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_13명의 가족과 함께인 고아, 장마음입니다

#37_매일 매일이 생일 같아

“오빠. 들어온 김에 나 옷 고르는 것도 골라주라.”


침대에 나를 눕혀놓고 방을 나가려는 민규 오빠를 잡았다. 그는 퍽 당황해보였지만 거부하지 않고 내 침대 바로 옆, 책상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너 코디 없어?
매니저 생겨서 같이 생긴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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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려는 나에게 민규 오빠가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내가 손을 잡는 순간 그가 세게 끌어당겨서 조금 놀랐지만 찬이 때처럼 그에게 가까워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매니저 분만 구해주셨어.
여자 가수가 처음이라
더 신경 써주시고 싶으시다고.”


민규 오빠는 잠깐 납득한 듯 보이더니 곧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그 매니저 진짜 그렇게 잘생겼어?”

“아, 깜짝이야. 갑자기 왜 급발진이야.”


민규 오빠는 내 말에도 진지한 얼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솔직히 석우 오빠, 진짜 잘생기긴 잘생겼단 말이지.


“질투해, 우리 오빠?”

“잠깐 소녀야, 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녹지마.
내가 질투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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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오빠는 세븐틴 2번째 타이틀 곡인 ≪만세≫를 대답 대신 불렀다. 당연히 질투난다는 뜻이겠지?


“질투 난다는 말씀을 참 성의 있게 하시네.
질투하세요. 전 전혀 신경 안 씁니다.”


민규 오빠는 치이,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제서야 옷을 고르러 일어날 수 있었다. 어차피 드레스룸에 커튼까지 있는 방이라 굳이 민규 오빠가 나가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자, 우선 첫 번째 착장 입어볼게.”


민규 오빠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보고 살짝 웃으며 커튼을 닫았다.

첫 번째 착장은 여성스러운 선을 강조하는 채도 낮은 적갈색 니트와 카키색 치마를 입었다. 치마와 비슷한 색의 숄더백까지 메고 커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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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입고 갈거야?”

“아니 후보 1. 기억해두고 있어.”


윙크로 신호를 보내자 민규 오빠는 살짝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민규 오빠의 표정을 생각하며 계속 히죽히죽 웃으며 두번째 착장으로 갈아입었다.

카멜 롱코트에다 검은색 니트, 그리고 깔끔한 청바지. 걸크러시 매력을 뿜뿜 뿜어내는 착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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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미지랑 잘 어울리긴 하는데,
네 몸매랑은 안 어울려. 아, 오해 금지.
네 골격이랑 그런 거랑 그 옷이랑
안 어울린다는 얘기야.”


급하게 수습하려는 민규 오빠가 귀여웠다.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그들이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를 가질 리도 만무한데다 그런 말을 들었어도 내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어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야? 그러면 난 첫 번째 거.”

“아니아니. 하나 더 있어.”


급하게 커튼을 다시 닫았고, 정해둔 세번째 착장으로 갈아입었다. 예쁘게 끈이 달려있는 적갈색 니트에 민무늬 검은 치마였다. 세 착장 중 가장 마음에 들었고, 민규 오빠의 반응 역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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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예쁜데… 왜 다 하나같이 짧은 치마야?
너 그러다 얼어죽어!”

“코트 입을 거야. 찬이가 예쁜 거 하나 사줬어.
뭐가 나은지 골라주기만 하세요.”


민규 오빠는 잔뜩 찡그린 채로 3번째가 낫다고 말해주었다. 역시, 민규 오빠와 나의 취향은 나름 비슷했다.


“코트로 되겠어…?”


대한민국의 한파는 매섭다. 롱패딩으로 돌돌 둘러싸도 한기가 온몸을 감싼다. 그러니 코트 입는 것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도 알았지만, 그래도 TV에 음악방송 외에 첫번째로 나가는데, 그 정도는 참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참을 거야.”

“목도리라도 하고 가지. 그러면 도움 많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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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오빠 말이 맞았다. 몸에서 열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곳은 머리와 목. 그 두 부분만 감싸도 열 손실이 적었다.


“목도리가 없네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착장은 다시 개켜서 옷장 안에 넣었고, 세 번째 착장은 옷걸이에 걸어 문에 걸어두며 대답했다.


“넌 무슨 색 목도리가 좋아?”

“왜, 사주시게요?”


민규 오빠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표현이 서투른 건 민규 오빠의 매력 중 하나였다. 그냥 사주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데. 그렇다고 내가 선물을 받았을 때 감동받지 않는 게 아닌데, 그는 항상 돌려 표현했다. 물론 투닥거리는 게 일상인 우리에게 가장 알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흰색? 아, 그걸 아이보리색이라고 하지.
이 착장에는 오히려 안 어울리겠지만.”


대답하며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고, 민규 오빠는 그런 나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한 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아 부담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저기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상상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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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상.”

“그 옷에 무슨 목도리가 잘 어울릴지.”


그 말인즉슨, 지금 쇼핑하러 가겠다는 뜻이 아니었던가. 나는 피식 웃었지만, 그의 서프라이즈 계획을 망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그 시선을 견뎌냈다. 뭐, 악의적인 시선도 아니고, 호의의 시선인데 받아내지 못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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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의 장난이 시작되고, 눈 깜짝할 새에 7시가 되어있었다. 민규 오빠가 골라준 옷을 입고, 찬이가 사준 코트를 걸쳤다. 사실 이대로 나가면 얼어죽기 딱 좋지만 그래도 몇 시간 정도는 살아있겠지. 그래야할텐데


“코트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새로 샀어?”


카멜색의 코트가 이거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옷장에도 카멜 코트만 5장이 넘었다. 그런데 스타일만 보고 새로운 코트임을 알아채는 명호 오빠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찬이가 사줬지. 우리 둘이 손잡고 온 날.”

“아, 그날. 너네 데이트 했구나.”


명호 오빠가 혼잣말로 혼자 납득했다. 명호 오빠야 조금 쿨한 면이 있어 저 정도로 끝나지, 다른 오빠들은 더 난리를 칠텐데


“아 뭐야. 내가 첫 번째로 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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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데이트했다는 사실보다 다른 사실에 아쉬워하네. 대체 무슨 일 때문이지?


“나도 코트 준비했는데… 물론 나는 흰색이지만”


준휘 오빠까지? 아니, 데이트에 신경 안 쓰는 건 좋은데, 왜인지 내게 선물을 주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다들 나한테 선물을 사주려고 하죠?”


내 말에 세븐틴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생일이잖아, 곧…”


승철이 오빠의 말에 그제서야 일주일 뒤가 내 생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2월 30일, 슈아 오빠의 생일만을 생각하고 내 생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 생일은 잘 챙겨주면서…
네 생일도 챙겨, 마음아. 네가 태어난 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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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걸 심하게 원망해본 적도 있었기에, 생일은 어쩌면 내게 1년 중 가장 최악의 날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작년까지는. 하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내 생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줄 사람들이 있기에 이때까지의 생일 중 가장 즐거운 생일이 되지 않을까 짐작했다.


“너, 12월 30일, 내 생일만 생각했지?”


슈아 오빠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랬지…”


내 말에 한솔이 오빠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을 계기로, 1년 내내 네 생일만 기다리게 해줄게.
다른 어린이들처럼 생일에 더욱 더 즐거울 수 있도록.”


한솔이 오빠는 한없이 진지했다. 반드시 그러겠노라 다짐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찡했다. 이제 서로에게 너무도 중요한 사람이 되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고마워…”

“당연한 거야,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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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 오빠는 잘생긴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근데 김민규는?”


내 눈에 보이는 12명의 멤버 중 민규 오빠만 보이지 않았다. 대충 예상 가는 건 있었지만, 세븐틴 멤버들 다 있을 때 보이지 않으면 조금 불안했다.


“나 다녀왔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민규 오빠는 문를 따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손에는 쇼핑백이 하나 들려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기대댔다. 민규 오빠도 감각이 있으니 어떤 목도리를 사왔을지 궁금했다.


“어디 갔다 왔어?”


정한이 오빠가 물었고, 민규 오빠는 쇼핑백을 들어보였다. 생각해보니 되게 대단하네. 고작 목도리 하나 사러 외출까지 하다니.


“마음이 벌써 옷 갈아입었네.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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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민규 오빠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내 목에 직접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목도리 하는 게 덜 춥잖아.
안에서만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게릴라 데이트라고 해서”


내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는 민규 오빠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스타일리시하게 둘러주었다.


“오빠 고마워…”


목도리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분명히 예상했는데도 살짝 설레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하고 와요, 아가”


아가라는 호칭에 낯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민규 오빠가 오랜만에 오빠답게 행동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응. 오빠들은 잘 쉬고 있어.”

“맘 편히 쉴 수 있으려나. 우리 마음이 걱정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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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고 올게요”


살짝 장난식으로 존대했고, 걱정하는 눈빛은 여전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너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마음아”


찬이의 말이 고마웠다. 이제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한 걸음을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외출함에도, 혼자 있음에도 늘 그들과 함께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