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경찰서로 가자.”
검색 결과 레몬보육원은 현재 위치와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534번 버스 노선 정류장에 레몬보육원이 있음을 확인했다. 534번은 주변 정류장 모두에 멈춰섰고. 그러나 내겐 1000원도 없었으므로 돈을 빌려야했다. 아까 정민이라는 분한테 빌려보려고도 했으나 10000원짜리밖에 없다는 말에 그냥 주려는 걸 겨우 거절하고 나왔다. 시청과 경찰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니 여유롭게 걸었다. 어차피 가족이니, 고등학교니 날 구속할 것은 없으니 내 맘대로 살아도 된다. 하, 이것 참 마음에 드네. 조금 구속해줬음 하는데. 그리고 구속하는 그 기관이 보육원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
부모님 안 계신다고 죄는 짓지 말자, 경찰서는 최대한 오지 않도록 하자,하고 다짐했는데. 그렇게 안 하면 고아, 사회부적응자인 범죄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그런데 이 곳에 올 줄이야. 물론 범죄를 저지르고 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슴이 찜찜했다.
“…?”
파란색 옷을 입은 순경, 형사, 경위 그리고 경찰서에 있던 민간인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보통 안 이러지 않나? 경찰의 삶이란 심각하게 버라이어티해서 이런 일에도 안 놀라는 거로 아는데.
“저…”
계속 우물쭈물하자 경위로 보이는 사람이 다시 일을 시키곤 모자를 벗으며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모자를 벗으니 생각보다 훈훈한 얼굴이다. 사람의 첫인상은 3초만에 결정된다던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게 하는 얼굴이다.
“저… 차비 좀 빌려주세요.”
“아, 네”
이런 일은 흔한 모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갑을 꺼내드는 걸 보면.
“요즘 너~무 평화로워서.
여학생은 또 오랜만에 보네요?”
나에게 시선이 꽂힌 이유를 알려주며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준다.
“아… 버스 타고 갈거라 이렇게 큰 돈은 필요없어요…
그냥 오천원만 빌려주셔도 되는데…”
“용돈이에요. 차비 쓰고 남는 거 알아.
어딜 가는진 몰라도 편한 곳에 써요.”
또 동정인가. 그래, 뭐 상관은 없지. 돈 받는 동정은 얼마든지 얻어먹기로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이번엔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명찰에 이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학생. 일단 받지 말아봐요.”
누군지 모를 사람이 날 말렸다. 왜, 내가 동정 받는 게 불만인가.
“그렇게 썩 좋은 마음이 있어보이진 않은데.”
돌아보니 누군지 모를 그는 검은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검은 긴 머리카락이 모자를 빠져나와있고, 목소리도 미성이지만 체격으로 보아 남자 같았다.
“이름이 뭐에요?”
일단 그가 시키는대로 돈은 받지 않았다. 돈은 나중에 받을 수도 있지만 받았다가 되돌려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장여주”
처음 본 사람에게 본명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그는 이게 예명이라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본명을 궁금해할 일도 없고, 알려달라고 말할 일도 없다.
“여주… 예명 같은데.”
아주 작은 그의 혼잣말이었지만 난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예명이라고 의심할 부분이 적어도 나한텐 없었다는 거다. 보통은 아닌 사람이다.
“데려다줄게요”
“ㄴ,네? 그쪽이 누군지 알고 따라가요…”
적어도 이 사람은 경찰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시커먼 사람보다 경찰을 믿는다.
“아, 이러고 있으니까 더 의심스러워보이긴 한다”
그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역시나 검고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윤정한…!’
아주 잠깐 세븐틴이라는 그룹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13명으로 이루어진 보이그룹이고 데뷔곡은 아낀다, 제일 최신 곡은 아마 아주 nice였던 것 같다. 윤정한은 내 차애였고, 그러니 못 알아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윤정한은 죽어도 날 못 알아본다.
“이봐요, 윤정한 씨. 경찰이십니까?”
“보시다시피 아닙니다만.”
“그럼 왜 끼어드십니까. 이 아이는 시민이고,
지키는 건 우리 경찰입니다.”
딱히 반박할 게 없었다. 우린 초면이었고, 어떠한 관계도 없었으니까.
“동생 친구니까요.”
“근데 이름도 몰라요?”
“이름을 몰랐던 게 아니라요, 얼굴을 몰랐던 거에요.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기 직전까진 모르니까.”
…진짜 뻔뻔하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초면인 여자애를 지키려고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데려다줄게.”
“ㄴ,네?”
동생 친구라면… 윤정한 여동생의 친구를 말하는 건가.. 99년생으로 태어난 년도는 같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인데…?
“찬이 친구 맞잖아?”
찬이라. 세븐틴 막내 디노를 말하는 건가. 그는 자신을 알아본 날 알아챈 눈치다. 말을 맞추자고 눈짓하는 것을 보면. 윤정한 그는 그 경찰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어느 부분에서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나쁜 사람은 맞는 것 같다.
“아아…! 찬이~”
“그래, 걔가 내 얘기 안 해?”
“하죠… 엄청 사기꾼 같다고…”
덕질할 때 알아둔 정보 중 하나가 떠올랐다. 윤전사. 윤정한 전문 사기꾼.
“하… 왜 여주한테 그런 얘기를 하냐…”
“찬이한테 더 잘해줘요.”
“음… 그래야할 것 같다.”
몇 마디 안 나눴는데 그 경찰은 숙직실로 들어가버린다. 윤정한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나한테 말한다
“반말해서 미안해요. 어쩔 수가 없었어.”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내 차애에서 은인으로 바뀌었다. 그대로 돈을 받았다면 중학교 때의 보육원처럼 됐을 수도. 경찰이라는 사람이…
“데려다줄게요. 이건 반말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니까?”
“…거절은 안 할게요. 감사해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라는 말에 그를 따라가니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타, 어디로 가?”
“레몬…보육원이요”
알았어, 하고 차문을 열어주는 정한이었다.
“ㄱ,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리고 웃는데 그 미소에 빠져버릴 듯했다. 웃는 눈이 무척이나 예뻤다. 남자인데 이렇게 예쁘게 생길 수 있다니. 차에 올라타고 그가 운전석에 탈 때까지 그의 미소가 잊히지 않았다.
“안전벨트.”
짧게 말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안전벨트를 메려고 했다. 그러나 왜인지 손이 떨렸고, 철컥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메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실례해도 될까요.”
“아… 네.”
초등학교 친구들 다음으로 이렇게 다정한 배려는 처음본다. 목적지를 말했기에 내가 고아인 것도 알텐데. 아, 봉사활동을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방금 실랑이가 꽤 큰 사건이었다. 그는 안전벨트를 내 손에서 조심히 가져가 찰칵-하고 메주었다.
“출발할게요.”
끝까지 다정한 목소리에 높임말이다. 내가 고아인 건 사실확인하고 싶지 않을까. 왜 물어보지 않을까. 왜인지 불안해졌다. 그냥 차라리 그 앞에서 고아인 걸 밝히고 편해지고 싶었다. 괜한 불안감에 왼손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