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깜빡
오랜만에 알람이 울리기 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여주이다. 부스스하게 뻗어있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손으로 빗질을 시도하다가 어두워진 핸드폰을 두어번 톡톡 쳐봤다. 어둠 속에 빛나는 시각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더라""
아무도 듣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 공요함 속에 혼자 소리내어 말해본다. 혼자란는 건, 언제 봐도 참 쓸쓸한 느낌이었다. 문뜩 생각난 꿈의 파편을 속으로 곱씹어봤다.. 아, 내가 이래서 일찍 일어났지
몇일 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꿈의 연속이었다. 비슷한 어둠 속에, 다급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하지만 오늘은 사뭇 달랐다. 꿈의 끝자락 속에 들려온 문장,
'곧 알게 될 것이다, 소녀여'
무얼? 굳이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더 이상 궁금해야 할 기 있던가. 순간순간마저 사는게 힘든데, 그 흔한 궁금증조차 매말라버린 이제서야? 괜히 생각한 것 같다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무거운 한숨과 함께 몸을 천천히 일으켜세웠다.
"....학교는 가야지"
화장실을 잡다 흠칫, 차가운 금속과의 만남으로 천천히 식어가는 듯한 손을 어루만졌다.
"....빌어먹을 세상"
중얼거림과 함께 스윽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ㅡ
결과적으로는 또 7시까지 집에 있었다. 왜? 교문이 7시 30분 전에 안 여니까. 애꿎은 경비 아저씨를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빨리 학교를 다녀오는게 목표였는데, 오늘따라 핸드폰이 말썽이다.
"왜 이래...."
살풋 찌푸러진 눈썹으로 화면을 지그시 노려본다. 왜 너까지 말썽이니 정말.....하긴, 7년을 썼으니 갈 때가 된 건가. 이미 남들은 버리고도 남았을 2G 폰을 손바닥으로 꼭 쥔 채 곰곰히 생각했다.
"버리지 뭐"
핸드폰 따위, 어차피 별로 필요도 없었는 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핸드폰은 짧게 진동소리를 내고 잠잠해졌다. 제 생명을 다했다는 듯 알리는 것처럼. 하지만 여주는 짧은 눈길조차 줄 틈도 없이 무거운 가방을 어깨 뒤로 매고 방문을 나선 이후였다.
ㅡ
왁자지껄 시끄러운 출근길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접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무채색의 방에 나서면 항상 눈이 이렇게나 아팠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여주의 취향과 달리 세상은 너무나도 다채로웠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엔, 여주는 너무 바빴다. 관심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게 송두리째 바뀔 거란 생각조차 품은 적이 없었다.
지나가버린 버스를 확인하고선,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7시 20분이네"
무슨 상관인 거냐, 자전거를 그냥 타야겠다 결심하고 바삐 자물쇠를 빼려 달그닥거렸다. 아, 오늘따라 왜 이래 정말.
"됐다!"
확 잡아끈 덕에 옆에 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아, 너무 과격했나. 죄송합니다, 짧은 사과를 건네고 바로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옆사람의 말을 다 못 들은채.
"흠...달콤하네"
입맛을 다시며 여주가 남긴 잔향을 들이켰다. 역시, 장미라서 그런가. 킁킁거리다가 문뜩 지금이 그럴 시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뭐하니"
"음ㅁ...!!!"
무언의 주문으로 입이 막혀들어간 소년은 검은 망토를 쓴 남자를 째려보았다.
"루터님 놀랬잖아요"
"그러게 누가 변태같이 길에서 킁킁거리래"
"변태라뇨 말이 심하십니다! 그저 향기가 달콤할 뿐...."
"대휘야 민간인들은 그런 걸 변태라고 한단다"
"아닙니다! 향수라고 아름다운 향이 나는 물약이 개발되어 이제 그런 오해 안 합니다!!"
역시, S반의 모범생이란, 뾰족뾰족해진채로 쭝얼쭝얼거리는 대휘를 흐뭇하게 보는 루터님이다.
"아무튼, 민간인 학교는 4시쯤 끝나니 그때쯤 데리러 가보거라"
"에에 일찍 끝나네요?"
"기숙사가 없는 학교를 다녀서 그렇단다"
"아"
대휘는 머쓱하게 동그란 뒷통수를 스윽 스윽 문질렀다. 으휴, 귀여운 놈, 하고 루터님이 헝틀어뜨렸다. 아 루터니임! 하는 귀여운 반항은 무시하고.
"아무튼, 잘 부탁한다. 난 이만"
소리소문도 없이 갑작스레 증발해버린 루터님을 보면서 대휘는 또 투덜거렸다.

"하여간....나한테만 이런 잡업무지..."
잠깐의 중얼거림으로 여주의 발걸음을 찾아내고
뾰로퉁한 볼을 뾱 자랑하듯 올린채로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ㅡ
"아"
오늘도 툭 밀렸지만 본채만채하는 학생들을 피해 지나갔다. 응, 그래 이젠 익숙하지 뭐. 시비만 안 걸어도 다행이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조용히 지나가자. 줄 이어폰을 길게 길게 풀어서 MP3에 꽂았다. 종례 좀 빨리 끝내주지, 뭐하는 짓이람. 매번 학교에서 교우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렇다고 교우관계 잘 유지하려고 하는 몸부림은 선뜻 나서지 않는 게 선생님의 모순이었다.
....언제부터는 학생한테 제대로 관심은 가졌고?
글쎄다. 선생이랍시고 훈계질하는 게 과연 나 잘되자고 하는 말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남들의 힘찬 "안녕히 계세요~!" 인삿말이 입만 벙긋 벙긋 맞추고 재빨리 교실을 나섰다.
"야 교문앞에 저 꼬마는 누구야"
"뭔 꼬마? 170은 넘어 보이는데"
"야 얼굴이 귀엽자너~ 꼬마 확실"
"응 ㅈㄹ~ 꿈 깨라"
"와 근데 귀엽다"
평소보다 조금은, 아니 사실 더 큰 웅성거림이 신경질적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는데 오늘, 하 *같게.
그제서야 교문에 누군가가 서성거리는게 눈이 보였다. 뭐야 쟤 때문에 시끄러운 건가. 관심 없다는 듯 눈길을 뗀 그 순간이었다.
"어 여주님!"
...
싸늘한 정적이 흘렀고 대부분의 눈이 나를 흝었다. 이런 관심, 싫은데. 그리고 쟨 누구길래 나를 여주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저요?"
하지만 짜증 섞인 생각을 비집고 소심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젠장, 뭐지?
"아 네 여주님이요! 데릴러 왔습니다!"
...뭘 데리고 가 니가 뭔데.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여주님? 왜 저 까짓거에 님을 붙여? 뭐야 뭔 관곈데? 쓸데없는 잡담에 휩쓸릴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잡았다.
"누구시길래 저를 데릴러 오신거죠. 뭐, 사채업자?"
"사채...업자....?"
이상하다 그런 건 안 배웠는데, 중얼거리는 저 남자애의 말이 더 이상했다. 진짜 뭐하는 애지.
이윽고 소란스러움에 남자애의 말이 묻혀버렸고, 이때다 싶어 몸을 휙 돌렸다.
정적
무섭게리 찾아온 정적이었다. 뭐지, 눈을 돌린 순간 어마어마한 걸 목격해버린 후였다.
사람들이
멈춘 것이었다
마치 시간의 초침을 억지로 잡은 것처럼,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시정지된 상태가 된 것이었다.
"ㅁ...뭐야"
하지만 그 남자애만은, 움직였다
"뭐긴요!"
싱긋 웃으면서 다가오는게 무서웠다. 미친, 뭐지? 머리로는 도망가야 한다, 이 생각이 확실해져갔는데, 충격 먹은 다리는 말을 안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코 길거리는 더러워요!"
손을 까닥함으로써 나를 바람으로 일으킨 남자애가 말했다.
"...대체....당신은 누구죠?"
다시 해맑게 웃으면서 네게 악수를 청한다. 언뜻 햇살에 빛춰 살짝 푸르스름해 보이는 눈이 빛난다.
"뭐긴요, 보면 모르시겠어요?"
"당연히 마법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