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아! 이거 너한테 온 건데 뜯어봐도 돼?”

“응! 뜯어서 뭔지는 같이 보자!”
파자마 후드에 푸욱 눌려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다. 여전히 동물잠옷이라 그대로 입고 나가면 또 시선 집중될 게 뻔했으니까.
“뭐야, 아침부터…”
가운데에서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승철이 오빠는 어떤 종이 한 장을 손에 쥐고 있다.
“왜, 뭔데? 왜 그렇게 몰려있어”
어떤 방법이든 지금 모여있는 상태로 놀라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어있다.
“뭔데 그러는데에”
“네 수능 성적표 말이야”

또래보다 1년을 더 벌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1년을 그냥 꿇어버리기는 싫어 친 수능이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은 드는데, 노래 연습, 음악방송… 내 꿈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 다른 수험생들보단 덜했었다.
치고 난 직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마음고생이 몸까지 아프게 만들었던 그 수능 성적표라니.
“성적표오오오!?”
원래는 학교로 보내지만 아마 예상컨데, 학교로 보냈다가 학교에서 고생 좀 많이 해서 이 주소로 보냈겠지. 원정민 님도 만났으려나.
“승관이랑 민규는 너와 다른 놀라움이다…”

“야, 승관아. 아무리 공부를 안 했다지만
100점대가 말이 되냐”
“뭐 어쩌라구… 나 대학 안 갈건데”
“마음이는. 마음이는 어떤데?”
“왜 그래? 망해서 그래?”
“어차피 내년에 다시 칠거라면서…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아니… 못한거면 이렇게 충격받지도 않아”
“헐, 만점?”

순영이 오빠의 말에 그제서야 순영이 오빠가 내 뒤로 와서 내 성적표를 몰래 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점…?!”
정한이 오빠가 되물었다. 오빠, 나도 안 믿겨.
“대박이다, 장마음…”
승철이 오빠가 혼잣말을 했고, 민규 오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 잘 친다고 했어, 안 했어”
“하긴 했지… 그게 실제로 일어날 줄을 몰랐지만…”
계속 성적표를 만지작거렸다. 얇은 하얀 종이 한 장이 계속 구겨졌다.
“그럼 마음이 원하는 데 갈 수 있겠네. 어디 가고 싶어?”
원우 오빠가 말했다. 그냥 대책 없이 무작정 친거라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울 마음이 SKY?”

찬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긴, 만점이면 어디들 못 들어가겠습니까만은.
“진짜 정해둔 거 없어? 마음속에
그런 거 하나쯤은 있지 않아?”
정한이 오빠가 물었다. 하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SKY를 떠올리긴 했으니까.
“음… 연세대?”
“전공은.”
한솔이 오빠가 물었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글…쓰는 거?”
내 의외의 대답에 오빠들은 전부 놀랐다. 하긴 보통 가수들은 실음과에 많이 가니까. 중요한 건 나도 놀랐다는 거였다.
“가사 쓸 때 도움되지 않을까?
자세히 정한 게 아무것도 없어.
내년에도 칠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문창…”

지훈이 오빠가 되뇌었다. 나와 조금 먼 전공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소속사도 그렇게 골랐잖아.”
승관이 오빠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라. 하고 싶은 건 맞지만 갑자기 정해진 거라 이 선택이 옳은지 확신이 없었다.
가수가 갑자기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도 조금 걱정되었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근데, 남들 시선이 조금 걱정되긴 해”
늘 그렇듯 나답게,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투에 걱정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음, 엄청 오글거린다는 거 아는데. 한 마디만 할게.”
정한이 오빠가 저렇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오글거리는 건 그들도 최대한 피하고자 했으니.
어떤 말을 하려고 저렇게 밑밥을 까는건지. 나의 생각과 다른 오빠들의 생각도 비슷한지 잠시 숨을 죽이고 정한이 오빠의 말에 집중했다.
“마음아, 아름답다는 말 알지”
정한이 오빠의 물음 아닌 물음에 찬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거 모르는 한국인도 있나”
무언가 내게 필요한 말을 할 것만 같아 오글거릴 거라는 정한이 오빠의 말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근데 ‘아름’이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나’라는 뜻이래.
어떻게 보면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라는
말과 같다는 거지. 나다운 게
가장 아름답다는 거지.”
“나 답다라…”
순간 코끝이 찡했다. 정한이 오빠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것만 같아서.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게 날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아서. 본인과는 다르게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아서.
“우엑. 내 손발 어디갔냐”

지수 오빠는 오글거린다며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뭔데. 왜 갑자기 띵언이야”
“이 형 갑자기 왜 이러나 싶긴 한데…
왜 이러는지 한 편으로는 알 것도 같고.”
지훈이 오빠는 그렇게 덤덤히 말했다. 츤츤대며 챙겨주는 지훈이 오빠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이런 게 아름다운 거겠지.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싱긋 웃어보였다. 이들은 정말 부모님처럼, 혹은 친오빠처럼 내 성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날을 세우고 혹은 그저 바짝 엎드려만 있던 나의 날을 무디게 하고 엎드린 나를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
“아, 나 100% 인터뷰 올텐데.
학교도 안 다녀서 학교에서 하지도 못할 거고…”
“왜? 이 기회로 다시 학교 가는 거지.
승우인가 뭔가 하는 애도 만나고.”

찬이의 말에 번쩍 깨달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다시 학교를 갈 수 있는 핑계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오, 이찬~ 똑똑한데~?”
그는 멋쩍게 웃어보였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나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아 고마웠다. 나는 막연히 가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