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아름다운 추억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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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사진작가 민윤기, 화가 동백.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이제약간김태형사랑해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이튿날 아침,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눈이 떠진다. 평소라면 이 시간까지 잤을 테지만 오늘따라 배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잘 수가 없다. 나는 고통을 호소하며 배를 부여잡고는 의사 선생님을 부르려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지 배를 부여잡은 채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얕은 신음만 흘려보낼 수 있을 뿐. 나는 그대로 엎드린 채로 고통만을 호소한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옆에 자고 있는 그를 부른다. 저기요… 저기요… 하지만 그는 깊게 잠에 들었는지 일어나질 않는다. 아, 어쩌지……


 나는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깨어나지 않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곤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뭐야,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동백 씨.”


 그는 걱정이 잔뜩 묻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 어찌할 줄을 몰라 그저 등만 토닥여 준다. 그가 등만 토닥여 주는데도 배가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목소리도 잘 안 나는데 최대한 목을 쥐어짜서 의사 선생님 좀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는 내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며 의사 선생님을 부른다. 의사 선생님은 곧장 오셔서는 내 상태를 확인하시곤 약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전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기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가 옆에서 자꾸만 안절부절못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안정을 취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곤 나가신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윤기 씨도 어디 아파요? 아까부터 계속 안절부절못하시길래.”


 “아, 그게 아니고…”


 그는 잠깐 망설이다 이내 덧붙여 말한다.


 “혹시 동백 씨 스트레스 받으신 게 저 때문은 아닐까, 해서.”


 “하하 그래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던 거예요? 윤기 씨 되게 귀여우시다. 걱정 말아요. 윤기 씨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게 아니니깐. 그냥 가끔씩 예전에 묵혀 뒀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올라와서 그래요.”


 “예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


 “그렇죠. 제가 화가였거든요. 되게 유명한 화가였는데.”


 “아……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동백 씨 이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지나치게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죠… 스토커에, 파파라치에, 너무나도 지나친 기대에, 이상한 기자들에… 어른에게도 정말 가혹한 일들인데 어른이 아니었던 저에겐 더욱더 가혹한 일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왔거든요. 그 뒤로 계속 입원 중이고, 그러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됐어요.”


 “그랬군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하하 미안해요.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해서. 저도 모르게 윤기 씨가 되게 편해졌나 봐요. 이런 얘기도 술술 잘 나오고. 윤기 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네… 뭐… 근데 많이 지루할 거예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어서.”


 “지루하긴요. 윤기 씨가 하는 말이면 뭐든 좋아요.”


 그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피식 흘려보낸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체육도 못 하고 병원에도 자주 가야 했고 친구들이랑 뛰어놀지도 못 했어요. 그런 저에게 낙이란 사진 찍는 일이었어요. 제가 호수 근처에서 살았는데 창밖 풍경이 끝내줬거든요. 매번 다른 시간대에 사진을 찍어서 사진첩에 넣어놓고 마치 시간의 흐름을 담듯이 했거든요. 뭐 그러다가 사진작가가 되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고… 그러면서 사진 찍는 걸 포기하게 됐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근데 전 윤기 씨가 아직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게 미소를 한 번 보여 주더니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또 다시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햇볕이 기껏 녹인 땅을 또 다시 얼리고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혹시 카메라 있어요?”


 “아마 하나 있을 거예요.”


 “저희 이따가 같이 산책하면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려요. 서로한테 가르쳐도 주고 그러면서.”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거예요?”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곤 내게 묻는다.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미소를 머금고서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