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수꾼 공포증
" 그거 들었어? "
" 뭘? "
" 이번에 전정국이 S급 리커버리 다치게 했던거! "
" 아, 그 남자공포증 생겼다는 리커버리? "
" 응, 그거 전정국이 한거래! "
" 헐, 진짜? 미친거 아니야? "
수근대는 목소리가 복도에 한가득 울려퍼졌다. 이 코너만 돈다면 저 요망한 입들을 꼬매버릴 수 있을것만 같은데 나서지 않는 이유는, 그저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 전정국이 그럼 그렇지. "
" 싸이코 새끼. 난 걔만 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니까? "
" 아, 인정ㅋ.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하게 보는거 아냐?ㅋ "
" 아, 설마ㅋ. 팀원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게. "
" 왜? 걔 능력이라도 있긴 하잖아. "
" 능력이 있으면 뭐하냐? 심성이 삐뚫어졌는데. 걔가 팀원 아니면 그딴 일을 할 것 같냐? "
" 아, ㅋㅋㅋㅋㅋㅋㅋ. "

재밌는 말들 짓걸이네.
" 누, 누구... "
" 김, 김석진.. 선배님.. "

" 그치? "
" 그, 그게!.. "
" 그리고 참 사람말을 좆같이 알아듣기도 하고. "
"..... "
" 너네가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말들이 돌고 돌고 돌아서 내 귀로 다시 들어오는 순간, 너네부터 족칠거니까 알아서 사리고 다녀. "
" 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

"..... "
" .....무슨수로.. 저희가.. 멈춰요.. "
" 너네 능력껏 하라는 소린데. 내가 깽판을 부렸든 좆같이 굴었든 퍼뜨리기라도 해. 다시 한 번 정국이 관련돼서 내가 찾아오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엎어버릴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
판을 크게 엎어놓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발걸음을 떼는 석진은 무척이나 마음편해 보였다.

드르륵- 조용한 1인실 병실 문이 열리고, 온갖 감정이 섞인 얼굴로 정국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아직, 인가.. "
스윽- 정국이 여주의 이마에 커다란 손을 덮어주고, 잔뜩 찌푸리고 있던 여주의 미간이 곱게 펴졌ㅇ다. 석진에게 마지막으로 빌린 환각사 능력이었다.
.
.
.
언제나 꾸던 악몽. 거기에 조금 더 끔찍했던 악몽. 가끔가다 꿈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꿈은 종종 꾸던 악몽에 비해 적게 나왔다. 그 꿈을 한 달에 두세번 꾼다면 변질된 내용은 그 꿈을 5번에 1번 꼴로 두 달 정도의 텀을 두고 꿨었다. 유독 이번이 심하긴 했지만,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여주였다.
정말 문제는, 꿈이 변질되고 나면 그 날은 일을 못 나갈 정도로 너무 아팠었기에 항상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때 잠들게 된다면 오히려 그 다음단계까지 나가는 꿈을 꾸게 된다는 것.
그나마 사람들 심리에 도가 튼 마인드리더 센티넬의 말로는,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무서움의 극치에 다다르면 자신도 모르는 새 더욱 최악이었을 상황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애초에 자신이 지금 멀쩡하게 살아 숨쉬는 것 자체도 그 최악의 상황이란게 오지 않아서일지 모른다고.
그래. 길고 긴 서론을 넘어가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여주는 지금 그 최악의 상황이란것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오지말라고, 싫다고 그렇게나 용을 썼건만, 앞에 있는 인간은 자꾸만 자신을 탐해왔다. 지난 몇년간 열댓번은 꿔온 꿈이지만, 꿀 때 마다 적응이 안 되고 불쾌했다. 그나마 그 수백번의 꿈들을 거친 후 죽도록 참아 열댓번이지, 그런 꿈을 두 달 마다 꾸게 된다면 이미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더럽다. 역겹다. 그가 여주의 입술을 덥쳤다. 그래. 악몽은 이제야 시작이다. 크고 거친 손이 여주의 옷 속으로 들어와 허리를 쓸어내렸다. 익숙치 않은 손놀림에 소름이 돋았다.
싫어.. 마지막 발악으로 몸을 힘껏 비틀어보지만, 상대는 성인 남성. 아무리 등급이 높더라도 같은 센티넬으로써 건장한 성인 남성과 미성년자 소녀의 힘차이는 컸다.
휘몰아쳐 들어오는 가이딩에 눈이 풀린 그가 여주를 내려다봤다. 무서워. 싫어. 그가 여주의 윗도리를 올리려는데, 밝은 빛이 여주를 덮쳤다. 그 빛을 끝으로 여주는 눈을 꼭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하얀 공간에 들어와있는 여주. 뭔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위에서 내려오는 하얀 빛. 정말 신이 강림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상시켰다. 자신도 모르게 그 곳을 바라본 여주.
천천히 내려오며 조금은 사라진 빛 사이로, 정국의 얼굴이 보였다. 잔뜩 경직된 채로. 그의 굳은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떠는 여주. 그런 그녈 보곤 약간 뒤로 물러난 그가 말문을 텄다.

" 겁 먹지 마. "
"...... "
" 널 헤치지 않을거야. "
"..... "
" 네게 전하고픈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
" ....뭔..데요? "

" ...내가 네게 환각을 걸었었어. "
" !!!... 왜... "
" 너가.. 싫었어. 형들이 자꾸만 잘 해주니까. "
" .... "
" 근데, 트라우마가 있는 줄 몰랐어!!.. 정말이야.. "
"..... "
" 근데 너 남자공포증.. 걸렸다해서.. 사과하고 싶어서.. "
" 나.. 한테요? "
" 응.. 트라우마 건들 생각도 없었고.. 살짝만 놀래켜주려던 거였는데.. 너무.. 크게 힘들어해서.. 미안해서.. "
"..... "
" 용서해달란건 아니야!.. 그냥.. 미안해서.. 사과하고 싶었어.. "
"...... "
" 내가.. 아직 옳고 그름을 잘 판단 못 해.. 웃기지?.. 이 나이 먹고.. 그래서 욕도 많이 먹고.. 그랬거든.. 이번에 그냥 욕먹고 끝낼 일 정도 아닌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말해줘야 될거 같았어. "
" 그니까.. 그냥 마음 편하자고 하는 사과 아니에요? "
" 그런건 아니야!! 그냥, 상황이 어떤지는 말해줘야 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리고 사과 못 받으면 찝찝해 할 거 같아서.. 잘못 했으면 꼭 사과해야 한다고.. 그랬거든.. 석진형이.. "
여주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그런걸 석진이 알려줬다니? 보통 유치원에서 배우고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나.
" 석진오빠가 그걸 왜 알려주는데요? "
" 어?... "
" 원래 가정에서나 유치원에서 알려주지 않나. "
" ..나 발현이 3살 때 돼서.. 여기서 자랐어. "
" 어릴 때 부터 사회생활을 했는데 서툴다고요? 핑계 아니에요? "
" ...못 믿겠지만, 나 형들 만나기 전엔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왔었다?.. 낯을 많이 가려서 어렸을 때 부터 유치원에 가면 말도 못 하고 친구들이 말 걸면 울었었다. "
"..... "
" 그래서 친구도 없고 나가지도 못 해서 가족도 못 만나니까 아무도 만나기 싫어했었어. 그러던 중에 친해진게 희연누나랑 형들이고. 이젠 가족 그 이상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누가 끼는걸 싫어했었고.. 우리끼리가 편해진거지. "
"..... "
" 변명으로 들릴 수 있는데, 그래도.. 들어줘서 고마워. 답변은, 너 깨고나서 받을래.. "

"..... "
" 그니까.. 꿈에서 빨리 깨서 나 찾으러 와주라.. 석진형이.. 많이 걱정하고 있어.. "
그 사이로 보인 정국의 미소는 희미하면서도 씁쓸해보였다. 그런 정국을, 여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짓는건데. 분면 피해자는 여주,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피해자인듯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국은 정말 위태로울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래. 사실 정국만이 질투심과 불안함에 눈이 멀어 여주에게 상처준 것이 아니라, 여주 또한 제 자신도 모르는 새 정국의 트라우마를 건드며 상처를 주고 있었다.
결국은 이 모든 일이 불안하고 초조해진 정국이 질투해서 확김에 저지른 일이지만, 그 불안과 초조한 감정을 선물한 당사자는 여주였던 서로의 사정에 대해 모르기도 몰랐고, 돌리고 돌리다 보면 둘의 사이에는 무관심했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돌아갈 수 있는 복잡한 문제였다.
혼란스러워하는 여주에게 잘 자라는 한 마디를 남긴 정국이 하얀 공간을 빠져나왔고, 이내 여주가 있던 장소의 주변환경이 자연으로 뒤바뀌었다. 산산한 바람에 부드러운 이파리가 흔들리고, 크고 멋진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멋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에 관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닌 여주였다.
" 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
미간을 찌푸리곤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문지르며 불만을 드러내는 여주였다.
이번주 가기 1시간 전.. 마감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