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시점,
여주가 죽은 후 연준은 밤새도록 울었고 그 때문인지 인간계엔 한동안 때 아닌 우기가 계속되었다.
슬퍼할 새도 없이 연준에겐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기 위한 혼담들이 오갔다.
이번엔 인간이 아닌 신과 결혼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연준은 그 모든 것들이 귀에도,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끊어졌는지도 모를 붉은 실의 자국과 새끼손가락에 낀 낡은 은반지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연준을 가까이서 챙기는 것은 휴닝카이였다. 그들에게 운명을 강요하긴 했지만 휴닝카이 또한 그들의 운명이 너무 가혹하다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주가 휴닝카이가 아주 아낀 아이였기 때문이다.
“ 이거 좀 먹어 ”
“ .. 꺼져 “
“ 지금 며칠 째 그러고 있는지 알아? ”
“ .. 그럼 그냥 잘 살아? 행복하게? ”
“ 하지만..! ”
“ 뭘 하던 걔가 자꾸 생각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
“ … ”
“ 같이 밥을 먹었을 때, 같이 산책을 했을 때, 웃고 울었을 때.. 그 모든 게 다 생생한데 ”
“ 하.. 대체 “
신으로의 연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 지금 혼담이 오가는 건 알아? ”
“ 뭐..? “
” 이번에도 거절하면 그땐 형을 신의 자리에서 강제로 내리겠다고 난리야 “
” ..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
” 뭐?! 진짜 미친거야? “
“ .. 다 이 자리가 문제야, 다 문제라고 ”
연준은 자신의 운명을 탓했다. 여주와의 슬픈 운명은 물론 자신이 태어난 ‘신’이라는 운명 또한 탓했다.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여주와의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또 여주가 그렇게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시 찾아온 겨울을 연준은 혼자 보내었다.
아주 긴 겨울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리 깜깜하고 어두운 것이라고
“ 뭐라고 했어? ”
“ .. 다시 하겠다고 했어. 대신 인간이랑 한다고 ”
“ 그럼 다시 내려가는거야? ”
“ 그래야지. 너도 얼른 짐 싸 ”
“ .. 이번엔 제발 내 말 좀 들어 ”
“ .. 알았어 ”
외부의 압박에 의해 결국 연준은 재혼인을 받아드렸다. 대신 그 세계 존재와의 결혼이 아닌 또 다시 인간과의 혼인을 하기로 했다.
미련이라면 미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주가 환생했는지 계속해서 휴닝카이에게 물어보았지만 휴닝카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서 잊으라는 말만 되뇌일 뿐.
혹여나 자신이 겨울잠에 빠져있을 때 환생하진 않았을까 싶었다.
육체가 죽은 후 살아난 혼은 아무런 이름도,모습도 없다. 다시 내려가 모든 것을 부여받는데 연준은 그저 내려가도 되는 혼인지 아닌지만 결정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여주를 환생시켰는지 안 시켰는지 알 수 없었기에 연준은 매우 두려웠다.
결국 연준은 인간계에 내려가기 위한 채비를 마쳤고
손가락에 있던 은반지를 빼려는 그때,
드르륵,
“ 그것도 빼려고? ”
“ .. 무슨 상관이야 ”
“ 이제.. 완전히 있겠다는거지? ”
“ .. 새 신부에게 예의가 아니니까 ”
“ 참.. 그 은반지가 잘 어울리던 아이었는데 “
” .. 맞아 “
연준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연준과 휴닝카이는 함께 다시 인간계로 내려갔다.
“ 아니! 어떻게 소개시켜준 인간들을 다 차버려? ”
“ 마음에 안 드는 걸 어떡하라고 ”
“ 애초에 혼인 할 마음이 있기는 해?! ”
“ .. 있어, 있다고 “
” 허.. 진짜 마지막 인간도 차면 그땐 그냥 내가 그 실 아무나 확 엮어버릴 줄 알아 “
” 아 알았어..! 나 머리 식히러 밖에 나갔다 올게 “
” 얼른 와! “
연준은 휴닝카이의 잔소리로 인해 무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고 목적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연준 시점,
스윽,
“ .. 하 걸어서 온다는 곳이 여기냐 ”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곳은 다름 아닌 여주를 처음 만났던 지하철역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여주가 서 있던 그곳으로 갔다.
” .. 진짜 한 눈에 반했었던가 “
그때,
스윽,
“..!!”
“ 아흐.. 갑자기 추워졌냐 “
순간 내 앞에 한 여자가 서자 끊어져 없어졌던 자신의 붉은 실이 다시 길어져 그 여자의 새끼손가락과 연결되었다.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혹시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일까
그때,

“ .. 머리를 식히러 간다는 곳이 여기였어? “
” 야.. 나 연결됐어 “
” 뭐가? “
” 저.. 여자랑 실이.. “
” .. 형 ”
“ 어? ”
“ 그 실은 여주와의 혼이 아니면 다시 생기지 않아 ”
“..!!”
“ 저 아이가.. 여주의 혼인가봐 ”
그렇다. 한 번 이어진 붉은 실은 그 상대가 아니면 또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그 여자아이의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 뭐야 이번엔 청혼 먼저 안 해? ”
“ .. 또 했다가 그러면.. ”
“ 왜? 이번엔 죽을 운명도 아니잖아 “
“ .. 하지만 ”
그때,
스윽,
“ .. 이봐요 “
“ ..!! “
” 지금 혹시 저 보고 그런 말 하시는 건가요? ”
” … “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여자의 얼굴이 여주와 똑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얇지만 선명한 쌍커풀과 살짝은 올라간 눈매까지
“ 정말.. 이번엔 먼저 찾아왔구나 “
“ 뭐요? 아니 아까부터 자꾸 반말도 하시네 “
“ … ”
“ 저 아세요? “
” .. 응. 알아 “
” 아까부터 보니까 사람 같진 않던데 대체 정체가 뭐에요? “
그때처럼, 그때와 똑같이 다시 찾아왔다.
“ 나? 나는.. ”
“..?”

“ 신, 나 신이야 “
” .. 미친놈이세요? “
그때와 똑같이 우린 운명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다시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다.
“ 아니.. 그쪽 성함 말고 정체가 뭐냐고 ”
“ .. 신이야, 전지전능하다는 그 신 ”
“ 허.. 진짜 ”
너와 연결된 선명한 붉은 실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우린 운명이라는 것을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참 아름다운 운명이라는 것을
“ 반지는 뭐에요? 뭐 여자친구라도 있어요? ”
“ 응. 아주 예쁜 사람이야 ”
“ 허.. 신이신데 여자친구는 사람인가봐요 ”
“ 맞아. ”
“ 아무튼 다음부터는 남 얘기 막 하지 마세요. “
그 말을 뒤로 여주는 옆쪽 지하철을 탔고 난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어져있는 붉은 실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긴 겨울잠이 끝나자 정말 먼저 내게 찾아온 니가 너무 좋아서
전과 변함없이 너다운 모습이 너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