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월광 소나타

☆솔저시윤
2019.09.21조회수 9
"윤기야, 나왔어! 늦어서 미안"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나의 여자친구, 박여주이다.
"괜찮아, 빨리가자."
다른 연인들이라면 달달한 데이트 장소로 갔겠지만
우리는 다름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내가 암 투병환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사, 가족,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여주를 만난 이후로 삶에 의욕이 생겼다.
"윤기 씨, 병이 거의 다 치유되었네요.
결과가 좋아요. 약 좀 더 처방해 드리죠."
의사의 말대로 여주를 만나면서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차도가 생겼다.
"윤기야, 나 오랜만에 월광 소나타 쳐주면 안돼?"
약국에서 나오자 마자 여주는 내게 월광 소나타
연주를 부탁했다.
월광 소나타는 어두운듯 하면서도 고요하고 잔잔하고, 또 어딘가 애절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감상해보면 어두운 밤, 고요한 호수에 달빛이 번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월광 소나타라는 노래는 베토벤이 귀족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신분 차이로 인해 이루어 지지 못한 슬픈 사랑을 그려낸 곡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랑도 비슷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주와
암투병환자에 보잘 것 없는 나, 일종의 신분 차이라 할 수 있겠지.
"민윤기! 무슨 생각해! 빨리 가자니까!"
나 혼자 공상에 빠져든 게 너무 티가 났나보다.
"푸흐-, 알았어. 가자 가."
여주가 좋아하는 내 특유의 바람빠지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음악실에 도착해 자연스레 피아노 앞에 앉아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음악실 안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우리들만의작은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다.
한참동안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되었고, 연주가 끝난 뒤 여주가 말해왔다.
"윤기야, 나 월광 소나타 오르골 주문 제작했다?"
이 노래가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월광 소나타가 명곡이긴 하다만 여주는 항상 월광 소나타를 듣고 있었다.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아? 저번에 네가 말한 그 장인한테 오르골 주문 제작한거지? 그거 비싸다면서"
"그렇긴 한데, 너랑 나랑 같이 가지면 좋잖아"
내 것도 주문한 지는 몰랐다.
"내 것도 주문했어?"
"응, 곧 올 걸?"
너무 해맑아서 뭐라하질 못하겠다.
몇칠 후, 오르골이 왔다.
"자, 이 오르골이 네 거야."
여주가 한 손으로 검은 밤하늘에 보름달이 그려진
오르골을 건넸다.
"고마워."
오르골을 돌리니 월광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이 소리를 들으니 생각났다.
아, 여주를 놓아줘야 겠구나. 여주는 행복하구나.
나는 여주와 다르구나. 여주는 행복해야 하겠구나.
베토벤도 자신이 사랑한 귀족 여인을 포기하고
이 곡을 만든 것이니까, 나도 그녀를 놓아줘야겠다.
"여주야, 나 할 말이 있어."
용기내어 말했다.
"응? 뭔데?"
해맑게 대답하는 너를 보니 더욱이나 놓아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고나서도 너의 그 아름다운 미소는 지켜져야하니까, 너를 놓아줘야겠다. 너는 꼭 나보다 오랫동안 계속, 긴 시간동안 행복해야하니까
너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 혼자서만 품고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나의 달, my month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너를 나의 달로 생각하지 않아야한다.
"우리, 헤어지자."
"ㅁ, 뭐? 뭐라고했어?"
여주가 되물었다. 더 가슴아프게, 더 놓아주기 싫게끔.
"우리 헤어지자고, 나 병도 다 나아가니까
너 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것 같네? 나 쓰레기인 거 아니까, 우리 그만하자."
그래도 나는 이 사랑을 끝내야만 한다.
여주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나쁜새끼로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그래야만 이 괴롭고도 애절하고 가슴이 시리도록, 쓰라리도록 아픈 사랑을 끝낼 수 있다.
여주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와서 여주에 관련된 모든 물건을 버리고, 찢고, 태웠다. 그러나 우리의 커플링만은 건들지 못해 놔두었다.
모든 일을 끝내고 보니 내 옆에는 오르골이 놓여있었다. 오르골을 돌리니 월광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어두운듯 하면서도 고요하고 잔잔하고, 또 어딘가 애절한 느낌의 곡, 어두운 밤, 고요한 호수에 달빛이 번지는 느낌이 드는 곡 언제 들어도 애절하다.
이 곡을 들으니 여주가 생각난다. 괴롭다. 여주도 괴로울 것이다. 쓸쓸하고, 아프고, 가슴이 미어진다.
오르골을 집어던졌다. 난 언젠간 죽을 것이다.
오르골은 산산조각이 났고, 우리의 사랑, 나의 삶,
나라는 존재 자체도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오르골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방을 어지렵혔다. 방의 꼴이란,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초라하고 곳곳에 할퀴어져 상처가 나있는 나의 모습, 나의 심리 상태와도 같았다.
애절한 월광 소나타, 우리도, 나도 베토벤과 같은 사랑을 했다.
나의 삶에서 이제 여주라는 큰 조각이 빠져나가고 공허함만이 남았다. 세상 모든 것은 허무하고 공허하다. 인생을 어떻게 살든, 어떤 꿈을 가졌든 끝은 죽음이구나. 나는 그 끝이 남들보다 조금 애절하고 빨리 왔을 뿐이다.
"9월 21일 오후 3시 58분 27세 민윤기 환자 사망."
나의 몸 위로 하얀 천이 드리워졌고,
나의 영혼은 자유롭게 행복을 찾아 떠났다.
[에필로그]
"나쁜새끼.... 나쁜놈... 미련한 새끼..."
윤기가 이별을 통보하고 공원 벤치를 떠난 후 여주는 홀로 앉아 윤기를 원망하고있다.
"지 병 때문인거 아는 데, 일부러 아프지 마라고 그런 거 다 아는 데"
윤기의 이별통보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아픈 여주다.
여주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윤기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아니 마지말이 될, 마지막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자를 보낸다.
- 그래, 가슴 아프지만 내 행복을 위해서 놓아준 너를 위해서라도 행복할게. 너도 부디 완쾌하고 행복해라. 민윤기, 안녕. 나도 이제 너를 놓아줄게.
문자를 보내고 난 여주는 가슴 아팠지만 일부러라도
윤기를 위해서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뜨는 여주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