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연애는 없다.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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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현. 우리 헤어지자.

그래. 그러자.
..그래.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커플이었었다. 근데 오늘 대학 cc까지 성공할 줄 알았던 우리가 마침표를 찍었다.
유기현 진짜 짜증나. 마지막까지..
먹지도 못하는 술을 따지도 않고 그냥 옆에 두고 안주만 몇 개 집어먹으며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유기현 욕을 해댔다.
작작 좀 먹지? 그리고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지. 그리고 먹지도 않는 술은 왜 사. 여긴 왜 오고.이 팩폭만 날리는 애는 유기현 친구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셋이 친구. 자기도 유기현 별로 싫어하면서 내가 유기현 욕하면 맨날 저런다.
야 이민혁... 나 오늘 유기현 때문에 술 처음 먹는다.

유기현을 그렇게 좋아했으면 헤어지질 말았어야지. 바보냐
이민혁은 항상 내 친구여도 나를 싫어했다. 내 행동거지가 다 싫은지 내가 유기현하고 놀 때도 뭐 먹을 때도 나를 항상 저런 표정으로 봤다. 3년 내내.
내가 널 방송부에서 만나지만 않았어도 유기현 안 만났을텐데...

그래 계속 말해봐라.
..일단 한 잔 하고.
이게. 야 어떻게 될 줄 알고.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입으로 넣으려고 할 때 이민혁이 손으로 잔 입구를 막곤 감쌌다.
내가 이민혁을 만난 건 방송부였다. 사실 난 이민혁이 좋아했었다. 그러다 유기현이 보여서 유기현을 좋아하기 시작한 거고. 심각한 금사빠긴 했다.
3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새학기
안녕~! ㅎㅎ 이민혁이 오늘은 아나운서네~.
내가 유기현을 알기 전까진 이민혁이 나름 상냥했다. 친해지기 전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야 주민아 ㅋㅋㅋㅋ 맨날 와서 이민혁이 언제 아나운선지 이미 알고 있는데 뭘 매번 모르는 척 그러냐 ㅋㅋ
매번 새롭잖아 ㅋㅎㅋㅎㅋ

너 또 왔어?
방송 리허설 중인 이민혁은 여전히 아침인데도 잘생겼다. 내가 고등학교 하난 잘 온 것 같다.
방송부 아나운서. 이민혁 나는 항상 방송부스 안에 있는 이민혁을 보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를 갔었다. 뭐 이민혁을 보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ㅎㅎ 오늘은 너 보려고 온 건 아니고~ 방송부 쌤이 방송 장비 챙겨서 오늘 점심시간에 잠깐 오래! 강당~
곧 축제가 있는 우리 학교. 나는 행사부라 방송부와 접점이 많았다. 방송부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나는 가능했다. 왜냐면 행사부니까.
회의도, 축제 짜는 것도, 행사 관리도 우리 두 동아리가 같이 하고 게다가 우리 학교가 원래 행사가 많은 학교이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야.
왜?

그냥.
참나. 나 간다.
언제 부스에서 나온 건지. 내 얼굴을 쳐다보며 그냥이라고 말하는 이민혁. 나 지금 놀리려고 하는 짓인데 많이 겪어서 괜찮았다.
좋아해도 괜히 이민혁 앞에서는 얼굴을 붉히진 않았다.
아 맞다! 이민혁!
왜.
오늘도 사랑해~
입학식 때부터 벌써 몇 번짼지는 알지?
그러엄~ ㅎㅎ
항상 고백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 내 고백에 대한 답은 없고 작은 헛웃음과 어이없다는 말만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도 좋았다. 밀어내진 않아서.
그 뒤로 부터 난 이제 장난도 섞인 고백을 했다. 시도때도 없이.
이민혁~ 오늘도 좋아해ㅐ

안 질려?
당연하지~
대단하다.
그렇게 고백만 수없이 하던 나였는데 어쩌다 유기현으로 돌아선 걸까.
자자 조용. 오늘 전학생 왔다.
4월. 전학이라지만 이른 전학생이 왔다.

유기현입니다.
이민혁과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내 심장을 저격하긴 충분했다.
와 잘생겼다.
야 너 이민혁 좋아하잖아 ㅋㅋㅋㅋ
근데 너무 잘생겼는데..?
자 기현아 소개는 나중에 친구들하고 하고 저기 주민이 옆자리. 창가 단발머리 보이지?

아 쟤요? 네.
날 아는 눈치였다. 한번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
안녕 남주민.
너.. 내 성 어떻게 알아?
앉자마자 내 성까지 붙여서 크게 인사하는 유기현이었다. 교복도 후드로 덮고 있어서 명찰이 보일 틈도 없었고 이름표 달린 물건도 없었는데.
나 이민혁 친구.
아. 단번에 알았다. 이민혁이 내 얘기 했구나.
네가 그렇게 이민혁 좋아한다며.
그것도 이민혁이 알려줬구나?
아니 ㅋㅋㅋ 추측이었는데 진짠가보네.
너도 이민혁 친구가 많구나. 되게 거침없는 걸 보면.
이민혁이 나랑 비슷하다고?
맨날 너 같이 행동하는데.
아쉽게도 나와 닮았다면 이민혁은 너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알아. 알아도 그냥 좋아하고 있어.

일찍 포기해. 그러다 너만 혼자 우울해질텐데.
여자친구 생기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이거 이민혁한테 말하지 마라. 괜히 여친 만들어 올 것 같아.
넌 걔가 좋냐?당연하지.
힘내.
그러고 며칠 뒤 이민혁은 기똥차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왔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방송부에서 들어갔지만 날 보는 눈빛들은 안쓰럽다는 표정이었다.
왜?
주민아..
카메라 담당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어이러니한 건 둘이 말도 섞은 걸 본 적 없었고 내가 방송부 들어와서 난리를 쳐도 아무 생각 없어 보였던 여자애였는데.
지금 민혁이 하고 걔 여친 강당 갔어. 오늘 행사 민혁이가 MC라. 리허설 하러..
아쉽게 됐네. 알려줘서 고마워 ㅎㅎ 아 행사부 오늘 담당이 좀 많아서 방송부 못 도울 것 같다고 전해달라고 해서 왔어~ 오늘 힘내고~
내 짝사랑은 허무하게 끝났다. 교실로 다시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유기현을 보곤 뛰어갔다.
다들 축제 준비하느라 꾸미고 있었다.
유기현~
우리 반 컨셉은 신랑과 신부 컨셉이라 드레스에 정장. 하얀색, 검정색이 가득했다.
어 왜?
이민혁 여친 생겼어.

ㅋㅋㅋㅋㅋㅋㅋ결국 생겼네.
너 말 안 했지? 안 했지? 안 했지?!
안 했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에휴 어쩔 수 없지.
세상에 남자는 많단다.
내가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자 앉아 있던 유기현이 일어나 내 머리를 톡톡 쓰다듬고는 아무렇지 않게 폰을 보며 반을 나갔다. 설레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다.
맞다. 이민혁 말고도 남자는 많다.

축제가 시작되고 다른 반에서도 하나 둘 반에서 맞춘 컨셉 의상을 입고 나왔다. 3반은 슬리데린이었다. 3반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는 4반이라 기다리고 있었다.
3반에도 잘생긴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새학기 시작하자마자 이민혁만 쭉 해바리기로 봐 왔어서 못 본 걸 뿐. 하지만 이젠 이민혁이 여친이 생겼기 때문에 난 다른 남자애들도 볼 여유가 생겼다. 물론 이민혁이 강제로 못 보게 한 건 아니었지만.
헐 3반 뭐야?
나는 몰랐던 얼굴 잘생겼다.
야 너 쟤네 몰라?
임창균, 채형원. 그 잘생긴 애들인데.
잘생긴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잘생긴 사람에 환장하는 주민아. 왜 몰랐니.
난 이민혁만 봤었지.
쟤네 둘다 솔로다.
너 승산이 있단 얘기지.

어딜 데려 가려고.
갑자기 내 옆에서 셀카를 찍고 있던 유기현이 반응했다. 순간 뭐지 싶었지만 폰을 끄곤 내 옆에 와선 말했다.
오늘은 얘 나랑 커플이야.
뭐래 미쳤냐.
얼른 가자. 3반 다 찍었네. 너 오늘 나랑 다녀.
나 행사부라 바쁘거든?
우리 짝 미션 있어. 잊었어?
아 맞네. 근데 나 바쁜데. 나 오늘 페이스 페인팅 부스 담당이라 바빠.
그럼 이따 찾아갈게.
그래. 거기서 다 해결하자.
페이스 페인팅 부스는 축제가 시작하자마자 꽉 찼다. 인생네컷 부스&폴라로이드 부스도 옆에 있었는데 애들이 페이스 페인팅-인생네컷-폴라로이드 이 순서로 많이 다녀서 우리 두 부스는 대기자로 가득했다.
자 다 됐다. 이제 다음 친구.
이민혁하고 여친이 앉았다. 그 뒤에 서있는 유기현.

오 주민 너 이거 해?
일부러 반가운 척하는 모습이 다 티났다.
어. 둘이 커플 페인팅하는 거지? 고르고 알려줘.
참나. 이젠 먼저 아는 척이나 하고. 참 짜증나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하다. 내가 얼마나 저 둘에게 우스워 보였을까 싶었지만 응 그건 내 알빠 아니고.
난 [커플 페인팅 도안] 종이를 보여주며 유기현을 쳐다보곤 소리를 내지 않고 대화했다.
'야 죽겠다.'
'ㅋㅋㅋㅋㅋ어쩌냐. 안 우는 게 대단하다.'
'얘 일부러 이쪽으로 온 거 아냐? 으'
'ㅋㅋㅋㅋ아냐 처음부터 여기 섰어.'
'여친 너무 이뻐.'

'너도 예뻐.'
헙.
정수리만 보이던 이민혁과 그 여친이 내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나도 너무 놀라서 벙쪄있었는데 유기현이 한소리 했다.
'정신차려 ㅋㅋㅋㅋㅋ'
우리 정했어. 이걸로 해줘.
어. 어 얼굴에 아니면 손에?
얼굴.
내가 이민혁하고 여친 얼굴에 손을 대야 한다니.. 한쌍의 아름다운 조각 커플에 낙서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여친이 얼굴에 손 닿았다고 째려보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먼저 여자친구의 볼에 큰 하트와 작은 하트를 그리고 글리터를 붙이고 작은 꽃을 그려줬다.
얼굴 진짜 작다.
ㅋㅋㅋ다 들려.
살짝 웃으면서 말하는데 순간 천사가 내려온 것만 같았다. 나 얘 때문에 이민혁 마음 접었는데. 역시 나 금사빠 인정한다.
다 했어.
민혁아 나 어때? 괜찮아?
ㅋㅋ예뻐.
예쁘다. 진짜 예쁘다. 나도 분명 유기현한테 예쁘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민혁이 여친한테 해주는 예쁘다는 말이 더 듣고 싶은 건 뭘까.
자 이제 너.
이민혁도 똑같이 볼에 큰 하트와 작은 하트 그리고 글리터를 붙였다. 그리고 작게 강아지를 그려 넣었다.
오 나랑 다르네?
ㅎㅎ 넌 꽃이 어울려서.
왜 나 뭔데?
강아지.ㅋㅋㅋㅋㅋ 너랑 딱이다. 민혁아.
ㅋㅋㅋㅋㅋ아 진짜.
예쁘게 그려줘서 고마워. 우리 갈게.
어 잘가고.
이민혁 여자친구는 따뜻하다..
자 이제 유기현씨.
내 한마디에 이민혁은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내 뒤에 있었어? 말하지.

커플을 방해해선 쓰나. 근데 너 방금 우리 방해했어. 얼른 여자친구하고 가.

우리?
우리 오늘 1일 커플이야.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못하겠네. 유기현아. 너 아주 광고를 하고 다녀라~?
아 얼른 나 해줘.
골라.
좀 친절할 수는 없냐.
아 네~ 여기 도안 중에 골라보세요 하하
그럼 3개 골라야지~
하나만 골라 새꺄.
헐 신고 가능?
...ㅎㅎㅎㅎㅎ3개 해~
우리 둘의 티키타카에 이민혁은 한참동안 바라봤다. 하지만 난 별로 신경쓰지 않고 계속 유기현과 말싸움을 주고 받았다. 전혀 타격감 없는 말들을.
민혁아 가자. 사진 찍으러 가야지.
아 어. 가자.오묘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돌아서는 이민혁을 힐끔 보고는 다시 유기현을 쳐다봤다.
그래서 뭐 할래?
나 이거. 왕자.
진짜 여러가지로 짜증나게 하네 ㅋㅋㅋㅋ
아 얼른.
아 알았어. 얼굴에 할거야?
당연하지. 너 이거 언제 끝나?
점심 먹기 전까진 해야 돼. 점심 먹고 나서는 교대.
오 좋다.
우리 미션이 뭔데?
잠만 폰에 있음. 셀카 찍기. 활동 같이 하는 모습 들어가기.
그건 오후에 해야겠다.
커플사진 찍기. 포즈 자유
그것도 오후에.. 잠깐만.
내 말이 끝나고 난 바로 붓을 유기현 볼에 댔다. 유기현은 잠시 놀랐는지 볼에서 놀람이 느껴졌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붓질을 했다.

..한다면 한다고 얘길 하고 다가와야지.
얼굴 빨게지셨네. 그래서 지금 미션 할 수 있는 건 뭐 없어?
보너스 미션. [부스 운영하는 짝 찾아가서 응원하기. <아무거나 가능>] 있다.
진짜 우리 반 쌤 너무 사악하네. 어떤 응원을 할줄 알고.
응원은 조금 기다려. 이따 사람 많아지면 잘 보일지 모르겠다.
다 됐다. 넌 특별히 상어하고 햄스터도 그려줬다. 유기현!
오 난 특별히 2개네~
1일 커플이니까 특별히!
ㅋㅋㅋ 고맙다. 이따 봐.
어~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4교시 축제가 시작되고 4교시는 무대도 같이 있어서 부스 체험자들이 적었다. 다들 우리 부스 앞 무대로 간 거다.
나도 일 안하고 무대만 보고 싶다.
그래도 지금 시간 널널하잖아. 쉬자고.
그래.. 유기현은 응원하러 온다면서 왜 소식이 없냐.
그때 무대 쪽에서 박수&함성 소리가 들렸다. 시작했나보다 싶어 시선을 돌렸는데. 순간 내가 요즘 유기현을 자주봐서 그런가 싶었다.

장기자랑에 유기현이 나온 것이다.
뭐야 유기현..?
소개가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친구 응원차 무대에 서게 됐다. 친구가 많이 좋아하던 애가 있었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부스도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노래로 응원해준다며 멀리있는 나를 바라봤다.
노래하는 유기현을 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설렜다. 물론 그 사랑에 빠졌을 때 설렘과는 좀 달랐지만.
아무튼 점심시간이 지나고 우린 미션을 했다. 상품이 있다는 말에 최선을 다해서 찍고 놀았다.
아 힘들었다.
ㅋㅋㅋㅋㅋ미션하느라 수고했어.
그렇게 우리가 더 가까워졌던 날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한 날이었을지도.
다음날부터 난 유기현만 봤다. 방송부 카메라 담당 한명이 전학을 가서 유기현이 들어가서 어쩌다보니 이젠 이민혁이 아니라 유기현을 보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고 이민혁과는 그냥 어색하지 않게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5월.
벚꽃은 이미 지고 초록잎으로 가득차기 시작한 때였다.
유기현! 어디가?
이민혁하고 피시방.
어휴 이민혁 여친 오늘 기분 안 좋아보이더만 싸웠나보네.
넌 어디가는데.
나야 집이지. 피시방 잘 가고~
데려다줄게. 집
너네가 가는 피방하고 멀어. 반대방향임. 간다.

같이 가.
뭐야 어차피 밤도 아닌데.
아 그냥 가자.
쓸데없는 사람한테 다정하게 해주지 마라 ㅋㅋㅋ
아 그럼 남주민이 쓸데없는 사람이야?ㅋㅋㅋㅋ
그래. 괜히 힘 빼지 말라는 소리. 나한테까지 다정할 필요는 없다 이 소리지~

아닌데.
뭐?
나 너 좋아해.
매번 내가 이민혁한테 하던 우렁차고 당당했던 고백이 아닌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 부드럽게 다가온 것 같은 고백은 받아본 게 처음이라 그런 건지 내가 원래 이런 간질간질한 고백을 하질 않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순간 착각할 뻔했다.
어....?
무슨 반응이야 그건.ㅋㅋㅋㅋ
내가 얘를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착각이야 현실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좋아 너!
그렇게 우리는 고1 5월에 사귀게 되었다. 그 대신 달달한 연애보다 친구처럼 서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하지만 역시 편해지면 질려간다는 말처럼 우린 고등학교 3학년 졸업 이후 만나는 시간이 뜸했다. 학교에선 억지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하교를 같이 해준다는 핑계로 같이 붙어있을 수 있었지만 졸업을 한 이상 학교에서만 만났던 우리는 점점 뜸해졌고 우리 서로가 연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민혁!
이민혁은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이미 오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민혁은 우리 둘 사이에 끼어서 같이 노는 시간이 잦았다.
유기현은?
몰라. 또 연락 안 받네.
이제 개강도 얼마 안 남아서 만나서 저녁이라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남친은 맞는 건지. 연락도 씹는다. 사실 12월에도 만나질 않았다. 유기현이 가족들하고 여행가서. 졸업식에서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다였다.
유기현 갈수록 식어. 고등학생 때가 좋았는데.
시간 지나면 다 그래. 밥이나 먹자.
그러자.
근데 우린 어쩌다보니 헌팅포차에 들어왔다.
여긴 무슨 헌팅포차 밖에 없어.

안녕
이민혁은 벌써 앞 테이블 여자들과 눈이 마주쳐 인사하기 시작했다.
너 좋자고 지금 헌팅으로 온 거?
오 유기현한테 전화왔다.
나는 항상 벽하고 얘기한다. 이민혁은 유기현이 없으면 나하고 말을 섞을 생각을 안 한다.
하 이 새끼 내 연락은 보지도 않으면서. 뭐야 왜 안 받아?
이민혁은 유기현의 전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버렸다.

유기현도 당해보라고. 근데 착각은 하지마라. 너 생각해서 전화 안 받은 건 아니니까.
그러곤 바로 주문을 하는 이민혁이었다.
이민혁 넌 꼭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사람 후벼파드라.

야 이민혁.
순간 유기현이 맞나 싶었다. 처음보는 정장에 학생 때 내내 덮은 무리였는데 머리도 까고 있는 유기현 모습이 내가 알던 유기현과는 달랐다. 내가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예전에 유기현한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말라고 지금처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라고. 근데 지금 유기현은 아니었다. 낮설었다.
뭐야 유기현? 오늘 온다는 얘기 없었잖아.
그렇다고 연락을 씹냐?
어디 갔다왔었어? 유기현?
너도 몰랐지? 나도 며칠 전에 다른 애한테 전해들은 거야. 가족 여행 갔다와서 바로 미국 갔다는데. 왔네?
내가 알던 유기현이 아니네..

아 잘 지냈어? 바빠서 말을 못 했다.
그래도 웃는 건 여전하네.
유기현의 웃는 모습에도 난 전혀 웃질 못했다. 난 여자친군데 소식을 제일 늦게 듣고 유기현 친구보다 연락을 더 적게 하고 내 연락은 받지도 않는다. 웃음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저 얼굴. 이미 많이 당했다.
이민혁 나 어차피 술 못 마셔. 안주도 내 스타일 아니다. 돈은 내가 내고 갈게. 밥 먹고 가. 나 먼저 갈게.
야 뭔 소리야. 너 남친 왔잖아.
나 말고 너랑 할 말이 있어보여서. 간다. 유기현 다음에 봐.
유기현이 나를 잡았지만 난 연락할게. 씹지말고 받아. 라는 말만 하고 포차를 나왔다. 내가 테이블에서 멀어져 갈 때 이민혁과 유기현의 짧은 대화가 점점 주위 소음에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민혁 너 잠깐 나 좀 봐.

그래.
집에 가는 길. 나는 유기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젠 막 나가겠다는 건가 싶었다. 나도 성격이 날카로워지긴 했지만 다 유기현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유기현은 나를 불렀다.
왜.
바보 같이 나왔다. 미워도 유기현 얼굴이 보고 싶긴 해서.

많이 화났어? 미안. 그동안 너무 바빴어서.
그래서 왜 불렀는데.
너 화 풀어주려고.
근데 너 어제 이민혁하고 무슨 얘기 했어?
아 별거 아니야.
또 아무것도 아니라는 유기현의 말에 그럼 그렇지. 한번 더 실망했다.
너 나 싫지.
갑자기?
졸업하고 나서 연락 한 통 없었고 소식 하나 못 받았어. 내 연락도 모조리 씹고.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
그래도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톡이던 전화던 대신 누가 전해주게 말이라도 하던 왜 숨겨? 왜 말 안 했던 건데. 난 이해가 도저히 되질 않아. 내 화 풀어주려고 왔다고? 그럼 너도 알겠네. 네 행동이 나 상처 받게 했다는 거.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해? 넌 나 배려 안 해. 아니? 못해. 넌 나한테 항상 진심으로 대했으니까. 내 연락 씹고 다른 곳 갔던 것도 나랑 있는 거 질렸다는 그 생각 안 숨기고 진심으로 표현했잖아.
참아왔던 생각들이 터져나왔다. 이미 많이 변해버린 성격. 예전의 상냥하고 밝은 나는 없다.
내 말 틀린 거 하나 없지? 넌 나 이제 안 좋아해. 오늘도 그냥 어쩔 수 없이 나 만난 거 알아. 다 티나.

그동안 많이 참았었네.
너 여친이라고 나 네 여친이라고. 아무리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왜 친구보다 못한 사이처럼 지내냐고. 나 더는 못 그래.
나쁜 놈은 유기현이었지만 난 내가 내뱉은 말에 후회했다. 다시 주워담아 내가 미쳤다고 하고 싶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미안하다고 상처줘서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니까. 나 그만 힘들고 싶어. 너 만나는 3년 되게 좋았어. 근데 이젠 아니야. 3년 동안 쌓은 추억보다 두달 외로웠던 기억이 더 커. 우린 그 정도야.
주민아.
유기현. 우리 헤어지자.
..그래 그러자.
결국 대답을 듣고 말았다. 헤어짐을 통보한 건 나였지만 통보를 받은 기분이었다. 유기현의 한마디에 눈물이 차올랐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지만 소리에서 울진 않았다. 그 때 유기현이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상처를 많이 줬었네.
마지막까지 다정한 유기현의 모습에 화가 났다. 다른 여자를 사귀어도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아서. 난 유기현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좀 격해져서 더 욱해진 것도 있어... 그래도 너 잘해줬었어. 나한테. 오늘 내 얘기만 해서 미안해. 근데 너 땡 잡았다고 다른 여친.. 사귀든가 말든가. 이민혁은 나랑도 친구 계속하게 해줘. 나 이민혁 없으면 없어. 친구.
유기현의 첫날 모습이 생각났다. 날 알아보고 이민혁 얘기도 하고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던 우리.
알았어. 걱정마 너 친구 안 건드려... 오늘 얼굴보면 꼭 말해주고 싶었어. 사랑한다고. 오랜만에 봤는데 더 예뻐졌다고.유기현의 말을 듣고 지금이라도 다시 돌리고 싶었다. 나만 상처주는 말만 하고 끝내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해. 꼭 잘 지내. 아프지말고.
그래도 난 마지막까지 유기현에게 나쁜 사람으로 남으려고 작정했다.
너 근데 끝까지 안 알려준다. 그동안 왜 안 온 건지.
아직도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 티나. 나 끝까지 상처주려고 노력하는 거. 나 때문에 힘 빼지마. 울어서 더 힘들텐데. 그리고 집안에 일이 생겨서 잠깐 외국 갔었어. 12월에는 친척들하고 다같이 마지막 모임 가진 거였어. 이젠 안 만나.
다정함이 여전해서, 전혀 변한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화만 낸 내가 싫어졌다.
내가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나 때문에 나왔으니까 데려다줄게.
아무말없이 유기현을 따랐다. 마지막까지 같이 있고 싶은 내 이기적인 마음에. 마지막 자존심이 있는지 절대 미안하다고 취소라는 말은 나오질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하고 유기현은 갈게 라는 말과 함께 포옹없이 멀어지는 유기현의 뒷모습을 봤다.
진짜 끝이구나..
그러곤 난 이민혁을 불렀다.
난 진짜 유기현이 변한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변하고.. 짜증나서 술 마셔야 풀릴 것 같아.
그래 차라리 먹고 정신 나가봐야 괜찮아지겠네.
민혁아. 내가 미쳐서 유기현한테 전화걸면 전화 좀 대신 받아줘.. 녹음해서 들을 거야..
그렇게 좋으면 왜 헤어지냐고 미치겠네 이것들.
난 유기현이 첫 남친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또 다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나만 미련 남은 것 같이 행동해서 짜증은 더 났다.
이민혁 넌 몰라... 넌 잘났잖아. 난 3년 동안 유기현 묶어뒀던 셈이라고..
누가 그래.
내가 그래..
유기현도 좋아했어 너.
다시 좋아하고 싶어.

바보네 완전. 솔로 남주민아. 정신차려. 너가 헤어지자고 했잖아.
그건 맞아..
울면서 술을 들이부었다. 주량도 모르고.
안녕 이민혁.. 나는! 이게 취함이라는 걸 처음 느꺄봐~ 나.. 아냐 아직은 괜찮다~ 근데 되게 기분 이상해..

너 좋아죽는다.
웃으니까 예쁘네. 제발 나 보면 좀 웃어. 맨날 나만 보면 찡그리고.
내가 3년 내내 왜 그랬겠냐.
나 싫어서 그랬겠지.
유기현이 단속했었어. 근데 이젠 안 그래도 되잖아.
무슨 소리?
술에 거히게 취해서 필름이 끊기기 직전이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궁금하긴 했다.

나 이제 대놓고 할거라고. 이젠 그래도 되니까.
맛있다. ..뭐를?
안주를 먹으며 한 손엔 술병을 정신없이 흔들고 있었는데 이민혁이 술병을 놓고는 내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곤 말했다.
너랑 붙어다니는 거. 너 좋아하는 거. 나 이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넌 어차피 술 때문에 기억 못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기억하면?
상관없어.
ㅋㅋㅋㅋ야 여기 맛집이다.
더 시켜. 오늘은 내가 살게. 너 기분 풀어줄 겸.
이모!
세상에 완벽한 연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언젠간 찾아올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