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0단계. 로맨스

공백zer0
2023.09.11조회수 13
.
.
.
.
겨우 100층도 채 되지 않는 어둑한 잿빛 빌딩들의 숲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광장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단내에 홀린 개미 떼처럼 모여들었다.
[ 살인 안드로이드 『JK-970901』해체 및 폐기 ]
- JR 엔지니어링 -
그 많은 인파를 단번에 끌어모은 연청색 홀로그램 아래에는 거대한 무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 무언가가 모두의 눈길을 향하게 했다.
언뜻 보기엔 사람의 인영을 닮은 듯한 그것은 마치 십자가형을 선고받기라도 한 것처럼 두 팔이 벌려진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아, 아, 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단 1%의 채도도 허락하지 않은 검은 무채색의 정장을 제 몸 위에 껴입은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무대 앞 관중들에게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을 향해 수백 개의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마치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내뱉는다면 당장 온몸을 꿰뚫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리겠다는 듯이,
“지난 11월경 모두를 안쓰럽게, 그리고 분노하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이 안타깝고 괴로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고 언뜻 듣기엔 물기 어린 듯한 싶은 음성은 나지막이 마이크를 타고 군중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번 일에 대해 피해자 분들을 향한 죄송한 마음이 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본사는 해당 안드로이드를 위험 요소로 판단하여 이 자리에서 이를 해체 및 폐기 처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자는 이후로도 수많은 말들을 길게도 늘여놓았고 그의 말이 "이상이었습니다."라고 끝맺음을 맺자 거대한 망치를 든 장정 대여섯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콰앙-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타격음을 시작으로 무대 가운데 매달려있는 로봇에게로 커다란 망치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고 가뜩이나 잔뜩 헐어있던 고철이 망가져 내릴 때마다 군중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처참히 무너져내려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렸고 또다시 서너명의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그 부품들을 주워다 약품이 가득 채워진 통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러자 약품에서 부글부글, 하며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기포가 올라오더니 기계 부품들이 부식하며 녹아내렸고 끝내 그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JR Engineering,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살인 안드로이드 『JK-970901』해체 및 폐기 식 거행, "무의미한 퍼포먼스 아니냐" 비판 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