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닉스-박성호(하)

(박성호 시점)


낡은 별관에 간 것은 그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별관에서, 쓰러진 은단비를 발견한 것은 큰 변수였다.


작은 창고

낡디 낡아서 쓰레기 같은 물건들만 보관하는 곳이었다.

문이 처음 덜컹 흔들렸을 때는 안에 있던 물건이 쓰러진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래 잘 잠그지 않는 문이 단단히 빗장이 걸린 것이 이상했고

의문을 가지고 지나가려는 찰나,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문을 열자 더운 열감이 확 끼쳐왔다.

창문은 전부 잠겨있었고 따가운 햇살이 유리창 너머에서 내리쬐었다.

그리고 쓰러진 은단비가 눈에 들어왔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얕고 가파른 숨을 내쉬는 은단비는 곳 호흡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냥 탈수 상태에서 기절해 내쉬는 숨과는 달랐다.


이 상황, 은단비의 상태.


박성호: “….정보부 이 미친 새끼들이…”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이 무더운 날 사람을 여기에 가둘 생각을.

다 미친놈들이었다.

옛날 자료들을 자주 확인하는 정보부가, 이 창고를 오늘 한 번도 오지 않았을리가 없다.

정보부 인원 전부가, 갇힌 은단비를 알고도 방치했다는 뜻이었다.


일단 바닥에 쓰러진 은단비를 안아들어 그늘로 옮겼다.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입술은 바짝 말라 갈라진 채 힘없는 숨만 겨우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명치에서부터 뭔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비위가 안 좋을 때의 울렁임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에 가까웠다.

하지만 감정의 이름을 알아채기 전에 은단비를 안아 들어 내 집무실로 이동했다.

품에 웅크리는 은단비의 몸은 작고 너무 가벼웠다.

왼쪽 가슴 한 쪽이 시큰하게 아렸다.

이 이름 모를 감정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이 작은게 뭐길래.

쓰고 있던 모자를 은단비 얼굴에 살짝 덮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별관을 나온다.

복도를 지나가던 중 여러 사람을 마주치고 전부 다 나를 놀란 눈을 하고 쳐다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를 신경쓸 시간이 없었고, 바로 집무실 문을 발로 차서 연다.

은단비 체온은 거의 40도였고, 체온을 낮추기 위해 차가운 생수병을 얼굴과 목에 대어준다.

작게 몸이 움찔거리더니 몇 분뒤 눈을 떴다.


박성호: “깼나.”


은단비는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웅얼거린다.


은단비: “…여기가…어디…”


얼굴에 대어주었던 생수병을 따서 은단비에게 내민다.


박성호: “내 집무실. 물 마시고 정신 좀 차려.”


은단비가 생수병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은단비가 자기 손을 꽉 잡아 진정시키고 작게 묻는다.


은단비: “….창문…조금만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


박성호: “…폐쇄공포증?”


은단비의 몸이 흠칫 놀라며 굳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폐쇄 공포증이라면 지금까지의 상태가 전부 설명이 됐다.

작은 창고 안에서 웅크린 모습도, 짧고 얕게 내쉬던 숨도,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서너개를 활짝 열었다.

창틀에 앉았던 작은 먼지가 공기중에 조금 날린다.


힘 없는 손으로 생수병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박성호: “고개 들어.”


잠시 망설이던 은단비는 순순히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다.

은단비의 머리 뒤를 왼손으로 살짝 받쳐주고 생수를 천천히 흘려보낸다.

체구만큼 입도 작은지 물을 조금만 부어도 금방 입안이 찬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을 따라주면 고개를 똑바로 해서 삼키고 다시 고개를 드는 은단비를 보며 조용히 물을 따라준다.

몇 분 뒤, 불안정하게 떨리던 숨과 손이 진정되고 눈동자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맑아졌다.

맑고 그 투명한 눈빛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은단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은단비: “감사합니다….”


박성호: “됐어. 다시 쓰러지지나 마.”


퉁명스러우면서도 약간의 걱정이 서린 그 말에 은단비는 살짝 웃는다.


은단비: 하핫…네엡…”


고분고분 알겠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은단비가 진정되자 이제 슬슬 사건의 진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호: “…너, 거기에 혼자 갔다가 갇힌 건 아닐거고,”


은단비가 살짝 긴장하는게 눈에 보인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투명할 수가 있지.


박성호: ”…화내는 거 아니니까. 긴장 풀어.“


은단비가 살짝 눈치를 보며 먼저 말을 꺼낸다.


은단비: ”…팀장님이 정보부 소개해주신다고 하셔서 따라 다녔는데…갑자기 창고에 가두셨어요..“


역시는 역시다.

텃세 심한 정보부라 좀 힘들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처음 온 사람이어도, 재현 보스가 직접 팀장직을 맡겼는데, 그런 사람을 창고에 가뒀다라…

이건 재현 보스에 대한 일종의 도전과 불복종으로 연결되는 꽤 큰 문제였다.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걸 보고 또 웃어버렸다.


박성호: “네 잘못 아니니까 됐어. 이건 윗선에서 처리할 문제라, 넌 걱정 안 해도 돼.”


은단비는 여전히 불편해보이는 얼굴이다.

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보니…놀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유치한 생각을 한게 얼마만인지.

애초에 이렇게 한 사람을 신경썼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박성호: “…뭐…대신 나는 처리할 서류, 보고서가 엄청 많아져서 귀찮고 힘들겠지만.”


은단비: ”…ㄴ…네..? 죄…죄송합니다아…“


어쩔줄 모르며 허둥대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까 시큰하게 아렸던 심장이 잠깐 멈췄다가 조금 빠르게 뛰었다.

미친놈이다, 나는.

본 지 하루도 안 됬는데, 느긋하게 앉아서 저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통 흑백과 붉은색이었던 인생에 말간 파란색이 비집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박성호: ”…장난이야. 난 보고서 같은거 안 써.“


안절부절 못하던 은단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술을 뻐끔거린다.


은단비: ”…그…그러면…절…놀리신거에요…?“


당황과 황당이 교차하는 얼굴이 뾰로통하게 변한다.


은단비: ”….뭐에요…놀랐잖아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평범한 또래처럼, 이렇게 웃는건 처음이었다.

뾰로통하게 토라진 은단비는 키득키득 웃는 날 보더니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간다.


은단비: ”….푸핫…왜 웃어요…!!“


두 사람은 그렇게 몇 분간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박성호의 세상에, 말간 파란색이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ps. 박성호 집무실 앞을 지나가던 다른 조직원들은 집무실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자기 귀를 의심하며 질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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