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티넬 공포증
몸이 덜덜 떨려왔다. 목이 매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온 몸이 미친듯이 떨려왔다. 그냥 너무 무서웠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오버랩 되는듯 하였다. 한 때, 나도 이런 장면을 봤었다. 정말 어렸을 때, 엄마가 보던 드라마를 따라보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인 여주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당하다가 남주인공이 구해주는 장면을 본 적 있었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당장 바로 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실제론 없는 왕자님을 기다리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 저 사람은 위험한데 왜 안피해요? 답답해. 철 없던 나의 한마디였다. 그런 내게 엄마는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릿칼을 쓸어주며 말을 이어갔다. 원래 정말 무서우면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너무 무서워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난 아빠가 다가올 때 마다 반항했었다. 끝까지 발버둥쳐서 살아남았었던 나였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못한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치만 그 답답한 입장으로 와보니 알겠더라. 엄마 말 틀린거 하나 없었다고. 정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처럼 발이 어디 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대뇌에서 발을 떼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발을 움직여 도망가라는 명령조차 내리지 못했을 수도.
" ..아, 아.. "
" 여주야, 오랜만이야. "
씨익 웃는 얼굴이 역겨웠다.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꼬리가 꼴보기 싫었다. 목이 매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힘이 풀린 다리로 겨우 뒤쪽 벽에 기대어 섰다. 너무 무서웠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이 저절로 리플레이 되었다. 믿지 않았던 나의 왕자님들이 떠올랐다. 언제나 내겐 슈퍼맨이었던 석진오빠, 날 따뜻하게 보듬어줬던 김태형씨, 함께 놀며 즐거웠던 전정국씨, 표현은 잘 하지 않았지만 날 아껴줬던 김남준씨, 민윤기씨, 정호석씨, 박지민씨. 갑자기 모두가 떠올랐다.
한 편, 한참 싸우고 있던 일곱명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가이드만 오지 않았다는걸 기억해냈다. 혹여 자신의 마음 속 그녀가 다친건 아닐까 걱정하며 쭉쭉 싸움을 밀어붙여가는 이들에, 반정부군은 자꾸만 밀려갔다. 결국은 후퇴해버린 이들 가운데엔, 자신들의 그녀를 찾아가는 일곱 남성만이 보일 뿐이었다.

스윽- 굳은깨 박힌 두꺼운 손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잠깐 사이에 들어온 가이딩 조차도 황홀한 건지 손 끝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느낌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더러웠다. 그 더러운 손을 쳐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과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며 몸을 점점 굳혀만 갔다.
금새 시계가 가이딩이 꽉 찼다며 삐삐- 알람을 내는데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이 성가시다는 듯 거친 손길로 시계를 잡아 뜯어 가차없이 던져낼 뿐이었다. 금새 내팽개쳐진 시계는 돌맹이와 부딪혀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다. 점점 더러운 입술이 가까워졌다.
탁- 소리와 함께 보이는건 저 멀리 나가 떨어진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일곱개의 널찍한 등짝. 그녀의 일곱 왕자님들이었다. 자신을 향한 등들이 든든한 방어막인것 같았다. 천천히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여주는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 어, 석진이 아니니? 오랜만이구나. "

" 안녕하세요, 아저씨. "
" 못 알아볼 뻔 했네. 정말 많이 컸, "

" 아저씨는 참, "
그대로시네요. 비소를 담고 말하는 석진의 말투에 한껏 당황한 아빠가 멈칫- 했다. 그의 말투 부터가 악의를 가득 담고 있었다. 석진을 제외하고서도 다른 남정네들의 눈에도 적의가 가득한걸로 보아 그는 희연이 말한 저의 딸의 백마 탄 왕자님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의 입가에도 어느새 진한 비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땠다.
" 이런.. 좀 곤란하게 됐는걸? "
팡- 그가 능력을 썼다. 하늘 위로 날아가 쏘아올려진 새빨간 불길. 파이어 키네시스. 화염 센티넬이었다. 그가 방금 쓴 능력만 해도 A급은 거뜬히 넘어가는 것 같았다. 머리위로 쏘아올려진 불길이 신호였는지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함정이었다.
애초부터 그가 정부를 친 건 다름아닌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역겨웠다. 자신의 딸을, 그것도 그냥 가출한게 아니라 도망쳐온 딸을. 달래어 데려가려던 것도 아니고 그저 탐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를 끼쳤다. 다시 잘해준다며 데려가 아껴줘도 못마땅할 망정 이렇게 성희롱이나 하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선 보통 빡치는 일이 아니었다.

" 생각보다 썩은 놈이었네. "
" 뭐? "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정국의 태도가 그를 더 화나게 했다. 하. 헛웃음 친 아빠가 손짓하자 짜기라도 한 듯, 아니 아마 짰었을 대로 모두가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여러 센티넬들을 데려왔는지, 별에 별 능력들이 보여왔다.
그에 맞서 남준이 쉴드를 치고 정국이 왜 데려 왔을지도 모를 - 아마 무작위로 데려온 것 같다. - 매료를 카피해 반절 정도를 저희 편에 끌어와 반대쪽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를 시작으로 모두가 무작위로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에 이들을 발견한 정부군도 모여서 어느새 규모가 커져 있었다.
서로 뒤엉켜 싸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모두들 행동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아빠의 팔에 목이 감긴채로 덜덜 떨고 있는 여주가 보였다. 아빠가 불로 칼을 만들어내 여주의 목에 갖다 댔다. 여주의 피부가 빨갛게 익어오르는게 보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그런 와중에도 리커버리 능력과 함께 가이딩까지 소모되어 점점 체력적으로도 딸려가던 중, 아빠의 손이 떼어짐과 동시에 아빠는 위로 딸려 올라가고 여주는 누가 받쳐주기라도 한 듯 천천히 주저앉았다. 윤기의 염력이었다.
으아아악 !! 추하게 소리를 지르며 딸려 올라간 아빠는 높은 위치에서 혹여 떨어지면 많이 다칠까 칼만 꼭 붙잡고 매달러 있었다. 그러자 고개를 한 번 기웃한 윤기가 칼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떨어지라고. 그래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아빠에 작게 욕을 짓걸인 윤기가 그대로 칼을 떨어뜨렸다.
아무도 없는 바닥에 착지한 아빠는 꽤나 리스크가 큰 듯 해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크게 다치진 않아보였다. 뭐, 기껏해야 팔다리 골절 정도할까. 삐딱하게 아빠를 쳐다본 그는 그대로 다시 그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다시 떨어뜨렸다. 그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갈 때 쯤, 아빠도 꽤나 부상이 심해보였다.
그러고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전부 다 체력적으로 지쳐있다는 것. 지금 당장 끝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방금 전 엄청나게 반정부군들을 몰아냈던 여파로 팀원들의 가이딩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을 가이딩해줄 수 있는 가이드인 여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윤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자신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56%. 그리 적진 않지만 많지도 않은 숫자였다. 이내 꽤나 큰 파장이 일더니 윤기의 주변부터 무언가 크게 올라왔다. 모두가 놀라 그만을 쳐다보았다. 이내 그 파장이 반정부군에게 닿자 하나 둘 떠올랐다.
반정부 군이 모두 떠올랐을 쯤, 가이딩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게의치 않고 모두를 날려보낸 윤기. 얼마나 멀리 날려보내는건지 꽤 빠른 속도로 보냈음에도 끝까지 잡고 있는 윤기였다. 점점 가이딩 수치가 떨어지고, 그가 모두를 놓았을 땐.
폭주였다.
모든게 날아다녔다. 부러진 나뭇가지하며 땅 깊숙이 박혀있던 바위에 떨어진 간판이나 건물 부서진 조각들까지. 모든게 날아다니다가 휘몰아치기 시작하자, 누군가 외쳤다.
" 야, 다 숙여!! "
넋 나간 여주만이 못 들은 말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런 그녀의 머리를 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마지막 한 줌의 이성이 남은 윤기였다. 그런 그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조용히 상황파악을 시작했다. 모든 물건이 떠다니는것도 아니고 휘몰아치는데 바람이 쎄지 않다. 염력의 폭주.
겨우 상황파악한 그녀가 윤기에게 달려갔다. 모두가 놀라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윤기가 겨우 조절해 모든 움직임을 막았다. 그러나 모든걸 떨치지는 못했다. 겨우 윤기에게 닿은 여주가 그대로 가이딩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처음 느껴보는 황홀한 가이딩이 흘러나와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 하.. 너, 진짜.. "
그대로 여주의 손을 끌어당겨 안은 그가 저의 품 안에 안긴 그녀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점점 빠른 속도로 가이딩이 차오르고, 천천히 모든게 가라앉아갔다. 그 순간만큼은 몰래 끼어있던 희연마저도 아무것도 못 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가이딩이 차오른 후 자신의 품 안에서 쓰러져버린 윤기를 보며 여주는 조용히 뛰어오르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그녀 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첫 키스의 후유증인건지. 아님 그냥 윤기가 좋아져버린건지.

윤기는 폭주의 후유증으로, 여주는 아빠의 후유증으로. 각자 병실에 입원하게 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여주는 심리상담사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트라우마를 극복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모든게 무서웠지만 천천히 자신을 구해주러 왔던 왕자님들을 생각하면 용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거의 괜찮아진 다음에 숙소로 들어가니 옹기종기 모여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하나 둘 인사하고 마지막 윤기오빠가 남았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부끄러웠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에 형식적 인사만 하고 얼른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 편, 거실에 남은 일곱 남자들은 모두 정적에 휩싸였다. 처음 보는 여주의 쑥쓰러움 이었다. 윤기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올린 채로 굳어있었고 나머지는 얼굴 표정을 천천히 굳혀갔다.

" ...푸흡- "
결국 웃음을 터뜨린 윤기가 여주의 방 문 앞으로 가 문들 두드렸다. 이내 여주의 들어오라는 대답을 듣고 문을 열자 자신의 모습은 보고 깜짝 놀라는 여주가 보였다. 그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진 윤기였다.

" ...아, 김여주 진짜 너무 귀엽잖아.. "
" ...네? "

" 좋아해. "
" ...... "
나랑 사귈래? 윤기의 한 마디에 미친듯이 뛰는 심장. 아, 이제 알았다. 오빠만 보면 심장이 그렇게 뛰었던 이유. 괜히 부끄러워지는 기분. 모두 오빠를 좋아해서였다. 그렇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온 기회를 무작정 차버리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 ..나도 좋아해요, 오빠. "
서로를 마주보고 웃는 얼굴이 좋았다. 이제 우린 엄마, 아빠와는 다른 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난 이제 더이상 남자가 무섭지 않다. 이렇게 우린 새로운 인왼을 맺어가는 중이었다.
네... 이렇게 길고 길었던 센티넬 포비아가 완결이 났네요..👏👏👏👏👏




윤기 4표
석진, 정국 3표
태형, 호석 1표
로 남주는 윤기로 결정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