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리 낀 차창에 그녀를 그렸다.
고깃 씀.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한 지 어언 6년. 나는 아직도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정국아, 정국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달콤한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쓸쓸하게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낙엽밖에 보이지 않는다. 엉성하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낙엽, 마치 그녀를 잃고 슬픔에 잠긴 나와 닮은 것 같다.
- - -
그녀는 여행 다니는 걸 매우 좋아했다. 그녀가 말하길 새로운 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란다. 여행을 다니면 자연스레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가보지 못 했던 곳에 발을 들이니 새로운 일들이 나를 맞이해 준다. 그녀는 그것을 즐겼다. 그녀는 뭐든 경험해 보지 못 했던 새로운 경험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달리 익숙한 경험을 선호했다. 다른 건 전부 취향이 같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취향이 달랐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다녔다.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기에.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을 마주하며 따라다닐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죽음이란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가. 절벽에 매달려 원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일보다 훨씬 절망스럽고 슬픔이 복받친다.
그 슬픔을 견뎌낼 수가 없어 그녀를 따라가려다가 남준이 형이 말려 준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것들을 좀 더 마주할 수 있는 이곳에. 하지만 그녀가 없는 지금 이 모든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녀가 그토록이나 좋아했던 열차를 매번 타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것도, 서리 낀 차창에 그녀를 그려 보는 것도 전부 부질 없는 짓인 걸 나도 안다. 그러나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덜컹대는 열차 안에서 그녀를 그리며, 그녀를 추억하고, 그러다가 눈물을 흘려야지만 이 괴로움이, 가슴을 조여오는 이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덜컹대는 열차 안에서 서리 낀 차창에 그녀를 그린다. 그리고 소망한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누나, 라고.
덜컹대는 열차 안에서_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