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팽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끈적하고 어두운 두려움의 세계에서.
“흐어어어엉… 장마음, 내가 많이 미안해…”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들린 건 찬이의 사과였다. 대체 네가 뭐가 미안한데. 상황 설명도 없이 혼절해서 많이 놀란 건 너였을텐데.
“마음아…”
도대체 끝날 생각을 안 한다. 얼마나 기절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그 시간 동안 계속 이랬던 거야? 시끄러운 건 둘째치고 눈물로 떡진 그 메이크업과 민규 오빠한테 안겨있어서 구겨진 그 옷은 어떡할건데. 그리고 결정적으로 네 목소리가 쉬기라도 하면. 나 진짜 가만 안 있는다.
하, 근데 나는 이와중에 시끄러운 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그래, 이게 내 가족이고, 이게 세븐틴이었다.
“흐… 마음아, 일어나야 해.”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찬이 목소리가 쉴 것 같아서 눈을 감은 채 작게 뱉었다.
“시끄러워, 이찬”
“…마음아! 장마음! 일어난 거지?”
“일어났어. 잠깐만 더 누워있을게…”
현기증이 일어 아직 몸의 모든 힘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건데, 또 오빠들이 난리를 쳐대겠지. 이번엔 걱정할만 했으니 조금 봐주기로 하자.
“장마음!”
그런데 걱정의 쓰나미가 일기도 전에 찬이가 나를 안았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상체만 끌어안은 거라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야. 이거 이상한 거 알지. 나 일어나면…”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찬이가 말했다. 이런 경우는 오디오가 물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집중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ㅁ,뭐가? 나 너한테 감사 받을 일 한 적 없어”
“일어나줘서.”
“나 죽은 줄 알았냐?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야.
별 일 아냐. 그러니까 나 일어나게 좀 해줘”
“아”
그가 상체를 누르고 있어 일어날 수가 없어서 한 말이었고, 그는 바로 알아듣고 친절히 손까지 내밀어 일으켜세워주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심호흡하는데 찬이가 다시 달라붙었다. 와, 찬아. 나 걱정 엄청 했나보네.
“쓰러지는 건… 진짜 안 돼. 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아픈 것도 가슴이 철렁한데,
기절하는 건 진짜 미친 것 같아.
몸 관리 해요, 마음아.”
찬이와 지수 오빠의 말에 피시식 미소가 새어나왔다. 이 와중에 찬이는 내 어깨에 그 작은 얼굴을 묻고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니까 오늘은 조금 허락할게.
“우와, 찬아. 오늘 계 탔다?”
“응!”
찬이가 대답하는데 그의 숨결이 어깨로 느껴졌다.
“으으, 변태 같애.”
“…마음아,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든 아무 것도 묻지 않을거고,
네가 사람을 죽인 것만 아니라면 우린 네 편이야…”
그들은 내가 쓰러진 것으로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보다. 간간이 스텝분들 사이로 의사로 예상되는 사람도 있으니 그들의 도움도 받았겠지만 그들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그… 사람이 있는데…”
다시 되감는 건 죽을만큼 힘들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가끔은 자기 방어 기제가 발동해 사라졌으면 했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과 함께 치유받으라는 뜻이 아닐까. 너무너무 아프고 힘들어 중간에 끊기는 텀도 많았지만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말을 기다려두었다.
“씨발 무슨 그런 인간이 다 있어.
아니 인간이라는 말도 아깝다.”
“그러게, 찬아. 그리고 왜 나는 이런 걸 두 번이나…”
또 눈물이 찔끔. 사실 이 상황에서 안 울면 냉혈한이다. 하지만 눈물의 양은 확실히 줄었다. 그들이 걱정하기 바로 직전의 양.
“많이 놀랬을거야…”
원우 오빠의 가벼운 쓰다듬에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설레임이 다시 생겼다.
“놀랐는데, 찬이 보니까 긴장 탁 풀리더라.”
“다행이다, 마음아…”
내 어깨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렀다. 아마 찬이도 살짝 운 모양이었다. 아닌 척 해도 볼에 눈물자국이 살짝, 아주 살짝 남아 있는 거로 보아 다들 울긴 울었나보다. 고맙다. 내 기절에 이리 슬퍼하는 사람들이니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또 울어요?”
“안 울어…”
“근데 내 왼쪽 어깨가 젖고 있네~”
“으으응…”
그는 내 어깨에 대고 가르릉거리다 곧 얼굴을 뗐다.
“내가 많이 아껴, 장마음…”
찬이의 말에 순간 손발이 사라질 뻔 했지만 그의 예쁜 마음이 너무 고마운 게 사실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언제 쓰러졌냐는 듯 그들과의 대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어쩔 땐 오빠처럼. 그들과의 대화는 늘 즐거웠다. 공통의 관심사라고는 노래, 혹은 연예계가 다였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것 말고도 할 일이 있어 대화를 짧게 줄였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어어? 너 괜찮아?”
“응! 나 완전 괜찮아. 팔팔한데?”
승관이 오빠의 말에 대답하자마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가 쏟아졌다.
“괜찮기는… 너 방금 깨어났어.”
“그래, 마음아. 너 무대 조금 더 남았고,
선배들 인사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되잖아…”
민규 오빠와 준휘 오빠 뿐 아니라 그들 전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그들이 쓰러진다면 나도 같은 반응일테니까. 그렇지만 신체적인 문제로 기절한 것도 아니고 심하게 놀라 잠깐 쓰러진 거였다. 내가 자주 쓰는 ‘~일 뿐이었다’라는 표현은 쓰지 못하겠으나 그들이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거짓말이었지만 그는 내게 영상이 있는 줄 아니 접근하는 것도 지금은 영상 삭제가 목적일 것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목적 자체가 악의적인 건 아니란 얘기였다.
“그래… 내일도 음방이잖아.
오늘은 조금 쉬는 게 어때…?”
참 지수 오빠다운 걱정이었다. 그의 애절한 눈빛과 납득할만한 설득에 순간 넘어갈 뻔 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았다.
“무대 빼면 그거 하러 온 거야.
쉬는 건, 집에 가서 해도 되잖아.”
하지만 내 말에도 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바뀔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지만, 그리고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런 가족이 없어서 너무 고마웠지만 조금 갑갑했다. 나도 걱정받는 거 싫어하지 않아. 어쩌면 걱정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하지만, 나를 조금만 더 믿어주면 좋을텐데.
“괜찮을 거 같아. 나는 마음이 믿어.”
찬이의 말에 세븐틴 오빠들도, 나도 흠칫 놀랐다. 그리고 곧 눈물이 핑 돌았다. 많이 고맙고 감동한 모양이았다. 이런 거에도 눈물이 나려고 하다니. 나, 눈물은 진짜 많은 모양이다.
“대신 집에 가서는 쉬어. 그거 안 하면 나 이 말 안 해”
지금 유난히 찬이가 어른스러웠다. 철없고 장난치기 좋아하던 어리기만 한 친구가 이 순간은 정말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가 쓰러져있는 새에 너 많이 컸구나.
“응! 당연히 쉴 거야! ”
과보호의 끝판왕인 지수 오빠가 걱정스런 얼굴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어.
넌 괜찮대도 네 몸이 힘들 수 있…”
“그니까 갔다와서 쉴게!”
급한 마음에 말을 잘랐다. 가만히 내 눈을 보며 얘기를 들어주다가 말을 이었다.
“있지만, 말리면 네 기분이 안 좋을 걸 아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부터 해.
적어도 너한테 못된 짓은 못하게 할 테니까.”
우와, 이 오빠가 무슨 일이지? 내가 아는 슈아 오빠는 끝까지 죽어도 말릴 사람인데. 설마 내가 조금 줄여달라는 그 한 마디에 바뀐 거야? 와… 나한테 어지간히도 미쳐있나봐, 오빠.
“오빠…”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유해졌다는 사실에 약간 감동을 먹었다. 성격 고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던데. 고마워, 오빠.
감동 받아 지그시 올려보자 지수 오빠는 밉지 않게 내 이마를 밀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으응!”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애처럼 대답했다.
“내 단축번호가 전부 오빠들인 거 알지?
단축번호를 7개밖에 설정 못해서
96즈 오빠들까지지만…”
“…오. 전혀 몰랐는데”
준휘 오빠가 진짜 몰랐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비?”
내 되물음에 준휘 오빠는 고개를 저었다.
“나 말고 112로 해놔.”
너무 진지해서 장난을 칠 수가 없었다. 뭐, 이 정도 걱정은 유비무환이니 넘어가자.
“크흡. 그건 긴급전화에도 있어요. 걱정 마”
준휘 오빠는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다녀와”
승철이 오빠의 망설이지만 나를 위한 결정에 기분이 나아져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