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수꾼 공포증
희연은 지금 매우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씩씩거리며 지나가는 희연을 보곤 모두가 슬금슬금 피했다. 너무 분했다. 석진의 말이 가슴 깊은곳에 박혀든 기분이었다. 솔직히 상처받을건 없었다. 그에게 내건 기대 또한 없었기에. 그저 짜증이 났다. 왜 제 맘대로 되지 않는걸까. 아까 전 석진이 한 말이 머리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 뭐, 할말 있어? "
" ..오빠, 내가 잘못한건 맞지만.. "
수치심과 분노로 뒤섞여 목소리가 떨렸다. 저의 팀에서 가장 이성적인 석진이었다. 언제나 알게모르게 그의 동생들을 챙겼으며 논리적인 말로 어떤 논의든 척척 이기는게 석진이었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도발하는게 석진이었다. 그치만서도 그만큼 무서운게 석진이었다.
그는 확실히 노빠꾸였다. 상대가 누구든지 제 사람을 건들면 가차없이 물어뜯는게 석진이었다. 그래. 그 누구든지. 그 타깃이 이번엔 저가 된것이었다. 희연은 새하얗게 질려 덜덜 떨었다. 그는, 빡치면 살의를 내뿜는 윤기보다도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저의 편이라 든든했었다. 그치만 저를 물어뜯을 준비를 하는거라면, 말이 달라졌다.

" 아, 너가 잘못한건 알아? "
" ...응.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 "

" 그럼 꿇어봐. "
" ...뭐? "
" 오빠!! "
잘못했다며. 그 증거를 보여줘. 그런 석진의 반응에 놀란 여주가 급하게 석진을 제지시켰다. 뭐, 그런다고 들을 석진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희연은 입술을 꾹 깨물고 손을 덜덜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꿇으라니. 자존심이 갉아먹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천천히 여주를 향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모욕감에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은 저절로 그녀를 표독하게 쏘아보게 되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밉고 싫었다. 그녀가 빨리 사라졌으면 싶었다.희연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의 비밀병기를 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생각하니 다시 열이 뻗쳤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움직이는 희연에 산처럼 쌓인 짐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바로 옆을 지나가던 한 신입 여직원이 부딪혔다. 때마침 그녀는 노멀. 센터 안에서 지위가 높지 못한 여자였다. 희연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었다.
짜악- 마찰음이 울려퍼지고, 직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뺨이 빨개진 여직원이 아린 뺨을 붙잡고 희연을 올려다 보았다. 아무리 봐도 23이 넘지 않을것 같은 어린 외모. 생긴 것 또한 반반했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다시 한 번 뺨을 내리쳤다.
참지 못 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그녀가,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비되어 짜증이 치밀었다. 너무도 연약해보이는 그녀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저는 연기로 겨우 돋보였던 연약함. 근데 데체 남들은 어찌 저리 쉽게 한단 말인가. 화가 나서 또 한번 손을 들어올리자,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 제, 제 친구가 좀 부주의 했어요..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
" 흐.. 죄, 죄송.. 해요... "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저 어린 나이의 노말도 동성이긴 했어도 자신을 챙겨주고 지켜주는 친구가 있는데, 이 나이 먹도록 심지어 높은 등급의 가이드임에도 지켜줄 사람 하나 없는 저는 데체 어텋게 살아온 것인가. 아, 그렇구나. 이게 다 김여주, 그 계집이 오면서 이렇게 된거였어. 너의 그 행복을, 부셔놓을것이다. 꼭 부숴놓고 멤버들과 저. 이렇게 여덟이서 하하호호 지낼것이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잘 살것이다. 그렇게 다짐하였다.
저 혼자만의 다짐을 끝내고 천천히 발을 뗀 희연이었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자신의 머릿속에선 이미 여주가 멤버들을 꼬셔간 여우년, 등급 높다고 으스대는 잘난척 대마왕일 뿐이었음을.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건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버려짐과 다름없는 희연의 모습을 보며 꼬숩다고 키득이는 직원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들을 저 혼자만 모르는 희연은 여전히 허리 꼿꼿이 피곤 도도한 발걸음으로 센터건물을 나가고 있었다.

" 나올 필요가 없었나보네. "
비록 희연을 믿지 못하고 겉으로만 맞춰주었다지만, 어찌되었던 이제까지 그녀의 가이딩에만 매달려 마른목을 축인건 사실이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결코 변치 않을, 변치 않는 사실임에 마지 않기에 그래도 달래주려는 마음에 나와보았다. 그 곳에서 횡포를 부리는 희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조금은 우습기도 한 꼴이었다. 저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면서도 몸부림 쳐 가장 큰 공간을 차지했으면서, 한 명이 지나가며 부딪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진상짓을 내뱉어내는 그녀는 매우 추해보일뿐만 아니라 난폭해보이기까지 했다.
오히려 아직까지 그녀의 실체를 모르는 멤버들이 이 장면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 정도로. 애초부터 추태를 보이는 희연보다 그런 희연을 본 멤버들을 걱정하는 호석의 태도는, 이미 그는 그녀를 팀 멤버로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됐다는걸 보여주었다.

" 어린 직원님은 잘 가셨나 몰라- "
뒤도 안 돌아보는 호석은 무심해 보이기도, 오히려 쿨해 보이기까지 했다. 애초부터 호석은 남을 잘 챙기긴 했지만서도 그 모든건 저의 지인 한정에서 였다. 그래, 사실 호석은 남한테 관심같은건 가지지 않는 주의였다. 저의 지인들의 이야기라면 발 뻗고 나서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고 슬퍼해주며, 가장 열정적으로 화도 내주는 정말 적극적인 사람이었지만 그게 만약 남의 일이다 싶으면 애초부터 흥미만 잠시 가지곤 관심을 꺼버렸다.
그래서 방금 일어난 희연과 어린 직원의 일에도 약간의 흥미만 가질뿐 관심자체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있자면 여주와의 관계에서 있었다. 오히려 남에게 질투도 느껴보고 그녀를 괴롭히는 희연이 아니꼬워 보이기까지. 전에는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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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선, 모두가 놀랄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숙소 안의 화분이란 화분은 다 깨져 유리조각이 굴러다니고 식물들은 처참하게 밟혀 있었으며 주방에서부터 시작된 핏자국이 여주의 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꽂았던 듯한 꼬챙이에선 아직도 채 마르지 못한 피가 줄줄 흐르고, 바닥 곳곳엔 꼬챙이로 마구 찍어낸듯한 작은 바늘 구멍이 수십개는 족히 돼 보일만큼 많았다.
여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문이 막혔고, 앞에 펼쳐진 광경을 모두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윤기가 금방 깨진 유리와 화분을 치우고 보니, 깨끗한 집안에 남은 핏자국이 모순적이게 다가왔다. 여주가 덜덜 떨며 방 안으로 가보니, 그 안의 풍경에 깜짝 놀라 눈물을 펑펑 쏟으며 무너져내렸다.
그런 여주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녀에게로 달려간 나머지 멤버들도 결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 안은 이미 여기저기 피가 튀어있고 희연또한 군데군데 튄 피로 얼룩이 져 있었다. 희연은 광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죽어있는 쥐를 꼬챙이 하나로는 못 움직이게 고정해놓고 나머지 하나로 계속해서 쥐를 찔러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미 죽은지 오래되어보이는 쥐들이 하나같이 장기가 파손되어 대여섯마리정도 쌓여 있었고, 그 반대쪽 옆에는 아직도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꼬챙이에 꽂혀 죽어있는 쥐들이 서너마리가 거품을 몰고 쓰러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에 죽였던 다섯마리의 쥐에 각작 꽂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섯개의 꼬챙이들이, 벽에 단단히 붙어있는 여러개의 사진 중 다섯개에 각자 날아가 꽂혀있었다. 아홉개의 사진엔 모두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웃고있는 여주의 얼굴이 붙어있었다. 그 앞엔 두 개의 촛불이 방을 밝히고 있었고 커튼으로 창문을 막고 불까지 꺼 마치 저주하는것만 같았다.
여주가 다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엉금엉금 기어서 주방으로 가보니 달콤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물체가 있었다. 그 냄새를 맡고 열어놓은 문틈새로 쥐들이 들어와 그 물체를 건드리면 위에 설치된 꼬챙이들이 차례대로 하나하나 쥐의 몸을 관통했다. 덫이었다. 센티넬의 능력으로 만든게 뻔했을.
정말 역겨웠다. 헛웃음이 나왔다. 반정부 군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센터 아니던가. 그로인해 국가의 히어로로 등극해 사람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아온 이들이 이래선 안됐다. 이들은 국민뿐만이 아니라 세상 만물 모두, 생명이 있는 것들이라면 모두 존중해주고 아껴주어야 할 따름이었다. 환경오염으로 많이 다치거나 어려움에 처해있는 동물들을 도와주진 못할 망정에 이렇게 살아있는 쥐를 꼬챙이에 꽂아 죽인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여주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아무런 생기가 돌지않는 눈으로 무표정하게 하나 둘 죽어나가는 쥐들만을 보고 있으니, 눈 앞을 크고 부드러운 손 하나가 가려주며 귓가로 낮은 음성을 흘려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입김이 귓가를 간질이며 고막을 울렸다. 우습게도, 난 그의 목소리 하나로 점차 호흡에 안정이 왔다. 하도 정신이 없었던지라 누구였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따뜻했던것 하나는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 쉬- 괜찮아. 다 괜찮아.. 그러니 진정 해. "
천천히 날 다독여주던 그 음성이 미치도록 달콤해서, 시리도록 다정해서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반복재생되었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의식이 흐려졌다. 얼핏 뜨인 눈사이로 말캉한 입술이 이마를 스쳐지나간것 같기도 했다. 그의 두 눈엔 걱정이라는 감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내 방 침대였다. 방 안에 가득 찬 탄소를 빼려했던건지 활짝 열린 두 창문새로 방충망의 구멍 사이사이를 스쳐지나친 바람이 커튼을 열심히 펄럭이며 여주의 머릿칼을 부드럽게 매만져주었다. 방 안에 그렇게 쌓여있던 쥐의 시체도, 얼룩으로 남을 것만 같았던 핏자국도 모두 사라진채였다.
여유롭게까지 느껴지는 기분좋음에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지 못한 꼬챙이 자국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씁쓸한 마음으로 그 자국을 쓰다듬고 있으니, 밖에서 쨍그랑 하는 마찰음과 함께 꽤나 큰 소음이 들려왔다.

" ..뭐라고 했어요, 지금? "

" 정국아, 일단 진정 좀.. "

" 진정? 진정이라고요? 씨발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

" 그래. 흥분할 수 있는 주제지. "
근데 말이야, 정국아.. 상황과는 맞지 않게 생글거리던 석진이 금새 표정을 바꿔버렸다. 그러자 안 그래도 쌔하던 공기가 더욱 쌔해지는게 느껴졌다. 여주 빼고 모두가 일어난 아침, 늦은 밤까지 얘기를 해보던 다섯 멤버가 결국 희연의 퇴출을 결론해냈다.
희연을 찾으러간 호석과 도망쳐버린 정국을 제외한 다섯 멤버들의 주장이었다. 원래부터 희연의 본성을 알고 있었으며 희연을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았던 호석은 알아서 하라는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정국만큼은 희연을 놓지 못한다는듯 자꾸만 희연을 변호했다.
그럴만도 한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던 그에게 처음 문을 두드려준게 희연이었다. 물론 모두들 손을 내밀어주긴 했다. 그러나 문을 두드려준건 오로지 희연 뿐이었다. 그게 다 그가 저에게 충성할 애완견이 될것을 다 예상하고 한 짓이라곤 상상도 못 하는 그였다.
말을 끊어 잠시 뜸을 들인 석진이 끊긴 말을 계속 이었다. 그 말 속에 서린 냉기에 주변 사람들 모두 헉 하며 숨을 들이쉴 수 밖에 없었다. 평소 석진이 매우 관대한 사람이긴 했지만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확실히 선을 그으며 가장 무서워지는게 바로 석진이었다.

" 말이 좀 쎄다? "
그는 매우 친절하고 다정한 형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형이었다. 그락 그는 형이기만 했었다. 예전부터 오빠는 단 한 사람. 자신의 아픈 손가락 여주의 오빠일 뿐이었다. 애초부터 희연은 저의 사람에 들이지 않았었다. 그녀와 얘기를 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저들을 무시하고 물건 취급을 하였다. 그에 석진도 그녀에겐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 그래도 퇴출은 아니잖아요. "
그동안 해주었던 얘기는 모두 뭘로 들었을까 싶은 말이기도 했다. 약 20분간 열심히 말했던 이야기는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반박도 할 수 없을정도로 세세하게 말해준 그 내용을 듣고도 저런 반응이라니 조금은 맥이 빠지는 것도 같았다. 분명 그동안 봐준것도 있고 이번엔 정말 커버칠만한게 되지 못했다.
" ... 또 싸우는 거에요? "
모든 상황을 지켜본 여주가 지겹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있는줄도 몰랐던 여주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귀신이라도 본듯이 놀랐다. 서로 말하는데에만 집중해 여주가 오는것도 몰랐던게 화근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지난날이 스쳐지나갔다. 강제적으로 이 팀에 들어와 첫날부터 쌈박질을 보다가 결국 터져버려 그럴거면 나가겠다며 가출한 그녀.
그 날은 석진이 무서웠다면 지금은 그저 그녀가 나갈까, 이 자체로도 충분히 무서웠다. 이것이 바로 처음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니었을까. 처음과 달리 지금은 그새 정까지 들었을 뿐더러 전까지는 느껴보지도 못했던 오묘한 감정이 밀려들어오는 원천지. 그게 바로 그녀였다.
이제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된 그녀는.. 정말 그들의 사람이 된 그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도 휘어 잡으면 금새 무너져 내릴것만 같은 연약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엔 그랬다. 저의들의 눈에 띄어 눈부시고 찬란하게 피어버린 그녀. 그녀는 이미 그들의 전부래도 별 할 말이 없을듯 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희연은 주먹을 더욱 꽉 쥘 뿐이었다.
생존신고 입니다...ㅠ
너무 오래걸렸죠...
죄송해요..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