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썩지 않는 것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나도.
-
그는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 친구들은 모두 그와 같은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주변엔 마치 꿀을 찾으러 온 벌들처럼,
그에게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들 속에서 난 그저 별 볼 것 없는 일개미일 뿐이었다.
달콤한 꿀을 지닌 꽃은 나비와 잘어울리는데.
뭐,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자꾸 조바심이 났다.
- 넌 내가 왜 좋아?
"또 그 소리냐?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꽃이 개미를 좋아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미의 일방적 사랑이 아닌가?
사람들은 대게 속삭이듯 날아와 꽃잎에 앉은 나비를
짝사랑의 시작이라 비유한다. 그렇게 꽃이 나비에게 달콤한 꿀을 내어주면 그 때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개미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열심히 걷고 걸어 꽃잎에 다다를 때 쯤이면,
이미 꽃과 나비는 서로를 향해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개미가 나비보다 먼저 꽃에게 다다랐을까?행여 개미가 꽃에게 꿀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나비가 뒤늦게 도착하면 꽃은 역시나 나비에게 마음을 돌리진 않을까?
의문투성이었다.
"야"
계속해서 나를 불렀던건지 그는 조금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 불렀어?
"몇번을 불렀는데 대답을 안하냐?다른 남자 생각하는 거 아니지?"
괜히 심술이 났는지 그는 어린아이처럼 의자를 톡톡 차고 있었다.
- 그런거 아니야.
"치.. 나만 너 좋아하냐?맨날 먼저 말 거는 것도 나고 질투하는 것도 나고"
그는 서운한 게 많았는지 울분을 잔뜩 토해냈다
"맨날 너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면서 애정표현은 안하구..
그러는 넌 나 왜 좋아하는데?"
-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몇분이고 고민했다.
그냥 네 모든 면이 좋다고 말하면 되었을 것을.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을 기점으로 그와 잦은 다툼을 했고, 이내 연락이 끊겼다.
그 후로 몇년이나 지났다.
분명하게도 그가 떠났고, 우린 멈췄다.
그 뒤에 들린 소식으로는.. 그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 당시엔 철이 없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그가 나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 뿐이었다. 아마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매일 그 의문이 풀릴 때까지 되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줄곧 헤어질 운명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친구들은 내가 그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 같다며 그가 불쌍하다고 했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와 헤어진 뒤로 나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야, 넌 그 쓸데없는 공상인지 망상인지 좀 그만해. 가만보면 네가 걜 더 못 잊은 것 같아"
- 됐거든. 걔 얘기만 몇 년 째냐?초딩도 아니고
"이거나 드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꿀물이었다.
- 됐어, 너나 먹어.
"왜?너 예전에 꿀물 엄청 좋아했잖아"
- 몰라.. 그냥 몇년 전부터 거리낌 들더라. 질렸나?
"꿀물에 환장하던 사람이 거리낌?웃기는 소리하네. 우리 아빠가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그랬거든?"
이유.. 없을 리가 없었다.
-
그와 헤어진 뒤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나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노트북과 전공책들을 잔뜩 들고선 카페로 향했다.
띠링-
그곳은 내 단골카페이자, 아주 조그만 규모의 소형카페였기 때문에 음료도 사장님이 직접 가져다주었다.
"오랜만에 오셨네~"
사장님은 반갑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글쎄 우리 카페에 알바생 하나가 새로 들어온 거 있지?
어찌나 싹싹하던지.. 키도 크고 잘생겼더라. 오늘은 그 알바생한테 서빙시키려고~"
혼자 일하기가 버겁다고 매일같이 알바 모집 노래를 부르시던 사장님은 드디어 알바생을 구했다며 밝게 웃으셨다.
"오늘도 꿀물?참 한결같다니까~ 어여 갖다 줄게"
그렇게 사장님과의 작은 담소를 뒤로하고 나는 밀린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5분 가량 지났을까, 옆에서 머뭇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물.. 나왔습니다"
-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옆을 돌아보던 순간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익숙한 향기에 코끝이 아려왔다.
"..오랜만이다"
그 순간에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 같다.
그의 커다랗고 밝게 빛나는 그 눈동자 속에서
작은 물방울이 톡, 톡 떨어졌다.
나는 어쩌면 너를 애타게 만듦으로써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네가 나에게 매달릴 때,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게 만듦으로써 나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참 바보 같았다.
나로 인해 너의 삶이 조금이라도 흔들렸으면 했다.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모든 게 그런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그저 그런 사랑이었다.
달콤한 꿀에 발을 담구어보려다 되려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그런 사랑이었다.
그를 만나고 난 뒤로 처음 눈물을 흘렸다.
매일 일만 하며 꽃을 바라보았던 작은 개미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꾀를 내었지만
결국 자기가 그 꾀에 속아 갇혀버렸다.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 또한 백년, 그리고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꿀 속에서 짓밟혀져버린 개미의 비극적 사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