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장인의 짧글

물고기 국이 이야기







머나먼 바닷속 왕국에 공주님이 하나 살았어요. 그 이름은 에리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고요? 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멍청하고 예쁘장한 빨간머리 공주님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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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란.


이제야 등장한 아기 물고기 국이에요. 얘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요? 우리 눈치껏 모르는 척 해요.


아무튼 아기 물고기 국이는 지금 매우 심란한 상태예요. 얼마 전에 모시던 공주님이 인간으로 변해버리셨단 소문을 들었지 뭐예요? 국이는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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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쥬님··· 전에 빌린 돈은 갚고 가셔야져···"



바로 밀린 채무 때문이에요. 결국 돈을 빌리고 토껴버린 공주님 때문에 빈털털이를 넘어 그지깽깽이가 되었어요. 이제 다 잃은 국이는 한 가지 결심을 했죠.



나도 인간이 되는 거야!


지 전재산도 털린 마당에 이게 무슨 개뜬금 헛소리일까 싶겠지만 국이는 계획이 있었어요. 인간이 돼서 곧 열릴 공주님의 결혼식에 깽판을 둘 생각이었죠. 물고기가 팔딱팔딱 결혼식장에 기어간들 뭐가 변하겠나요. 우선 인간이 되는 게 시급했어요.



그래서 국이는 짧은 지느러미를 힘차게 저으며 바다 깊은 곳까지 당도하게 됩니다. 바로 사채업자이자 마법사인 우르슐라에게로요. 국이는 당당히 대왕 문어 앞에 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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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영업 안 해요."


우르슐라는 눈대중으로 손님의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답니다. 그녀의 눈엔 국이는 땡전 한 푼 없는 진상 손님으로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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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만들어쥬세여!"



물론 정확했어요. 국이는 가진 건 일도 없으면서 아주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어요. 만들어조! 만들어조! 가게 마감이 10시인데 벌써 한 시간이 더 지났어요. 예상에도 없는 추가근무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우르슐라는 결국 국이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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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겔 그 대신 목소리를 가져가마."




그래도 손해보는 장사였지만 마음 착한 문어는 까짓것 마법 한 번 부려줬어요. 국이의 짧뚱한 몸에 점점 빛이 나기 시작해요.


어··· 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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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 크리스탈!"



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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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라란.


국이가 드디어 인간이 됐어요. 어머 고갱님 예쁘게 되셨다아 하며 거울을 대주는 우르슐라에 가만히 제 모습을 감상하던 국이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죠. 여긴 깊고 깊은 심해 바닥이고, 국이는 이제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꼬르륵.



숨이 막혀버린 국이는 곧 꼴까닥할 위기에 처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우르슐라는 인간이 된 국이의 얼굴에 홀딱 반해, 가 아니고. 불쌍한 물고기를 차마 내버려두지 못해 마법으로 육지에 무사 도착시켜줬답니다.




잘 가세용 꽃미남 엉엉.





그렇게 해변으로 쓸려온 국이. 정신을 차리고선 동그란 눈을 끔벅 떠봅니다. 긴 다리도 허공에 슥슥 휘적여 보고, 탱글한 볼살도 조물조물 만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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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정말 인간이 됐자나?'



하지만 거래의 대가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국이. 입만 뻐끔뻐끔 하던 중에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이런, 국이는 지금 알몸인데. 풍기문란죄로 잡혀가게 생겼네요.




"헐 미친."



불행 중 다행으로 발견자는 이웃나라 공주인 여주였습니다. 여주는 엄청난 미소년 덕후예요. 국이를 보자마자 코에서 쌍코피를 좔좔. 국이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죠. 그러자 식스팩이 더 선명히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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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갠차나여?'



이런··· 국이가 일을 키웠어요. 저걸 보고 멀쩡할 리가 없잖아요. 여주는 그만 빈혈로 땅바닥에 픽 쓰러지게 됐어요. 좋은 생이었다며 엄지 척까지 해보이곤 말이죠.



'어떠케! 나 때문에 사람이 죽어써!'



국이는 더더욱 놀라서 공주를 안아들었어요. 마음 착한 물고기, 아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사태를 손 놓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에요. 그렇게 요기조기 두리번거리다가 바위에 걸린 천을 찾아냈어요. 누가 버리고 간 옷이에요. 하필 거기 옷이 있다니, 참 신기하죠?




그렇게 옷을 챙겨입고서 왕국으로 여차저차 향합니다. 다행히 미친놈 신세는 면했어요. 여주를 안고 왕 앞에 서자 왕이 기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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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망한 놈! 당장 공주와 결혼해라!"



아··· 아부지···?



그랬어요. 눈이 정수리에 달린 미소년 덕후 여주 때문에 신랑감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던 왕은 결정했습니다. 여주가 얌전히 안겨오는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로. 사실 기절한 연기 중이었던 여주는 왕에게 찡긋 감사 인사를 날렸어요. 그야말로 부녀사기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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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긍데 결혼은 좀 이르지 않나···'



내심 공주님이 좋았지만 갑작스런 결혼 선언에 당황한 이 시대의 유교보이 국이. 공주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올망졸망한 눈으로 보는 국이에게 뭔가 큰 오해를 하고 맙니다.



"제 신랑이 배고프대요. 당장 출장뷔페 불러와."



공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말 한 마디에 그들의 눈 앞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지고야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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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 침 흘러요. 역시 인생은 돈이 다예요.



'헐 머야! 왕 마시께따···'



육지에 올라와서 줄곧 아무것도 먹지 못 한 국이는 군침을 꿀꺽 삼켰어요. 이 존나 영앤리치 공주님에게 반해버릴 것 같아요. 국이는 초롱초롱하게 여주를 바라봐요. 진정한 사랑에 빠진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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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쥬님··· 헉? 목소리가 나와여!"




헐.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갑자기 국이의 아름다운 미성이 튀어나왔어요. 아마도 우리의 착한 문어 친구가 순탄한 로맨스를 위해 고새 수를 써줬나 봐요.


다 같이 외칩시다. 고마워요 우르슐라!



아무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국이는 깜찍하게 코를 찡그리며 말했어요.



"공쥬님 사랑해여!"



나는 시방 한 마리의 짐승이여. 별안간 들짐승에 빙의한 여주는 미소년의 사랑고백에 그만 자신을 주체하지 못 했어요. 냅다 말랑 입술에 뽀뽀를 갈겼죠. 솔직히 누가 안 그러고 배기나요. 공주 무죄. 근데 그 이후가 더 가관이에요.



"헙···!"



국이가 공주의 뒷목을 감았어요. 이 새끼 고수예요. 심지어 전직 물고기라 폐활량도 좋아서 숨이 닳는 건 오히려 여주였어요. 금세 뽀뽀에서 키스로 넘어가버린 둘의 진도를 왕국의 모든 이들이 지켜봤어요. 쉿. 다들 조용히 매너모드를 지켜줬답니다.



근데 국이의 계획은 어떻게 됐냐고요? 쟤도 까먹었대요. 에리얼은 국이에게서 떼먹은 돈으로 잘 살고 있겠죠 뭐. 국이도 지금 나름의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괜찮아요.



어쨌든 여주 공주와 국이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이야기.









물고기 국이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