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_13명의 가족과 함께인 고아, 장마음입니다

#2_13명의 가족과 함께인 고아, 장마음입니다

"여보세요"

"야, 장여주. 우리 집 놀러와"

지금 전화온 승우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수빈이와 같은 부류의 친구다. 3년밖에 안 다닌 초등학교 친구.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
"왜"

"수빈이한테 다 들었어."

"뭘"

"단답하지 마, 이 새꺄"

"싫어"

그리고 제일 현실친구다. 적어도 그를 보고 있으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졌다.

"하… 여전하네, 여전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볼일만 간단히 해. 나 바빠."

"너 방 빼야한다며"

"…그걸 들었던 거임? 나 말한 적 없는데?"

"너 말 안 했다고 하긴 했어."

수빈이는 떨리는 내 목소리만으로도 눈치 챈 모양이었다.

"너네… 부모님은…"

"이미 허락하셨어. 내가 여주 말이야… 
이랬더니 괜찮다네?"

"하지만… 나 달갑지 않으실텐데. 
모범생인 네가 고아인 나랑 어울려다니면… 
나라도 싫을 것 같은데."

"고아라는 말 싫다며. 왜 네가 쓰는데. 
올 거면 오고, 안 올 거면 말고."

"ㄱ,갈게!"

바보 같이 말을 더듬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생각보다 크게 소리를 질러서 승우의 귀가 멀쩡하길 바란다.

"주소 불러줘…"

"이사 안 했어. 아는 그곳으로 오면 돼."

"…고마워."

"이응이응~"

난 진지한데 장난스러운 자식. 이래서 널 보면 편한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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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의 집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워낙 가깝게 살기도 했으나, 택시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봤다가 태워주셨기 때문이다. 걸어서 20분이었던 거리가 5분으로 줄어들어버렸다.

“그… 제가 돈이…”

“알아요. 포기하지 말고 힘내요.”

게다가 만 원짜리 지폐를 다섯 장 내게 쥐어주셨다.

“오만원 짜리가 없어서.”

동정이겠지. 불만 없다. 동정을 받아야 5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받을 생각이다. 앞으로도 그렇다면 그 동정 잘 받아먹겠습니다. 평생 동정해도 상관 없어요. 자존심이 너무 비싸 팔아먹은지 오래니까요.

“ㄱ,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갚아야할지…”

“선행을 베풀면서 보상을 바라면 안 되죠.”

“ㅅ,성함이라도…”

“김진우. 김진우에요.”

“성공해서 찾으러 올게요. 진짜 꼭…”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내 노트에 꽉꽉 차있다.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산 건데 쉽게 포기할 순 없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해선 안 된다. 사람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그럼 내 전화번호라도?”

농담식의 말투다. 그저 자신의 딸뻘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와 얘기하는 것이 재밌는 것뿐. 진짜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겐 고마운 일이다.

“진짜 주실래요? 그럼 나중에 찾기도 쉽잖아요!”

“어어, 아가씨, 나 진심 아니었는데?”

“알아요. 그래서 간곡하게 부탁할게요.”

나의 태도가 굉장히 흥미로운 눈치다. 피식 웃어버리곤 명함 하나를 내민다.

“전화번호나 주소가 달라지면… 연락 주세요.
바뀌기 전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진짜 갚고 싶구나. 그럴 필요 없는데”

“제발요…”

“알았어, 알았어. 아저씬 학생 응원할게.”

겨우 알겠다는 말을 받고 나서야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90도로 인사했다. 너무 감사했다.

“잘 가요, 학생. 응원할게.”

택시가 멀리 떨어져서 작아질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너무 큰 행운이다. 이런 사람들이 날 도와준다는 게 너무 큰 축복이다. 태어난 것도, 살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지만 이들이 있어 새어나온 눈물을 씩씩하게 닦아낼 수 있었다.
승우의 집으로 들어가자 문 앞에 가족 구성원 전부가 서있었다.

“어어… 선화 언니 있었어요?”

정말정말 보기 힘든 승우의 누나다. 4살이 많고, 현재는 대학 진학 후 자취 중. 따라서 만나기 매우 힘들다는 말.

“오늘은 자체 휴강~”

“쨌다는 말 아닌ㄱ…”

“조용히 해~”

선화 언니의 눈웃음에서 살기를 느껴 입을 다물었다.

“한선화! 애한테 뭔 짓이야! 그리고 짼 거 맞잖아!”

“이게 어디서 누나한테 대들어!”

역시 난 평생 적막에 익숙해질 수가 없겠다. 이런 소란스러움, 시끄러움을 너무 사랑하니까.

“일단 여기가 네 방이야. 안에 화장실도 있어.”

승우 어머니께서 방문을 열며 설명해주셨다. 아, 하고 감사인사를 하려는데 선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방이었는데, 어차피 난 잘 안 오니까.”

“아, 누나 TMI 좀!”

“어쩔~”

약 올리는 듯한 선화 언니 특유의 말투가 웃겼다. 역시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편하게 지내. 성인 될 때까지.”

“그 때까지요…? 너무 폐 끼치는 게 아닐까요…”

“입양이라도 해주리? 얼마든지 환영인데.”

“왜 그 대사를 선화 언니가 하는데요. 
나 언니 딸 되는 거에요?"

“하하… 또 그렇게 되는구만…”

이 와중에 또 깨닫고 있어… 그래도 이 유쾌한 집안에서 드디어 행복하게 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간만에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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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승우 집에서 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가족이란 게 뭔지, 얼마나 따뜻한 존재인지,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알았을 무렵이었다.

“아니, 당신 제정신이야?
저 애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겠다고?”

“네, 전 제정신이에요. 여주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가족 없이 혼자 18년을 살아온 애에요!”

오늘 잠을 깨지 않았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있을 수 있었을까. 목이 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게 우리랑 상관 있는 일은 아니잖아.
왜 우리가 돈을 써서 고아년을 키워?”

“여보!!”

순간 모든 게 얼어버렸다. 생각도, 마음도, 정신도. 또 고아년이란 말을 들어버렸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데. 내가 고아가 되고 싶어서 고아가 됐냐고. 내가 변변찮은 집이 없고 싶어서 없냐고. 아무나 대답 좀 해줘.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살아가도 쌀 만큼 내가 잘못한 게 뭔데. 알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을 거 같아. 제발 말 좀 해줘…

“어…”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가 입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무슨 소리인가 돌아보긴 했으나 들키진 않은 듯 하다.

‘나가자, 장여주.’

나 때문에 소중한 친구의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만 아프고 말면 될 일이다. 그건 너무 익숙한 일이다. 아프고 아파 헤어져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이 더이상 아파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보단 덜 아프겠지. 익숙해졌으니까… 아마 죽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눈물을 참으며 내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썼다. 이걸 볼 승우그 자책을 덜 하길 바란다. 편지를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내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어머니가 사주신 몇 개 안 되는 새 옷 같은 것들을 챙긴다. 이번 생에 오래 지속되는 행복은 없는 모양이다.
승우 집에서 나와 시청에 걸어 도착하니 시청 문을 열고 있었다. 먼 거리어서 걸어오니 시간이 꽤 걸린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일찍 와봤자 못 들어갔을 것 아닌가.

“볼일 있어요?”

문을 열던 여자공무원이 묻는다. 난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와요. 가을이지만 날씨가 꽤 추워요”

“…감사합니다.”

공무원은 융통성 없는 사람의 정점이라고 하던데 이 사람은 내게 코코아까지 타주었다. 따뜻한 코코아가 조금이나마 날 위로해주는 듯했다.

“이제 볼일을 물어봅시다. 뭐에요?”

“그… 보육원 들어가려고…”

“아아… 좋아요. 이름 말해주세요.”

이런 상황이 흔히 있는 건 아닐텐데 당황하지 않고 내 이름을 물었다.

“…장마음이요.”

친구들은 날 모두 여주라고 부르지만 내 진짜 이름은 마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름은 전자다. 이름 따라 간다고, 여주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의 주인공만이라도. 그리고 그 빌어먹을 부모가 내게 남겨준 처음이자 마지막이 이름이었으니까. 뭐랄까, 잊고 싶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개명을 하기엔 돈이 모자랐고, 그럴 돈이 있다면 하루라도 더 먹는 게 중요했다.

“몇 년생이에요?”

“아, 99요.”

“헐…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네. 잠시만요…”

컴퓨터 타자를 몇 번 두들기더니 다시 말했다.

“가고 싶은 보육원이라도 있어요?”

“슬기로운 보육원만 빼면…"

정말 끔찍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일을 당했다. 그 때의 수치심으로 그저 보육원을 뛰쳐나왔고, 보육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보육원도 많다던데, 왜 하필 그런 곳에 걸려서…

“…좋아요. 그럼 레몬으로 갈까요?”

처음듣는 보육원 이름이다. 꼭 비타민C가 풍부할 것만 같은 이름이고.

“네, 뭐…”

나름 좋은 보육원을 소개해주었을 거라 믿고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보육원이 거기서 거기지 뭐…

“내년엔… 나와야하는데…”

“저도 알아요. 알고 신청하는 겁니다. 
지금 가봐도 될까요."

“아, 메일은 보내놨어요.”

말없이 허리만 굽힌다. 이런 사람도 은혜를 갚을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처음 본 여학생에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 사람. 그녀는 나의 태도에 꽤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이게 제 일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성함, 성함 가르쳐주세요. 제 이름은 아시잖아요…”

그녀의 얼굴은 ‘얘 뭐지?’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원정민. 갚을 생각하지 말고 가요.”

세상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시금 허리를 숙이곤 시청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