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덜비

“밖에 보셨어요? 새 차 주차되어 있던데”
“그거 내가 안 바꿔주면 정신적 피해 보상 요구 및 산타 자결한다니까 바꿔주던데”
“…선배는 뭐가 문제예요?”
새해도 얼마 안 남았다. 당분간은 크리스마스가 잊혀지겠지. 슬픈 일이지만 좋은 일이기도 했다. 일단 하루하루가 여유로움
할 일이 없다.. 그래, 없어서 문제다.
”외출 하시나봐요?“
”너는 뭐 데이트 같은 거 없어? 여행이라던지..“
”아 데이트 하시는구나“
”…“
저 새끼 똑똑한 거 잊고 있었다. 그냥 입 다물고 마저 거울을 봤다. 강태현이 피식 웃으며 벽난로에 뗄감을 뒤적 거렸다. 왜 웃어? 산타도 데이트 할 수 있어. 산타도 연애할 수 있다고
..내가 왜 연애 생각을 하고 있냐 짜증나게?.. 존나 자연스럽네.
“다녀오세요. 후기 꼭 들려주시고요.”
“데이트 아니거든?“
”선배 거짓말 진짜 못하세요.“
”…다녀올게”
.
.
.
요즘 애들은 만나서 뭐 하냐? 이거 미리 찾아보고 왔어야 했나..
괜히 일찍 도착해서 오랜만에 사람 구경이나 좀 했다. 매번 요정들만 보다가 사람보니까 신기하네.

“야, 산타!”
“…”
“낮에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너 이렇게 생겼었구나“
”그러는 너야말로..“
뭐 이렇게 꾸미고 왔어..
진심 거짓말이 아니라 msg 조금 보태서 지나가는 모든 여자들이 최연준만 바라봤다. 살짝 드러난 이마까지 잘생, 아 그냥 별게 다 잘생겼다.
“배고프지? 밥부터 먹으러 가자.“
”어어.. 그래.“
큰일났다. 하루종일 뚝딱 거리다 끝났다.
밥 먹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대답만 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궁금한 게 뭐 그리 많은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탓에 난 뭐 데이트가 아니라 Q&A하러 나왔나 그런 생각이나 들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현이 오늘 어땠냐는 말에
이 누나가 리드했지 ㅋ 역시 연애 짬밥 어디 안 간다. 라고 했다가
태현이가 나가는 동시에 이불킥을 존나 하며 이불에 파묻혀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 다 망했어.
카톡-!
[‘나 이거 보고 싶었던건데 ㅋㅋ같이 볼래?’]
최연준 때문에 개통한 핸드폰. 얘 때문에 깔아본 sns 어플.
그리고 방금 온 연락에 영화 사진과 내용까지.
나 이거 아무래도.. 아무래도.
..말도 안 돼.
.
.
그 날도 어김없이 최연준을 만나 영화도 보고 자연스레 2차로 넘어갔다. 술도 한 잔 마셨겠다 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사고가 났다. 뒤에 있던 사다리가 휘청거리며 그대로 최연준을 덮치려 들길래 생각도 안 하고 내 몸이 튀어나갔다. 연준이를 옆으로 밀치고 앞으로 쿠당탕! 하며 넘어졌다.
아…쪽팔린 건 둘째 치고. 그 와중에 최연준 대신 다쳐서 다행이다 그런 멍청한 생각부터 들었다. 놀란 연준이 나를 꾸역꾸역 응급실까지 데려가 얼떨결에 봉합까지 하고 나오는 중.
“혹시 부상투혼이 취미야?”
“살짝?”
“야”
“나 산타라서 안 다쳐. 나 사실 아픔도 못 느ㄲ, 아악! 왜 만젹!!”
“… 선생님, 이거 흉터 없어져요? 얼마나 가요”
분위기가 다운돼서 나름 웃기려고 해본건데
다친 내 무릎을 살짝 만지더니 비명을 듣고는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결국 지나가는 간호사까지 붙잡아 흉 안 지게 꼬맨 거 맞냐부터 시작해서 깁스 해야되는 거 아니냐까지 물어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는지 그제서야 나를 봐줬다.
“나 진짜 괜찮아 연준아”
“어 방금 누가 비명 질렀더라?”
“아 씨, 그건 네가!”
“야.. 너는 진짜.. 걱정되게 사람이. 아니, 어떻게 네 몸보다 큰 사다리한테 달려들 생각을 해? 더 크게 다쳤으면 어쩌려고“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짓이긴 했다. 근데 잔소리 하는 최연준의 말에 걱정이 묻어 있어서 그것마저도 좋았다. 백 번은 더 대신해서 다칠 수 있을 것 같음.
”집은 극비사항이라 안 알려줄 거고. 걸어갈 수는 있어?“
”…아니?“
”그럼..일단 우리 집 가자.“
사실 구라다 집까지 걸어갈 수 있다.
*****
늦었지만 메리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