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소굴
범규의 흥미대상

쿠션베개
2025.10.09조회수 39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형제들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규모 건설회사 후계자였다.
한마디로 재벌중 재벌인데... 그러니 더 부담스러웠다.
자기들 다니는 사립학교로 강제전학까지 가게 됐으니.
게다가 밥을 먹을때나 학교를 갈때, 심지어 잠잘때조차
감시하는 인원이 있는가하면, 학교 내부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받아야 했다.
정말 내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것 같았다.
"최범규 너가 얘랑 같은 학년이니까 잘 살펴라."
"어. 안 내빼게 잘 지켜볼게."
고등학교 2학년인 수빈과 3학년인 연준은
학교 내에서 날 감시하는 역할을 범규에게 일임했다.
이놈은 더 껄끄러워서 싫은데 말이지.
그리고 자꾸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고!
누군가 좀 안말리냐.
"임여주 네가 앞장서서 걸어."
"내가 왜?"
"혹시라도 도망가면 빨리 잡아야하니까."
왠지 그럴거같더라... 나는 순순히 앞장서 걸어갔다.
"아.. 뒤에 있으면 눈을 못보네."
또 눈타령인가. 왜이리도 눈에 집착하는거지 원.
가까이 있는것도 싫어 최대한으로 속도를 내어
잰걸음으로 걸었다. 하여튼 요상한 새끼.
그러다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범규 때문에 그만
소릴 빽 질러버렸다.
"아니 좀!!"
"여기서 보니까 눈이 엄청 새까맣네? 밤하늘같이."
"뭐라고??"
"눈동자 예쁘다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지만
그 말은 진심처럼 들린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오른쪽눈이 망가져서 색이 거의 없거든."
범규는 곧 오른눈의 갈색 렌즈를 빼서 내게 보여줬다.
놀랍게도 그 안구는 혼탁한 상태였다.
"왜 그런거야? 혹시 병인건가?"
"시간되면 네 부모한테나 물어봐."
우리 부모님이 대체 어떤 짓을 저질렀기에.
나한테 말을 못할 정도의 극악무도한 일인건가?
"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 그놈들을
닮았는지 아닌지."
"그닥 나쁜일 한건 없어."
"두고보면 알아."
그 얼굴을 더 보고싶지 않아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교과서를 꺼내는
순간까지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러고
지낼순 없는데. 도망갈 방법을 모색하야겠어.
그때 급하게 문제집을 꺼내다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이씨."
문제집을 주우려는데 누군가 그걸 발로 차버리고
가는것 아닌가. 위를 올려다보니 웬 덩치큰 남자애와
팔짱을 끼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애가 서있었다.
조소를 띄운채로 위아래 훑어보는게 보통 성질 더러운
놈들이 아니다.
"전학생 뭐해? 빨리 안줍고."
전학 온지가 그저께인데 아직도 전학생이래.
어휴. 더러워서 피한다 내가.
범규 쪽을 슬쩍 보니 그는 흥미롭단 얼굴로
턱밑을 쓰다듬는 중이다.
"넌 좋겠다. 기초수급자인데 성적빨로 들어올수
있어서."
"누가 그딴말을 해?"
"척 보면 다 알지. 너 면상에 싼티 존나 나거든.
네가 뭔데 학교 물을 흐려?"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남 어깨를 세게 밀쳐
넘어뜨린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교무실로 불려갔고
된통 혼났다. 먼저 시비건건 여자애인데 왜 나만
혼난건지는 어이없는 계기로 알게되었다.
그 여자애가 학교 이사장 손녀라나 뭐라나?
하여튼 돈과 빽으로 얼룩진 세상같으니라고...
눈물을 흘리고싶은 심정이다.
수업이 다 끝난후 또 그놈들네 집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하루가 참 길다.
그리고 그 애는 아침때와 같이 또 불쑥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야 너도 밟히고는 못사는 성격인가보네.
나도 그런데."
"지금 시비걸어?"
"응? 시비는 무슨. 비록 인질이긴 하지만
나하고 잘 맞을거 같아서 한 말이야."
"너 나한테 별 관심없지않나."
"전혀? 뭐랄까. 넌 좀 신기해. 계속 보고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어."
놀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번뜩이는 모습이
영 켕겼다. 내가 그의 어떤 부분을 자극시킨걸까.
"그래서 다음에 그냥 선심 쓰는척 해보려고."
"다음 언제."
"글쎄? 나는 내 위주로만 움직여서."
지독하게 이기적인 새끼. 뭘 바라냐.
한숨이 깊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