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누나, 저 좀 봐 주세요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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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메마른 입술에 덧난 상처.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LOYA-S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본 글은 폭력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쌀쌀한 밤공기를 가르며 집으로 향하던 윤기는 여전히 시연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다. 메마른 입술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그 상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윤기는 그저 시연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기의 입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는 차가운 밤공기와 맞닿으며 새하얀 입김이 되어 허공에 서렸다. 밤바람은 아직 많이 차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려던 무렵이었다.


  “잘못했어요. 아빠, 죄송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누군가가 처절한 목소리로 잘못했다는 말을 연신 내뱉다 이내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윤기는 그 소리에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엔 가로등 하나가 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주변은 한없이 암흑했다. 제법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서 어느 여성이 긴 머리칼을 남성에게 붙잡혀선 뺨을 맞는 게 보였다. 윤기는 그 광경을 보곤 온몸에 두려움이 퍼져 잔뜩 경직되었지만 이대로 지나칠 순 없었던 그는 최대한 몸을 움직여 남성을 여성에게서 떼어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윤기는 남성을 향해 완강하게 말을 내뱉은 다음 여성에겐 다정한 말투로 괜찮냐며 물어보았다.


  “괜찮으세요? 어……?”


  윤기가 괜찮냐고 묻자 그 여성은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었고, 윤기는 그 여성이 고개를 들자마자 익숙한 얼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여성은 바로 이시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연은 남성에게 머리채가 잡혀진 바람에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곤 윤기의 시선을 피하는 듯했다. 지금 이 상황이 창피해서, 누군가에게 가정사를 들켰다는 것만큼 창피한 일이 없어서, 그게 그녀가 윤기의 시선을 피한 이유였다. 윤기는 빨갛게 부어오른 시연의 뺨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마음을 눈에 담았다.


  “넌 뭐야??”


  시연의 머리채를 잡고서 뺨을 후려갈겼던 그가 대번 소리쳤다. 윤기의 눈은 걱정스런 눈빛은 어디 가고 증오만 남은 눈빛을 담고는 그 남성을 진하게 째려봤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안 그러면 신고할 거예요. 윤기는 담담하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희미한 두려움이 몸에 남아있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 남성은 윤기가 미세하게 떠는 몸짓을 발견하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윤기는 아,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에 시연에게 속삭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윤기가 할 수 있는 건……


  “누나, 하나 둘 셋 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요!”


  도망치는 것 말고는 없었기에. 시연은 윤기의 말에 잠깐 흠칫하며 그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 남성은 시연이 이곳에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죽여버릴 기세였다. 그 분위기를 저도 모르게 읽어버린 시연은 온몸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잔뜩 퍼졌다. 윤기는 하나, 둘, 셋, 한 뒤 뛰었지만 시연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했다. 윤기는 뛰다 말고 시연에게 다가와 시연의 손을 붙잡은 뒤 누나는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시연은 윤기의 말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발걸음이 떼어지며 윤기의 손을 붙잡고 그 남성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남성이 뭐라고 소리를 치든, 윤기와 시연은 앞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