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응!”
“그럼 나 가볼게. 나중에 보자!”
내가 그녀를 잡을 수 있을 만한 핑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친구라는 것도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이었다.
그저 잡아 가만히 얼굴을 보고 싶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그런 나를 그녀가 이상하게 보아도 좋았다. 그녀 옆에만 있어도 행복했으니까
‘장마음. 나 너 때문에 내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
친구일 뿐이라고 되뇌어봐도 진짜 말을 안 들어.
남자랑 여자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아.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근데 너무 좋아. 하루하루 가슴이 설레임으로 가득 차.
근데 넌 아니겠지. 충분히 이해해. 이해해서 너무 슬퍼. 네가 관심 있는 건 연애가 아니라
네 꿈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좋아하기로 했어.
그 정도는 허락해주길 바랄게’

“후우… 긴장하지 말자.
난 그냥 인사하러 온 후배일 뿐이야”

침을 꿀꺽 삼키곤 대기실 문에 노크했다.
“누구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은지 선배님이다! 음색이나 가창력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완벽하셨다. 내 실력보다 훨씬 좋으셨고, 나와 달리 춤도 잘 추시던데. 역시, 내 이상향.
“아, 저 마음이에요…!”
바보 같이 목소리가 떨린다. 이렇게 긴장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애써 예를 들어보자면 ≪Stay with me≫오디션 정도? 그래도 다행인 건, 여기서 잘못해도 오디션 탈락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아, 들어와요!”
다시 매력적인 음색의 은지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에이핑크 멤버 6명의 시선이 모두 내게 꽂혔다. 하하, 제가 관종이긴 한데, 관심 받으면 조금 부담스러워해요. 딱 한 명만 시선 좀 돌려주실래요?
차마 이 말을 하지 못했다. 하면 완전 이상한 애로 찍힐 게 뻔해서. 다들 착하신 것 같으니 귀엽게 봐주실 수도 있겠지만 첫인상이 귀여운 애이긴 싫었다. 내 바램은 멋진 후배님으로 첫인상이 박혔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아! 찬열 님이랑 ≪Stay with me≫ 부르신 분!
마음 님 맞죠?”
하영 선배님, 하… 하영 님 나보다 3살 많으신데, 마음 같아서는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엉엉.
“어, 알고 계시네요!”
“그럼요. 도깨비 첫방 잘 봤어요”
보미 선배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진짜야, 가짜야. 예의상으로 하는 말이야, 아니면 진짜 봤다는 거야.
“올해 18살이죠! 가창력이 진짜…”
“은지 선배님, 선배님이 제 롤모델이에요…
롤모델한테 그런 칭찬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아, 근데 선배님도
노래 진짜 잘 부르시잖아요!”
“피나는 연습의 대가죠”
“노력하는 천재를 이길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시나봐요!”

너무나 동경하고 좋아하던 그룹을 만나 흥분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행동도 많았는데 이번이 기회였다.
“저… 몇 개 물어봐도 될까요”
“누구한테요?”
초롱 선배님이 되물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핀 상태로 손끝으로 다요~하며 나란히 앉아있던 에이핑크를 가리켰다.
“얼마든지요.”
남주 선배님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진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궁금해요?”
“저… 노래 연습 같은 건 얼마나 해요?”
아주아주아주아주 사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글쎄… 한 4시간? 근데 매번 달라져서”
은지 선배님의 대답이었다. 우와, 나 10시간 하는데. 조금 더 줄여도 되겠다.
“많이 할수록 좋을까요?”
“목에 무리 가지 않아?”
초롱 선배님이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아, 그걸 생각을 못했다.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만 생각했으니. 그래서 성대 뿐 아니라 몸까지 약해진 모양이다. 이제부터라도 줄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럼 나한테도 좋고, 세븐틴 오빠들도 걱정을 줄일 수 있겠지.
“헐, 그걸 생각을 못했어요”
“얼마나 하는데?”
“열…시간”
“마음아. 너 진짜 그러다 쓰러져”
“네, 느끼고 있어요.”
나은 선배님의 걱정에 그제서야 알았다. 걱정을 줄여달라 하면서도 걱정할 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너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날 좋아하니 내게 무리가 되는 일을 하는 게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오빠들, 미안해.
“이런 거 묻는 건, 팬이라 그런 거에요,
아니면 가수로서?”
“…둘 다요”
보미 선배님의 물음에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팬으로서 그들의 연습시간이 궁금했고, 가수로서 얼마나 하는 게 제일 효과적일지 물은 거였다.
“푸핫. 마음이 99년생이지. 언니라고 불러”
남주 선배님… 아니지 이젠 남주 언니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기다리고 있었던 말이니까.
“이렇게 된 김에, 6명의 선배님 모두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능청스럽게 진행한다.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계속 볼 거니 기회를 다시 쟁취할 수는 있겠지만 빠를 수록 좋으니까.
“마음이 사교성 진짜 좋다.
우리 만난지 20분도 안 됐는데,
언니라고 부르라고 허락하고 싶어…”
나은이 언니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완전 예쁜 거 알죠. 그런 여신 미모로 저 쳐다보면 눈부셔서 사망…. 네, 주접이에요.
“귀엽…다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진짜 귀엽다”
‘멋진 후배님’이라는 첫인상은 이미 저멀리 사라진 것 같았다. 원래 애교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님 왜인지 모르게 묻어나오는 귀여움 때문인지 다들 나에 대한 평가는 귀엽다는 거였다.
“우리 오빠들도… 나 귀엽다고 했는데”
“위에 오빠 둘? 셋?”
보미 언니가 물었다. 아, 이런.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세븐틴 얘기를 해야할 거고, 세븐틴 얘기를 하면 고아인 것까지 말해야하는데. 다들 정말 착해서 위로해주려 입을 열겠지. 근데 이제 위로 따윈 필요없었다, 정말로.
“…세븐틴이 제 가족이에요”
“세븐틴이면… 울고싶지않아…?”
하영이 언니가 재확인했고, 괜히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살아서 가족이라는 거야, 아님…”
은지 언니가 물었고, 6명 모두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눈치라 그냥 얘기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앞으로 계속 본다면 알긴 알아야했다.
“설명해줄게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근데, 이건 언니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완전히 괜찮으니
위로 해주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래, 이 사연을 알게 되는 그룹이 가족 말고 첫 번째가 에이핑크라니 다행이다. 어디 가서 퍼뜨리지도 않을 거고, 어쩌면 아예 모른 척 하면서 배려해줄 수도 있다.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면, 그냥 모른 척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