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떨어지는 기온에 우리들의 옷은 점차 두꺼워졌다. 그러나 마음이는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 건지아니면 집이 추워서 그런지 추위에 강했다. 니트 한 겹에 코트 하나면 춥지 않다고. 그런 마음이를 보고 우리들은 경악했지만.
“가자! 장마음 제발 따뜻하게 입고!”
지수 형이였다. 그의 잔소리가 조언과 걱정으로 들렸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서. 두껍게 입는다고 더운 건 아닐텐데. 조금만 더 따뜻하게 입었으면 좋겠다.
“응, 두껍게 입을게”
마음이는 나지막히 말했고, 다들 들었는지 아무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마음이는 두꺼운 보라색 후드티에 하얀색 코트를 입고 방에서 나왔다.
“그래… 이렇게 좀 입어. 또 감기 걸리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코트 단추를 모두 잠궜다. 감기 몸살이 걸린 이후에 걱정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진 필요 없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아마 반응하는 순간 마음이는 단추를 풀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겠지.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따뜻했다. 이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친구가 아닌 존재로 그녀를 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이는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손을 놓지 않았다.
차로 이동하는 내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잔뜩 부푼 마음 때문인지 그 시선도 눈치채지 못했다. 잠시 기다리니 눈 앞이 바로 방송국이었다. 젠장, 벌써 다 왔다니.
“찬열 선배님이 데리러 오시는 거지?”
“응, 찬열이 오빠랑 같이 온 거로 하려고.”
민규 형의 말에 마음이가 오랜만에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살짝 역겹다는 표정을 지은 것을 보니, 다시 투닥거리기로 다짐한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내리니 웃고 있는 찬열 선배님이 보였다.
“오빠!”
“준비 됐어?”
“모르겠어요…”
사실인 것 같았다. 마음이는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데 자신의 성격이나 실력에 확신이 없었다. 너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이 많은데.
“우리 마음이는 언제나 멋있으니까 괜찮아”
찬열 선배님의 말에 왜 나는 형들과 내 눈치를 살피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선배니까 대놓고 질투하지는 않을텐데.
“되게… 친해지셨나봐요”
와, 아주 크나큰 오산이었어. 선배라 하더라도 대놓고 질투하다니. 이걸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야해, 아니면 미쳤다고 해야해. 물론 석민이 형 뿐만 아니라 나도 속으론 질투하고 있지만.
“친해지긴 했지.”
“오빠 한 명 더 생겨서 좋겠다, 우리 마음이”
특히 질투에 쿨한 석민이 형은 더더욱. 질투와 쿨함이라. 굉장히 상반되는 말이지만 이것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원래 석민이 형이 저런 성격이었나. 석민이 형은 마음이를 이성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던데.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 정도로 질투하는지는 몰랐다”
“헉. 선배님, 기분 나쁘셨다면…”
석민이 형의 급박한 사과에
찬열 선배님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아, 마음이도 끝나고 인사 포함인가요?”
무대도 처음인데 시스템까지 바로 처음 접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다들 그러고, 심지어 나도 그랬으나 그녀는 뭔가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이는 다른 사람이랑 달랐으니.
“아니에요. 금방 끝날 거에요.
아직 마음이 일반인 쪽에 더 가까워서
음방 쪽에 양해를 구했어요.”
“무대만 하고 간다는 거죠?”
“네. 무대하고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마음, 택시 타고 갈 수 있지?”
승철이 형의 정리가 합당했다. 그게 맞았다.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 사람이라면 숨기고만 있으면 안 된다. 특히 밝고 스스로를 PR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는데, 너무나 잘 아는데 걱정되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택시까지 잡아주는 거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끝까지 마음이를 배려해주는 선배님께 감사했다. 물론 마음이도 혼자 할 수 있겠지만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는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니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이 잘 부탁드릴게요”
그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명호 형도, 승관이 형도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예의 없어보이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이가 세븐틴 후배님들이 본인 걱정을
조금만 줄여주면 좋겠대요”
놀랍게도 이 생각도 알고 있었다. 내가 봐도 쓸데없는 걱정이 넘쳤다. 솔직히 나도 마음이 걱정하는 것보다 내 미래나 걱정해야하는데, 왜 내 마음은 모두 그녀에게 쏠려있는 건지.
“…노력해볼게, 마음아”
이성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여동생으로 보는 석민이 오빠가 마음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마음이는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노력 좀 해봐요”
전혀 밉지 않은 말이었다. 나도 그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걱정 받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심한 걱정은 누구나 부담스럽기 마련이었다.
“갈까요?”
“네”
그 사이에 찬열 선배님이 마음이를 에스코트해 방송국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좋은 친구 이전에 좋은 남자가, 사람이 되어볼게, 마음아.

처음 받는 에스코트가 약간 어색했다. 그러나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마 에스코트는 존중에서 나온 행동이라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Heartbeat! 안녕하세요! 가수 장마음입니다”
준비해뒀던 인사말을 꺼냈다. 처음 꺼내는 말이라 손발이 오글거려 사라지는 줄 알았지만 반응은 낫 뱃. 좋은 시작이라고 해두자.
“데뷔곡을 찬열 씨와 부르게 됐는데
소감 한 마디만 해주세요!”
질문을 받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을 못했다. 그 말은즉슨, 당연히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평소에 진짜 너무너무 팬이었거든요.
같이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인데,
데뷔곡을 같이 부르게 된 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가요.
선배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금 긴 대답을 하고 나서는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형식적으로 하는 질문이라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 앞에 [찬열&마음 대기실]이라고 적혀있는 게 신기했다.
“마음아, 너 멘트 준비했어?”
“네? 아니에요… 어제 알았는데…”
“근데 말 진짜 잘하네.”
“모범 답안이었나요”
“응. 긴장했을텐데 잘했어”
찬열이 오빠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킨십에 스스럼없어졌다는 건 그만큼 친해졌단 의미겠지.
“후, 다행이네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잘했어”
“네…”
찬열이 오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세븐틴 후배님들 있지? 빨리 가봐”
“근데… 저 같이 사는 거 숨기고 있어요.
대중들은 저랑 세븐틴이랑 친한 것도 모를거에요”
“이 정도는 괜찮아.
나중에 해명할 수 있게 빨리 가봐.
오늘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고 둘러대면 되지.”
“아… 고마워요. 진짜 그렇네요”
“그래도 명분은 있어야하니까 앨범 들고 가요”
“사인도 할까요?”
내 말에 뭐가 그리 웃긴지 찬열이 오빠는 푸하핫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네네, 사인 하고 가져가세요, 마음 가수님”
아, 7살 어린 동생이 가수 노릇하는 게 웃겼던 모양이었다. 귀여움 받는 것도 체념했다던 지훈이 오빠의 마음에 100배 공감하며 앨범을 하나 집었다. 어제 세븐틴이랑 만든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 앨범을 챙겨 그대로 대기실을 나와 세븐틴 대기실로 향했다.

똑똑
보통 사람들과 달리 문에 노크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노크 소리를 냈다.
“누구지?”
정한이 형은 못 알아들었지만 나는 바로 누군지 알았다.
“마음이.”
“그걸 어떻게 알아?”
“들으면 알아요. 문 열게요?”
대답을 딱히 바란 건 아니었기에 바로 대기실 문을 열었다. 덕분에 소파에 내 자리는 준휘 형에게 뺏겼지만 별 불만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마음이는 혹시나 카메라가 있을까 좌우로 고개를 저어 확인했다. 녹화 안 하는 날이 녹화하는 날보다 많아서 그렇게까지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마 말해도 마음이는 안 듣겠지.
“후…”
카메라가 없는 걸 확인했는지 마음이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왜 그래. 긴장했었어?”
“당연하지… 갑자기 알게 된 데뷔 방송에다…”
“난 알고 있는 줄 알고 말 안 했는데”
“그건 나도. 그럴 줄 알았으면 말할걸…”
지훈이 형과 한솔이 형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일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 줄 몰랐으니까 괜찮아. 긴장도 조금 풀렸고”
“다행이네”
무심한 척 틱틱대는 게 원래 마음이를 대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고 싶었다. 아마 마음이를 향햔 내 마음이 달라져서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이를 보고 있는데 그녀의 예쁜 얼굴엔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Heartbeat! 안녕하세요, 가수 장마음입니다”
그렇게 인사하자마자 13명 모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긴 어제 같이 만들고, 연습하긴 했었어도 그 때는 가수가 아니라 동생이자 친구인 그녀였으니까. 지금은 가수라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 후배님이 인사를 하셨으니, 우리도 할까요?
이름을 말해 보세요!
승철이 형이 마음이가 민망하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모두 웃음이 터졌을 때 마음이가 멋쩍어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보아 본인도 많이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Seventeen! 안녕하세요, 세븐틴입니다!”
그 마음에 우리도 같이 동참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젠 ‘Say the name’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세븐틴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사하게 됐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 된 것 같았다.
“히히, 받아줘서 고마워”
“별 거 아니야. 우리 후배들 많이 오거든”
“올~ 울 세븐틴 나름 후배가 좀 있나봐?”
“당연하지! 우리 데뷔 2015년이야?”
“2년밖이 안 된…”
민규 형 말에 마음이는 딴지를 걸었다. 저게 민규 형과 마음이 둘 다운 사이였다.
“근데… 인사말이 왜 Heartbeat야?”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뭐, 마음이니 Heart까지는 이해하는데 비트는 왜지.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잖아.
사실 뭔가 더 큰 걸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냥 이거 그대로도 있어보여서”
나는 쿡,하고 웃었다. 너무 마음이다워서. 감성적일 땐 감성의 끝판왕이고, 쿨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쿨했다. 사람의 이면이네 뭐네 하는데 성격이 바로 이런 걸 어쩌겠는가.
“오오, 뭔가 있어보이긴 하네.”
“사실 꿈보다 해몽이긴 한데…”
“솔직히 그런 건 보통 꿈보다 해몽이긴 해.”
내가 마음이를 지지했지만 멤버들 중 누구도 내가 평소보다 더 마음이를 챙기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지 못했다. 나도 어지간히 미쳤는지 마음이가 콩을 팥이라고 해도 지지할 것만 같았다.
“근데 손에 든 건 앨범이야?”
지수 형의 물음에 마음이는 기쁜 듯 대답했다. 하긴 첫번째 앨범이 자랑스럽지 않은 가수가 어딨겠는가.
“응응. 무려 내 싸인앨범이라고”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걸 받을 걸 그랬나”
“혹시 앨범 샀어?”
나는 살짝 쭈그러져서 응,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네 첫 앨범이잖아”
“맞아. 가족이 사줘야하지 않겠어?
나중에 마음이 앨범 다 모아 놔야지. 하하하!”
가족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수 있는 석민이 형이 조금은 부러웠다. 오글거려서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가족하면 자꾸 이런 가족 말고 부부 같은 다른 가족이 생각나서 차라리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형형, 하지 마. 완전 이상한 사람 같아.”
“얘 원래 이상해. 몰랐어?”
“아니. 그건 알았지”
대체 왜 이런 일에 진지한 건지 모르겠다. 승관이 형이나 명호 형이나 둘 다 쓸데없는 일에 진지했다.
“우와… 진짜 너무해, 니들”
석민이 형의 말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워낙 일상이라 마음이마저 다른 얘기를 꺼낼 정도였다.
“아 진짜 너무 고마워… 나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지훈이 형은 마음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마음이 손에 들려있던 보랏빛의 앨범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세븐틴 앨범을 쥐어주었다. 그것을 보고 약간 멈칫한 걸로 봐서 또 예쁜 거에 혹했겠지.
“앨범 진짜 예쁘게 나오는구나…”
역시. 본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마음이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너 앨범도 안 봤어?”
“…응ㅎㅎ”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데뷔 방송도 하루 전에나 알게 되었으니까. 앨범을 우리랑 같이 보게 생겼네.
“자, 그러면 우리 마음이의 첫 앨범을 구경해볼까요?”
승관이 형의 진행아닌 진행에 맞추어 앨범을 열었다. 대부분은 배우 님들의 사진이었지만 찬열 선배님의 영향력이 큰지 찬열 선배님과 마음이의 사진도 꽤 많이 실려있었다.
올 그레이로 입고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의 모습, 연습실에서 찬열 선배님과 웃음을 터뜨리는 마음이의 모습. 제대로 꾸민 것도 아닐텐데 너무 예뻤다.
“너무… 쪽팔린다”
“난 괜찮은데? 우리 마음이 에뻐”
“전혀 그렇지 않아, 찬아…”
마음이는 급하게 앨범을 덮었지만 그녀의 예쁜 모습은 뇌에 잔상으로 남았다. 아마 그 모습은 평생 갈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