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여주의 손이 꼼지락거리더니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일부러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났다.
피곤해보이지만 여주의 눈에는 독기가 여려있다.
-오전 11시-
겨우 방을 나간 여주는 콘프레이크로 아점을 때웠다.
어제 가족들은 모두 계모임에 가서 집에는 여주뿐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잉- ’
(범규)
“여보세요?”
“여주야, 일어났어??”
“예,,(하품)”
“흠.. 안일어난것 같은데?ㅋㅋ”
“아니야.. 지금 아점 먹고 있어요-”
“뭐 먹는데?”
“콘프레이크”
“에계, 그게 밥이야? 과일이라도 먹어,,”
“아니 귀찮아,,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서 더 하기 싫어,,”
"..
아무도 없어?”
“응? 어,,
나밖에 없는데? ..왜?”
“(화악//)”
또 여주는 순박한 말을 뱉는다.
범규의 속은 하나도 모르고..
“…아니야 그나저나 오늘 약속 잊은거 아니지?”
“예예~~ 제가 잊을리가 있나요?? 내가 일주일을 졸라서 가는건데 ㅋㅋ”
여주는 부산 토박이라 어릴때부터 롯데자이언츠의 광팬이었다. 자신의 피에는 롯데의 피가 흐르고 이것은 운명이며 유전이라는 친구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접을 달면서..
그래서 개막시즌, 같이 야구보러가자고 애원했을 때 모두가 거절했다.
절망하는 여주의 마지막 동아줄은 범규였고 마음씨 착한 범규는 그녀의 간절한 애원의 눈빛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앞으로의 고난은 하나도 알지 모르고….
“유니폼은 내꺼 큰거 줄거니까 그거 입고..
너 라지 맞아? 엑스라지는 없는데..“
”아마도..?“
”ㅇㅋ 그럼 유니폼은 내꺼 주고..
넌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진짜 사직 명소에서 너 인생샷 건져줄거야아 ><“
“…알겠어-"
지이잉- 지이이잉-
“예?”
“여주야,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나..
너네집 가도 돼?”
“..???”
“..아니, 그냥 어.. 시간 많이 남았는데 좀 심심해서 그래,,
우리집에는 형이랑 아빠있어서.. 아까 너네집엔 아무도 없다고 그랬잖아”
“그래! 나도 좋아”
뚜뚜뚜-
‘씨익’
침대에 엎어져있는 범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
띵동- 띵동-
“여주야!”
“야,, 왜이렇게 늦어....”
이미 30분 정도를 기다린 여주는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미안,, 야구장은 처음이라서 뭘 입고 가야될지 모르겠어서 늦었어. ”
그 말에 여주는 범규의 코디를 보고
“음.. 야…“
”..왜“
”너 다시 갈아입고 와”
”,,응?“
범규의 눈이 동그래졌다.
봄이라 아직 쌀쌀했지만 후드는 너무 두껍고 청바지는 불편해보였다.
“가서 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응원하면 더우니까 얇은 긴팔이나 티셔츠로 입고 후드는 집업으로 가져와. 바지는 청바지 절대 안돼!
무조건 편한 츄리닝으로!!
있으면 캡모자 쓰고오고,,“
“넵..”
범규는 후다닥 집으로 뛰어가 옷을 갈아입고 여주네 집으로 달려갔다.
“헉,헉..
자, 이제 어뗘??”
“….합격!”
여주가 날리는 엄지척에 범규는 환하게 웃었다.
둘은 쇼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얹었지만 사건이 지날수록 점점 가까워진다.
”아니, 이번 중간 진짜 너무 일찍이잖어.. ㅜㅜ“
”맞아 지금 한달 조금 넘게 남았을걸??“
”으악..ㅜ 너무 싫다ㅏ”
여주가 절망하며 쓰러졌다.
‘..귀여워’
평소와는 다르게 리액션이 커진 여주의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한 범규다.
’스르륵‘
옆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여주의 목소리와 기분 좋은 냄새에
범규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범규가 꼬박꼬박 졸는 줄도 모르고 여주는 열심히 설교를 했다…
’스륵‘
범규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툭’
한참 설교중이던 여주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야…”
여주가 고개를 돌려보니 범규가 어깨에 머릴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입은 헤- 벌어져 있었고 키차이 때문에 몸이 잔뜩 구겨져 커다란 곰인형 같았다.
‘..안아줄까?,,‘
문득 든 생각에 여주는 화들짝 놀라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 자?”
“…으음..”
피식 웃으며 범규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쓸데없이 이쁘게 생겨가지구…”
“.//…”
뉘엇뉘엇 질듯한 태양때문인지 범규의 삐죽 튀어나온 귀가 빨개진다.
-야구장 도착
경기 시작까지 아직 1-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둘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너 뭐 마실거야?”
“음.. 아니, 난 그냥 나갈때 살래”
“그래”
여주가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가자 범규는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 손 진짜 작아,, 이여주’
범규의 귀가 살짝 달아올랐다.
“범규야! 우리 뽑기하자~~”
“으응? 뽑기가 있어어??”
여주는 범규의 손을 잡아끌고 뽑기장으로 향했다.
”넌 안뽑어도 돼. 뽑고 싶으면 뽑고! 나중에 나 포카도 뽑을거야!!“
(몹시 신난 여주)
”우와!..“
”진짜 크지? 사람도 많고?
기대해! 내가 딱! 명당자리 잡었다고~~“
.
.
.
“..여주야,,,,”
“응?”
“..원래…이렇게 높아..?(꼴깍)”
“..?”
”아니.. 높은데를 무서워하는건 아닌데,,
고개 숙이면 앞으로 굴러갈것 같아..ㅜ“
”아,,ㅋㅋ 걱정하지 말어~~
내가 저~기 중앙상단으로 안한거에 감사해^^
그리고 높아야 잘보여요“
“..힝구ㅜ”
-1회 초
“..ㅅㅂ!! 저걸 못잡아?? 내가 해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아니 연봉이 얼만데;; 아으.. 💢💢“
”,,ㅋㅋ“
야수의 실책에 뒷목잡고 악을 쓰는 여주
그런데 그 모습도 범규에게는 귀여워보인다.
오히려 여주가 욕하는 모습을 처음 봐 ’우리 여주 욕도 헐줄 아네.?..’ 하고 놀랐다.
”어.. 저건 뭐야?“
전광판 지지대에 붙어있는 11번과 10번을 보고 물었다.
”응? ..아~ 저건 유명한 야구 명언인데 (10번을 가르키며)10번 넘어져도 (11번을 가르키며)11번 일어나라는 말이야! “
”오~ 멋있다!!
그럼 저 번호는 모든 구장이 다 있는거야??“
”으응..
쿠쿸ㅋ…ㅋ크크킄ㅋ… “
갑자기 웃는 여주에 범규는 당황
”아니;; 이여주??,,
왜웃어..“
귀가 빨개진다.
어쩔줄 몰라하는 범규에 어쩔줄 모르고 계속 처웃는 여주
”크읔ㅋㅋㅋㅋ,, 아닠ㅋㅋ.. 그거 거짓말이얔ㅋㅋㅋ“
”?!?!“
“ (꺽꺽) 사실은..쿠쿸.. 용구결번이라고ㅋㅋㅋㅋ 흐흫ㅎ 우리 구단에서 레전드급으로 잘한 선수의 등번호를 앞으로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 선수를 기념하는거야
롯데에는 11번 최동원과 10번 이대로 선수가 있어!
최동원 선수는 진짜 위대한 투수시고 인성도 좋었대! 지금은 고인이셔.
이대호 선수는 2022년에 은퇴하셨고 진짜 레전드 타자셔“
”…뭐라노.“
(약간 빠직)
여주의 급 태세전환
범규는 여주의 행동도 말도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여전히 삐져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다.
둘이 잡담을 하는 사이 공수교대가 진행되어 관중들이 응원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ㅋㅋ…..! 범규야!! 우리 일어나야돼”
“..어?.. 아, 응..”
여주는 집에서 가져온 하얀색 짝짝이와 붉은색 짝짝이를 범규의 두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응원할거야! 나 보든지 주변 분들 따라하던지 치어리더분들 따라하면 돼!!
이제 응원가 나오면 소리 잘 안들리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알겠찌??”
“(끄덕끄덕)”
-1번~ 타자! 장0성!!
2번~ 타자! 고0민!!
3번~ 타자! 레00스!!
4번~ 타자! 한0희!!
5번~ 타자! 전0우!!
6번~ 타자! 윤0희!!
7번~ 타자! 박0엽!!
8번~ 타자! 한0양!!
9번~ 타자! 전0재!!
선발~ 투수! 이0석!!
라인업송이 울려퍼지고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소리 진짜 커!!“
범규의 안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그치? 이게 매력이야~“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는 둘
가끔 범규가 엉뚱한 질문을 하고 야구팬들의 발작버튼을 눌러 여주가 흥분하기는 했지만 어느새 경기는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5회 초 원아웃
5:2 롯데 리드 상황
주자 만루 위기상황에서 선발투수가 올라온 코치에게 더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낸다.
이미 90구가 넘는데다가 경험 없는 어린 선수이지만 그의 굳은 의지에 여주는 감탄사를 보낸다.
“크으.. 역시 드래프트 1순위!! 그래! 0석아!! 원래 투수는 안타도 맞고 홈런도 맞고 이러면서 경험 쌓고 그러는거야! 멋있다~🫶”
“…“
-풀카운트
”제발.. 몸쪽 낮게 슬라이더나 포크로… 직구는 안돼,, 제발……“
여주는 두 손을 간절하게 모으고 숨을 죽였다.
"…."
투수는 심호흡을 하고 부드럽게 공을 뿌렸다.
탁!
몸쪽은 아니지만 ABS존을 낮게 들어와 타자는 콘택으로 공을 맞혔다.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면서 타구는 짧지만 강하게 날아갔다.
.
.
.
”와아아아아!!!!“
3루간으로 뻗어가려는 타구를 유격수 전0재가 몸을 날려 잡아냈다.
그리곤 바로 3루에 송구
순식간에 이닝이 종료되고 팬들은 전0재의 응원가를 목터져라 부르며 환호한다.
-롯데의 전-0재~
롯데의 전~0재 아안타~~
오오오 오 오오 오 롯데 전0재~~
(누구? 전!0!재!)
전~0재애~~
롯데의 전~0재 아~아안타~~
오오오 오오 오~오! 롯데 전0재~~
(누구? 전!0!재!)
”와아아아악!!
전민재 사랑해애액🫶“
여주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커다란 하트를 날리자 옆에서 범규가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이내 이건 좀 아닌가 싶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흔들며 전0재 선수의 응원가를 때청하는데 합세한다.
“후우… 진짜 역전당하는줄!”
“그니까ㅋㅋ 진짜 그런 수비도 가능하구나! 멋있더라..”
“그치? 내 요즘 최애 선수야~🫶“
여주는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범규에게 전0재 선수가 얼마나 훌륭한 유격수인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
"..??!"
”ㅁ..뭐야.. 우리?? 저거 우리야??“
여주의 입이 떡 벌어지고 범규의 귀는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