이 말이다.
"이렇게 악몽을 꿔서 어쩐담... 정호석 대마법사님께 도움을 구해보는 게 좋으려나."
"아버지... 방금 뭐라고...?"
두 귀를 의심했다. 호석님도... 설마...
세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석진은 당황했지만 세아가 물어보는 거에 대해 전부다 대답을 해주었다.
정호석 대마법사님은 귀한 약재를 구하기 위해 아주 위험한 곳으로 떠났었고 얼마 전에 제국으로 돌아와 계시기 때문에 드디어 뵐 수 있게 됐다고.
"가야... 겠어요."
"뭐라고...?"
"...호석님을 봬야겠어요!"
세아는 힘겨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은 세아의 모습에 석진은 세아를 붙잡고는 알겠으니 천천히 채비를 하고 나가자며 타일렀다.
세아는 다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시녀에게 채비를 재촉했다. 그리곤 마치 멀리 떠나는 사람을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손톱을 물어 뜯었다.
"공녀님!!"
시녀가 세아를 제지했고 망가진 손톱에 속상해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진짜인지 아직도 불안하면 손톱을 뜯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시녀는 흐르는 피를 멎게 만든 후 반창고를 붙여줬고 다급해하는 세아를 위해 빠르게 채비를 끝낸 뒤 마차로 안내했다.
"정말 혼자 가겠다는 것이냐...?"
"네. 저 혼자서 갔다 올게요."
"...그래, 알겠다. 조심히 다녀오렴."
"그럼요."
마부는 세아의 재촉에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세아는 마탑으로 향하는 동안 진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심장에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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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도착했습니다."
덜컥 - !!
세아는 기사의 에스코트도 받지 않고 곧장 마차에서 뛰어내려 마탑의 입구로 향해 다가갔다.
"...대마법사님을 뵈러 왔네."
"공녀께서 어째 갑자기..."
마탑을 지키던 마법사들은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였고 황제조차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오라 가라 못하는 존재가 마법사이거늘...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온다고 해도 무려 대마법사를 만나는 건 아주 어렵다. 평민들에겐 하늘에서 별 따기 정도랄까. 마법사들은 안된다며 돌아가라고 했지만 세아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잊은 건가."
마녀. 이 한 단어면 충분할 테지. 이 제국에선... 아니, 이 세상에서 대마녀인 세아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긍지 높은 마법사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만큼은 치사하게 나가야 될 거 같은데."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대마법사님께 말씀을 드리도록···."
저벅 저벅 -
"감히 어떻게 대마녀를 기다리게 할 수 있겠나."

"나를 오라 가라 할 자격이 있으신 분 아닌가?"
"...호석님."
세아의 떨리는 동공. 빠르게 뛰는 심장. 지금 감정은 절대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있었을 수도 없었겠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고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함이 끊이지 않는다.
"왜 울ㅇ..."
"흐윽..."
세아는 곧바로 호석에게 안겼다. 그렇게 매일을 눈물을 흘려 보냈지만 아직도 흐를 눈물이 남았나 보다. 서러움이란 서러움을 다 울분 토해내며 울었다.
"이렇게 예쁜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은데."
"...!?"
호석은 세아를 번쩍 안아 들었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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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ㄴ, 내려줘요...!"
버둥거리는 세아를 살며시 내려준 호석. 세아는 훌쩍이며 호석을 올려다 봤다.
"뭐가 그렇게 슬퍼서 우셨을까나~?"

"그게..."
"내가 살아있어서 너무 놀란 건가."
멈칫
세아는 순간 눈물 닦던 손을 멈춰세웠다. 능글맞은 표정으로 내뱉은 말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분명 죽은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긴 해."
"도대체 어떻게...?"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는 쉽게 죽지 않거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호석은 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그때 너한테 보여주면 안 될 모습을 보여줬어. 많이 힘들었지?"
"말도 안 돼..."
호석은 분명 자신이 죽었는데 죽기 전으로 돌아와 당황했다. 그리고 그때 신의 목소리를 들었지. 네가 이렇게 죽기에는 억울하지 않겠냐는 소리를.
흑마법을 사용할 거라는 걸 알게 된 호석은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죽지 않고 전쟁을 이길 수 있었다.
호석은 세계의 흐름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세아가 자신을 찾아올 때를 기다리며 제국을 떠나 있었던 것이었고, 도대체 어떻게 신의 목소리를 들었고 기억을 잃지 않았는지는 세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신의 영역에는 다른 존재가 손을 대면 안 되거든.
"전 호석님이 살아계시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진짜..."
"앞으로 절대 네 눈에 눈물을 흘리게 두지 않을 거야. 네가 울면 내가 많이 슬퍼서 말이야."
"저야말로 더 이상 그 누구도 잃지 않을 거예요."
세아의 굳건한 표정과 눈빛에 호석은 웃었다.

"...보고 싶었어."
"저도요...ㅎ"
서로 껴안아 따뜻한 온기를 나눴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사람의 손길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잊지 못할 순간으로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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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