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 공포증

14화

photo
파수꾼 공포증






달칵- 방 문이 닫히고 희연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저의 연기가 잘 통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 아.. 풉, 그걸 믿는거야? 일이 좀 순탄하게 풀리겠네.. "





그래. 그녀는 그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윤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 생각처럼 그녀의 어항 안에서 뻐끔거리고만 있는 붕어완 달랐다. 윤기는 아침에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주위에 신경을 끄고 있었을 뿐이지 그 때까지도 멀쩡한 희연을 보지 못했을리 없었다.



애초부터 윤기는 다 알고 있었다. 귀찮은일에 속아주고 적당히 맞춰줬을 뿐이지. 하지만 이번엔 속아줄 이유가 없었을 뿐더러 속아줄 마음도 없었다. 그저 나중에 가서의 희연의 반응이 궁금했을뿐. 과연 자신의 편이라고 굳게 믿고있던 허구가 깨지고 진실을 알게되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얼마나 큰 분노에 치를 떨까. 현실을 막아주던 멤버들의 믿음이 깨져 진실을 마주하면, 얼마나 무너질까.



딱히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가 그 위상을 가지고 기세등등하여 이제까지 부린 텃세들이 얼만데. 아마 저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따져든다면, 그녀에게 당한 이들이 얼마나 어이없어할지. 이제외서 이러는 이유? 글쎄. 그동안은 그래도 희연의 가이딩이 그나마 맞았고, 가장 안 귀찮은 일이라 생각해서 냅뒀었던 거다. 멤버들이 아껴주고 놓치고싶지 않아하니 몇번 맞춰주고 가이딩 좀 받았을 뿐이었다.



그저 여주의 가이딩이 좋아서라는 이유 하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힘들게 살아온 그녀를 동정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 그녀는 사람을 끌어들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천천히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손을 좀 올리면 움츠러드는 그녀가 귀여우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걸까. 그녀는 슬쩍만 봐도 무언가 안 좋은일이 있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photo

" 이게 뭐하는 짓이냐.. "





저도 모르게 그녀를 생각하며 웃고 있었다. 이게 뭐람. 병신같이.. 참 이상한 구석이 있는 그녀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상이 생긴걸수도.. 곰곰히 생각에 빠진 그가 허공에 읊조렸다.










photo









" 몸은 좀 어때? "





한참동안 여주와 눈을 맞추던 정국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 뭐, 그럭저럭.. 괜찮은거 같아요. "



photo

" 그.. 나 안 미워? "





정국이 눈치를 보더니 슬쩍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눈치 보이겠지. 여주도 대충은 알았다. 아무 생각없이 걸었을 능력인거. 애초에 그가 굳이 그녀의 생각까지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걸 여주도 알고 있었고. 그의 성격을 대화 몇마디로 알아차린 여주였다.



정국은 그런 성격이었다. 정말 딱 자기의 관심사 빼곤 신경도 안 쓰는. 하지만 저의 관심사를 건든다면 끝까지 파고드는 무심한 의지의 사나이. 그게 정국이었다.



그래. 자신이 차라리 정국에게 말대꾸를 했다면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갈거였다. 그녀가 어떤 태도는 상관 없었으니까. 애초에 시비붙을 일도 없었겠지. 아마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여기 아파서. 하고 자기 상처를 보여준 뒤 치료만 하고 나갔을 것이었다. 그는 누가 자길 만지든, 무시하든 상관이 없었다.



근데도 여렸다. 자기를 비난하는 말이 들려오면 무시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 되뇌이고 자책했다. 그렇게 조금조금씩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것을 건드는건 끔찍히도 싫어했다. 누가 희연을 만지는 것도, 그녈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너무 화가나고 불쾌했다. 그럴수록 별꼴이라며 남들은 더욱 욕했고 그는 자신이 정말 무능한 사람이라며 저 자신을 마구 채찍질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한두명의 말이었다면 무시하고 지나갔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 한명 두명이 모여 단체가 되니 점점 두려워지고 피폐해져만 갔다.



사실상 직접적으로 희연을 건든것도 아니고 그녀의 지인과 불화가 있었던 거였다. 그에 괜히 짜증이 나 희연에게 가서 털어놓으며 짜증을 냈고, 옆에서 듣고만 있던 정국은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저의 손목을 붙잡고 올려다보며 혼내달라고 했기 때문에 깽판을 쳤던 것. 딱히 별 관심은 가지 않았다.



얼마나 됐을까. 이젠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랜세월 동안 희연만을 바라보고 그녀만을 관심사에 뒀다. 물론 형들 또한 좋아했지만 관심사에 둔건 희연 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희연을 잠시라도 안 보면 짜증을 내던 그가. 희연의 앞이 아니면 잘 웃지도 않던 그가,



photo

벌써 세시간째 희연도 없는 곳에서 여주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그녀는 그의 마음 속 깊은곳에 정착하고 있었다.







.







.







.







까득- 이미 짧아진지 오래인 손톱이 하얗고 단단한 이에 잘려나간다. 보는 사람도 아파보일정도의 짧은 손톱을 뜯을데가 어딨다고 물어뜯고 있는건 태형이었다.





photo

" 아직도 못 일어났나? 이거 심각한거 아니야? "



이미 마인드킹으로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그는, 정말 불안했다. 그녀의 심리상태는 정말 엉망이었다. 당장 오늘 무너져내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그런 그녀에게 폭탄을 던진건 다름아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 정국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기라도 하지. 하필 정국이었다. 내가 뭐라 하지도 못하게.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여주를 우리팀에 넣지. 왜 이제서야 넣어선 아무 말도 못 하게. 괜히 상황탓을 했다. 우리가 잘못된걸 알면서도, 꼬일대로 꼬인걸 알면서도 미련하게 모르는 척 했다. 멍청하게도 외면했다. 그 결과가 여주가 쓰러지는 거였다. 그럼에도 자꾸만 상황탓을 하게 됐다.





photo

" 전부 다, 좆같아. "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태형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하게 퍼졌다. 목소리는 작아도 그의 커다란 진심만을 꾹꾹 눌러담은 한마디였다.










photo









정말 아무일 없이 2주가 지나갔다. 뭐 진짜 어떻게든 하나 뽑아보자면 여주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하나같이 달려간 멤버들이랄까. 숙소엔 정국, 윤기, 희연, 석진만이 남아있었다.



아, 얼마 안 가 여주 힘들게 하지 말라며 따라나간 석진과 정국에 윤기와 희연, 둘만 남았었다. 희연은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었고, 윤기는 그런 희연을 슬쩍 본 채 피식- 웃곤 유유히 방으로 들어갔다.



멤버들이 달려나간 다음 날 혼자 여주를 찾아가 둘이서만 오붓하게 있었던 윤기가 승리 아닌 승리를 했었다지.



그렇게 무난하게 돌아온 숙소. 숙소는 한 명을 뺀 일곱 남자들이 여주를 반기고 있었다. 희연은 혼자 덜덜 떨면서 윤기의 뒤에 숨어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했겠지. 안타깝게도 희연은 머리만 멍청한게 아니라 눈치도 없었다. 알게 모르게 여주를 반기는 윤기를 혼자만 눈치채지 못 했다면 말 다 했지.





" ...오빠, 나 무서워. "



" ..아. 풉. 그래? "





자신의 뒤에서 손을 떨며 티나게 크게 말하는 희연에,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왔다. 일반인들에 비해 몇배나 청각이 뛰어난 센티넬이, 그 말을 못들었을리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희연을 향했다. 너무도 대놓고 벌벌 떨며 여주를 범죄자 취급하는 희연은, 얼핏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라도 당한 듯 벌벌 떨고있어 모두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리고 그 앞엔, 거만한 자세로 서있는 윤기가 보였다. 올곧게 치켜뜬 눈에 비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희연이 당황한건, 멤버들의 차가운 반응이었다. 그래. 멤버들은 결코 여주를 의심하지 않았다. 여주가 이 곳에 들어와 희연을 괴롭힐 타이밍이 언제 있기나 했던가. 멤버들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았다. 이 모든건, 저의 대변인들을 심각히 과소평가했던 희연의 자업자득이었다.







photo

" 풉.. 아.. 픕... 프흨... "





결국 참다못한 윤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희연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 그래. 내가 이런걸 기대했다고. 그야말로 대만족이었다.





" 오빠, 그게 무슨!.. "



photo

" 너 진짜 웃긴다. "





내가 너 말을 믿을줄 알았던거야? 그렇게 멍청해보였냐? 윤기가 대놓고 웃어보이자, 얼굴이 새빨개져 울듯이 그를 바라보는 희연. 둘의 대화에 나머지 일곱이 머리에 물음표를 달고 그를 쳐다보면, 방에서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누설해버린 윤기였다. 그에 자세한 내막을 아는 태형과 옆에서 여주가 얼마나 심하게 구타를 받는지 봐온 석진, 실수로 여주의 커다란 트라우마를 건드려 더 큰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뻔만 정국은 정말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기의 말을 듣곤 말이 없어진 여주가 석진은 불안할 지경이었다. 이 모든게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거라 이젠 보지 못하는 엄마가 보고싶어 예전처럼 혼자울진 않을지 꿈에서라도 아빠와 똑같이 누군갈 쥐어 패 자다 일어나 헛구역질을 하진 않을지 자기 자신한테 혐오감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여주는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줄도 알고 화가 나도 제 자신에게 해가 된다면 꾹 참아보는 이젠 꽤나 성숙해진 아이였다. 그런 사실을 실감할 때면 석진은 이따금 씁쓸해졌다. 예전엔 작고 작던 아이가, 내 도움을 필요로하고 졸졸 따르던 그 아이가 벌써 쑥쑥 자라 제 손길을 받지 않고도 무언가 척척 해낸다는건 뿌듯하면서도 좋지만은 않았다.



아직 어린줄로만 알았던 자식이 벌써 혼기가 차 데려온 결혼할 애인을 본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기뻐할 일인데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저 혼자 척척 해나갈 나이여도 걱정되는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힘이 쭉 빠지며 무력한 기분이 들고, 이런 기분이 들게 한 그녀가 미워졌다. 이러면 안되는데. 다 똑같은 내가 챙겨야할 내 동생들인데. 자꾸만 그녀가 미워지고 싫어졌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신은 희연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주의 걱정이 되는건 정국도,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지 않을까. 지금 여주만을 경멸을 가득 담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단 한 사람만 빼고.



사실 그 말을 한 윤기도 여주가 신경쓰여 자꾸만 그 쪽을 힐끔거렸다. 아무생각 없이 힐끔대다가 그 사실을 깨달은 윤기는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니가 뭔데 내가 이렇게 신경쓰는거야? 왜 자꾸 이렇게 되는건데? 정작 여주는 한 게 없다는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녀가 자신을 홀린 것 같아 얼떨떨한 기분을 떨쳐낼수 없었다.



그녀를 걱정한 태형도 그녀가 지금쯤 무슨 생각 중일지 가늠이 안 가 생각을 읽어보려 하였지만 무슨 일인지 통하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상대는  SS 이그노얼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읽혔던건 그저 그녀의 상태가 불안정했었던 탓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은 S급 마인드킹인 태형이 읽겠다고 발악해도 읽히지 않을것이었다.



또한 그녀를 걱정한 정국이 그녀의 생각을 지워버리려 했다. SS급 카피어인 그는 완벽하겐 못 하더라도 지우겠다 발악하고 능력을 쓴다면 조금 무리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물가물하게는 지울 수 있었다. 아, 얘가 나 싫어하는구나. 정도? 그런 정국의 손을 매정하게 쳐버린 여주였다. 기억을 지우고 싶진 않았다. 조금 시달리더라도 완벽하게 끝맺음짓기까진 하고싶었다.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던 호석과 남준이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하려 했으나, 먼저 입을 연 여주의 말에 막혔다. 그녀의 목소리엔 화가 잔뜩 눌러담겨 있었다. 석진조차도 처음 본 여주의 모습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다들. 아무것도 하지 마요. 이건 희연씨랑 저랑의 문제인거 같으니까. 뭐가 됐든 나랑 엮인거니까 처리도 내가 할거야. "





무언가 비장해보이는 여주에 석진과 태형, 정국은 무언가 크게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조금은 불안해졌다. 이내, 여주의 말문이 다시 트였다.





" 일단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앉아서 얘기할까요? "





자신을 열심히 노려보는 희연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한 그녀의 말에, 모두들 홀린듯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그 후론, 길고 긴 여주의 말이 시작되었다.





" 간결하게 본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어요. "





드디어, 베일에 싸이고 싸인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핳... 넘.. 늦어쬬... 그으래도 이번편은 쪼꼼 길게 썼다고.. 생각하는..데요오..



)  아무래도 다음편에 과거편이 나오면 곧 완결이 날 듯 싶네요.  :D

아직 남주는 미정입니다!
조만간 남주투표 할 것 같으니 오늘부터 마음 속에 한 명씩 정해두라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