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사무실에서 서류나 처리하고 있었다. 같은 풍경, 같은 시간, 같은 냄새. 매번 서류에는 커피 향이 배어 있었고 내 검은 구두에는 온갖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렇게 서류를 처리하다가 발견했다. 하나의 서류를.
돈을 빌린 한 남자의 계약서였다. 그런데 갚는 사람이 그 남자 딸이라네? 이제 곧 20살인. 이런 경우는 많이 봐왔다. 부모 대신 자식이 갚거나 가족이 갚는.
지독하고 역겨운 사람의 냄새가 밴 계약서.
자기 가족들에게 저딴 짓이나 하니 돈을 빌리고 튀는 게 딱 수준이 보인다. 더럽고 치졸한. 혀를 차며 탁자에 서류를 뒀다. 저런 놈들은 나중에 찾아서 꼭 반쯤 죽여 놔야 속이 풀릴 것 같다.
아, 역겨워라. 지독하게도.
그렇게 이 남자의 딸의 신상을 알아내야 한다. 불쌍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빠 잘못 만난 게 운명인 거지. 우린 돈만 받으면 되는 거다. 돈만 받고 바로 돌려보낼 거다. 뭐, 다 갚을 수 있다면.
운학아
네 형? 무슨 일이에요?
이번에 돈 빌린 남자 딸 신상 좀.
아 또 가족한테 떠넘기는 부류에요?
어.
에휴 ㅉ. 알겠어요 기다려봐요
그래.
뚝. 삐-삐-삐.
건조한 전화기 전자음만 허공에 메아리쳤다. 10정도 뒤에 온 신상들.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몇인지, 생김새나 특기. 현재 뭐 하는지, 학력 등등.. 다 보여준다.
..19살? 이제 20살 되는 여자애야?
혀를 찼다. 생각보다 더 어렸다.
부모도 엄마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인 아버지는 지한테 돈이나 떠넘기고 튄 케이스? 운도 지지리도 없네 이 여자애.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면 그게 한 명에서 열 명, 열 명에서 더 불어난다. 괜한 동정심은 필요 없어.
이제 만나러 가볼까.
서울 시내를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멀쩡한 빌라. 일정한 발걸음이 빌라와는 어울리지 않게 정확하게 복도에 울렸다. 도착한 곳은 801호.
똑똑똑.
그렇기 문이 열리자 보인 건 확실히 앳된 얼굴의 여자애였다. 포커페이스를 한 여자애를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이 미소가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보내는 웃음이지만. 나에겐 이 미소가 마지막으로 주는 웃음이다.
안녕 아가씨? 아가씨 아버지가 돈을 빌렸는데.
나랑 아가씨가 이야기 좀 해야겠어?ㅎ.
그렇게 그 여자애의 계약은 그날 성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