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었다.
고깃 씀.
오늘도 어김없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운동장 모래 바닥에 아지랑이가 아물거렸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절망적인 말씀을 하셨다. 에어컨이 고장이 났으니까 오늘은 선풍기로 참자, 고. 나를 포함한 반 애들은 모두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 날씨에 어떻게 선풍기로 참냐고, 선풍기 때문에 교과서를 펴고 있으면 종이가 날린다고. 우리들의 불평에 짜증이 나신 건지 아니면 무더운 날씨에 예민해지신 건지 선생님께서는 교탁을 출석부로 세게 내리치시며 말씀하셨다. 참으라고.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른다. 아지랑이가 아물거릴 정도로 더운 날씨면 서로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색해진 분위기로 1교시, 담임 선생님의 수업인 국어가 시작되었다.
선풍기로 더위가 어느 정도 식긴 했지만 교과서를 필통 같은 걸로 고정하지 않으면 종이가 계속 날려서 다음 장, 다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시를 읊다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 꽤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웃을 수 있었지만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나에게 바람이 오지 않을 때면 너무 더워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선생님께서도 너무 더우신지 잠시 쉬자고 말씀하셨다. 수업시간은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겨우 20분밖에 수업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덥고 온몸이 땀으로 인해 끈적거린다니, 이래서 나는 여름이 너무 싫다.
수업시간 중에 얻은 쉬는시간에도 애들은 참 다양하게 쉬었다. 몇몇은 엎드려 자기도 했고 몇몇은 손이나 부채나 파일 같은 걸로 부채질을 하며 멍때리기도 했고 또 몇몇은 주변에 앉은 애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운동장에는 아지랑이가 아물거리고 있었고 언제 나왔는지 모를 학생들이 체육을 하고 있었다. 체육복을 보니 같은 학년은 아닌 것 같았고, 선배인 것 같았다. 운동장과 우리 교실이 꽤 가깝게 있다 보니까 선배들의 실증 난 표정들이 굉장히 잘 보였고 선배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전부 잘 보였다. 다들 땀에 흠뻑 젖어선 얼굴이 시뻘개지셨고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 탓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계셨다.
‘선배들도 참 불쌍하다. 이 날씨에 체육이라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선배와 정말로 눈이 마주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선배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던 것을 나와 눈이 마주친 것으로 망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허망스러운 망상이라 해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그 선배가 내 이상형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17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 했던 나의 이상형. 그 선배가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 선배는 햇빛과 맞닿을 때마다 예쁜 연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내리고 있을 때는 리트리버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가끔씩 더울 때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뒤로 쓱 넘길 때면 굉장히 퇴폐적이고 섹시한 분위기가 났다. 무엇보다도 그 선배는 웃을 때마다 예쁜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그 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몇 분의 정적이 흐르다 이내 보조개를 모이며 웃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예쁘던지…… 날 보며 웃었다는 것을 확신할 순 없지만 그 순간 너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은 매번 두근거리는 거라지만 그 순간만큼은 두근거림이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덥지가 않았다. 나의 온몸을 에워싸던 더위가 그 선배로 인해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게 사랑이라는 것일까. 처음 느껴본 감정이지만 느낌이 썩 괜찮다.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너무 좋다.
“저 선배… 이름이 뭘까……”
무더운 날씨, 푹푹 쪄서 아지랑이까지 아물거리던 그날, 나의 첫사랑 선배와의 첫 만남.
여름이었다.
창가 너머, 그 선배_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