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단편선

나팔꽃은 언제부터인지 시들어가고 있었다




맛보기 작 인데요~

아마 이 작에서는 이것 처럼 감성글 비스무리 한게 올라갈 예정 입니다!


제가 이전에 다른 사이트에서 썼던 글 입니다. Heimish가 아닌 다른 닉네임이 쓴 것을 발견한다면 신고 해주세요.

















이별은 예쁜 사랑을 했거나, 힘든 사랑을 했거나, 아픈 사랑을 했거나, 희생적인 사랑을 했거나.

어떤 사랑을 했든지, 항상 아프다.

그 아픔의 크기가 다를 뿐, 결국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리고, 이별이 제일 아쉽고 힘든 경우.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아직도 사랑하고 있고, 연애 과정이 정말 예쁘고 좋았던 경우.

헤어짐을 고하는 순간 그 이유가 서로의 사랑을 의심해서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런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별일 경우.

그래서 난 지금 충분히 아프니까.


사랑은 덩굴 식물. 즉 나팔꽃과 비슷하다.

덩굴식물이란, 자신의 줄기를 직립시키지 않고 다른 물체에 부착하거나 감아서 생장하는 식물의 총칭.

사랑을 하면, 일반적인 식물처럼 자라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상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있는.

또 기댄 순간 상대가 사라졌을 때, 본인이 다시 설 수 있기까지의 걸리는 시간은, 그 상대에 얼마나 의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사람이 너무 예뻐서.

그 사람과의 이별을 내 입으로 직접 고했을 때, 지금까지의 아떤 이별보다 훨씬 큰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그 사람조차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적잖이 당황하여 울며 밤을 지새웠다는 말을 듣자, 제 가슴은 훨씬 더 아려왔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날 기다려주는 그 긴 시간이 이후에 네게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으로 돌아올지는

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랬으니까, 나는 그 사람을 놓아주었다.

내 사람이 나 때문에 상처받고 힘든 것이, 내게 얼마나 힘들지 더더욱 잘 아니까.

어느순간 부터, 내 입가에서 맴도는 노래들은 이별노래, 슬픈 노래들 뿐 이었다.

항상 노래 음색과, 가수의 감정선을 보며 좋아했던 노래들을, 내 현 상황에서 들었을 때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노래를 따라부르던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니까.

눈물과 나약함 따위는 짧을 때, 감정적으로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눈물과 나약함, 아픔을 버티지 못 해서 넘어졌을때.

일어나지 못 하면, 다른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기는 커녕, 내 길조차 잃을 수 있으니까

버팀목이 되어주던 식물이 사라졌을때의 나팔꽃은 언젠가 홀로 설 수 있을 때 까지.

시간의 치유가 도움이 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그 사람은 아프게도 너무 예뻤다.

일어서기 위해서 준비를 다 마친 상태로, 작은 화분을 딛고 일어설 때면, 버팀목이 자연스레 머릿속을 지나쳐갔다.

모든것을 놓치고 그렇게 다시 일어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 어리석은 나팔꽃 한 송이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나팔꽃 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자신이 덩굴식물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자신은 숙주 식물 없이는, 버팀목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나팔꽃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엾은 꽃 한 송이는 점점 시들어갔다.

아프게도 그 꽃 한송이가 말라비틀어져 죽었을 때,

그제서야, 버팀목이 생겼다.

그렇게 바랐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그 버팀목이.

그렇게나 절실하던 그 버팀목 하나는

식물이 말라비틀어져 생명을 잃었을 때.

그때서야 찾아와 식물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 식물에게 이미 생명은 사라진 것을 알지 못 한채로.

힘겹게 식물을 세우고 나서야 알았다.

가엾은 나팔꽃 한 송이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족은 나팔꽃 한 송이는 예쁜 관엽식물이 되어 다시 태어났다.

홀로 설 수 있으며, 사랑은 다 잊은채로

예쁜 모습을 하고

관엽식물은 잎사귀의 빛깔이나 모양을 관상(觀賞)하기 위하여 재배하는 식물. 고무나무, 단풍 따위. 관상(觀賞)식물이다

예쁜 모습으로, 버팀목과 마주했을때, 사랑이라는 아픈 감정을 모두 잊은 채로.

너무나도 편하게 버팀목을 마주했다.

나팔꽃은 어쩌면 홀로 설 수 있는 식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내 사람을 다시 마주하기까지 시간은

되도록이면 짧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래서 난 지금 화분을 딛고 일어서는 단계에 있다.

아직 내가 나팔꽃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채로.







손팅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