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해주신 선근 님과 촬영해주신 제작진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데, 옆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석우 오빠가 보였다.
아, 내가 늦게 갈수록 석우 오빠는 더 늦게 퇴근하겠구나.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니까 늘 조심해야겠다.
“오늘 감사했어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잘한 것 같아?”

빛이라고는 자동차 창문으로 넘어오는 가로등 불빛밖에 없는데도 그의 얼굴만은 뚜렷했다.
하지만 지금 석우 오빠 얼굴 감상할 때가 못 됐다. 첫 스케줄이라 조금 긴장한 탓에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모르겠네…”
“왜… 망한 것 같아?”

카페 밖에 있어서 아직 내 과거 이야기는 못 들은 걸까. 생각보다 나는 강하게 자라왔다는 것을.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너무 진지한 얘기만 한 게 아닌가 싶어서.
이것도 예능이잖아”
그 말인즉슨, 마음에 들지 않는 스케줄 이후 심한 반성이 따른다는 얘기였다. 석우 오빠는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처음이잖아. 긴장했고, 조금 실수했다 해도
어쩌면 당연한 거야”
“그래도. 알잖아, 내가 일 욕심 있는 거”
이렇게 심한 반성까지 필요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런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어렸다.
“생각보다 더 잘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믿고 가요.
정말 힘들어 버티지 못할 땐 꼭 나를 보러와요.
이길 수 있도록 늘 옆에 있을게요”
내 말을 안다는 건, 과거까지 들었다는 건데 여전히 석우 오빠에게 나는 그저 그가 본 나였나보다.
여리지만 할 말은 하고, 상처도 잘 받으면서 정은 또 잘 주고, 가끔은 어른같지만 결국에는 어린 나.
“…고마워, 오빠”
“그래도 걱정된다면 적어도 방송 때까지는
그러지 않기로 해. 그래야 알잖아.
잘했는지, 못했는지.
난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만의 위로 방법이었지만, 위로가 마음에 따스히 내려앉았다. 꼭 오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촬영 다음 날이었다. 아직 촬영본이 방송되려면 멀었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스케줄이 들어오는 것도 없었다.
일 욕심 많은 건 PD님도 알기에 들어오는 스케줄을 다 거절하시진 않을테니, 정말로 아무런 스케줄이 없었다.
침대 밑에 넣어둔 당근색의 선물상자에 흰색 리본을 메며 좋아할 슈아 오빠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당근 색을 좋아하는 슈아 오빠를 위해 특별히 사둔 선물상자였다. 우리 슈아 오빠 생일이었으니까.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중 한 명이라도 바뀌거나 없었으면 그건 세븐틴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런 감성적인 생각을 하는데, 폰 충전기에 가지런히 꽂아둔 폰이 전화벨로 크게 울렸다. 누군지 확인해보니, PD님이셨다
“여보세요.”

“어, 마음아. 회사로 네 스케줄 하나가 더 들어왔는데.”
“진짜요! 아 대박! 저 완전 심심해서 죽을 뻔 했어요…”
“근데 너. 연기도 할 생각 있니?”
“연기요…?”
그리고 연기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는데…
“하긴. 이제 막 데뷔했는데 조금 이르려나.”
“아니,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아니에요. 저 완전 좋아요”

“음, 김희열 감독님이라고 하면 모를 것 같고.
닥터스 드라마 알아? 그 드라마 감독님이신데…”
“아아… 무슨 드라마인지는 알아요.
보지는 못했지만…”
“그 감독님이 새 드라마 하시는데,
남자 주인공 여동생 역이래.”
“꽤 괜찮은 역이네요?
처음이라 완전 조연 오브 조연일 줄 알았는데.
심지어 엑스트라라던가”

대답을 하기도 애매해 웃음으로 때운 후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본은 택배나 퀵으로 보내줄거고…
오디션은 나흘 후. 조금 빡센가.”
“노래 오디션도 한 달이었는데…”
“미안. 감독님도 너 소속사 어딘줄 몰라서
조금 헤메셨대”
“사과하실 건 없어요.
아무튼 저 오디션 보게 하려고
소속사까지 헤메신 거잖아요?
열심히 한 번 해볼게요!”
신인에게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인지도와 팬덤이니까.
“응, 그럼 우선 알겠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고.”
“늘 감사해요, PD님!”

안 되겠다, 진짜. 뭐라도 해야지. 근데 또 뭐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데, 누군가 내 방에 노크를 했다.
“들어와도 돼”
“야, 너 또 아프냐!?”

“아냐… 할 게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지…”
“왜 네가 할 게 없어.
회사 가서 춤 기본기라도 배우지?”
“그건, 1000시간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겨우 가능해…”
찬이는 잠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긴, 찬반토론이라고 열정캐인 네가 어떻게 나를 이해하겠니.
하지만 곧 그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마음이었는지 곧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제안을 해왔다.
“그럼 노래 연습은?”

“잠시 중단. 목이 조금 아파서 관리중”
“그럼… 나랑 운동이라도 하러 가실?”
“좋아! 드디어 네가 할 일을 만들어줬구나!”
“…너 진짜 심심했던 모양이다?”

“당연하죠. 세븐틴은 연습이나 스케줄하러 가고,
다른 남사친들은 고3된다고 빡세게 하고 있고,
정연이는 나 말고도 놀 애 많으니까…”
“한 마디로 친구가 없다는 뜻이었네.”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이 정도야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가 민망해질까 손을 잡았다.
아니나다를까 생각보다 강한 힘이 가해졌고, 찬이가 이렇게 힘이 셌다는 사실에 새삼 다시 놀랐다.
“그럼 내가 오늘 네 남사친 한 번 해줄게.
하루 종일 같이 다니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그는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좋다 했으니 내가 거절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그의 심정과 감정과, 마음을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가며 그의 마음을 더 할퀴고 말았다.
“넵, 잘 부탁드려요, 친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