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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만남 이후 3달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또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이번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위험하다고."
- 20XX.09.20 일기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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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두번째 만남 이후에 그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소나기가 내리던 날, 일부러 그 정자를 찾아가기도 했으나 그는 없었다.
그의 신비한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처음 한 달은 그가 계속 생각났다.
두달째가 되자 서서히 그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세달째. 소나기가 내릴 때 만나고 싶었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만 기억이난다.
그리고 그를 다 잊어갈 때쯤 다시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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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누군가를 찾는 것도 아닌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입이 열렸다.
"아직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의문스러운 그의 말에 무슨소리냐 물으려 할 때, 그의 입이 다시한 번 열렸다

"진짜, 진짜 다행이다, 아미야"
어? 내가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잠시,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 남자에 난 놀라서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슨일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왜 울어요..? 울지마요."
내 말을 못 들은건지 몇 분간 더 울던 그는 이내 눈물을 멈추고는 나에게 말했다.
"솔직히 믿기 어려우실 걸 알아요... 일단 제 이름은 김남준 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미씨는 모르겠지만 지금 굉장히 위험해요."
솔직히 말하면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만 보이던 남자가 다짜고짜 울면서 내가 위험하단다.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저 남자의 여자친구라고한다. 우리 둘은 원래 2년 뒤에 도서관에서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만난지 5주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뒤에 내가 이 정자에서 살해를 당한단다. 역시나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고, 그 후로 나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로 오는 정확한 시점을 정할 수 없기에 소나기가 내리는 날로만 시간을 돌리다 보니 소나기 내리던 날에 나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타임워프를 하면서 미래가 달라지는 것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죽는 시기가 점점 빨라진다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가?
말을 마친 그, 아니 김남준은 비가 그침과 동시에 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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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혼란도 잠시, 몇달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 나는 이제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다. 물론 비오는 날엔 나도모르게 긴장하면서 말이다.
김남준을 다시 만난 건 그때쯤이다.
또 비가 내리던 날.
평소처럼 의도적으로 정자있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낯선 이의 인기척을 느꼈다.

"찾았다."
그리고 시야가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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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나는 그 정자 위에 앉혀져 있었다. 손이 묶인채로 말이다. 아마 케이블타이인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길을 지나가는 이는 단 한명도 없고 마지막의 목소리 주인으로 보이는 이만 내 앞에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고, 이내 그의 입이 열렸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
내가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나에게로 서서히 다가왔다.
곧 이어질 고통에 대비하고자 눈을 꼭 감았다.
푸욱-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바로 죽은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눈을 조심히 뜨자 보이는 건,

"...드디어 찾았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
칼에 찔린 김남준이었다.
"이건 뭐야?ㅋ 아가씨 운 좋네? 어차피 한 명만 뒤지면 되는 거니까 운 좋은 줄 알라고?"
김남준의 등장과 함께 범인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김남준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번엔 살려서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아미야."
이럴 순 없는 거였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인데 이렇게 죽는다고? 내 앞에서? 날 대신해서?
내가 그에게 무슨 존재이길래 목숨까지 내놓아준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칼에 찔린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낮게 웃으며 다정하게 내 손에 묶인 케이블타이를 끊어내는 남준의 모습에 지금 내가 할 수있는건 그냥 누구라도 이 상황을 발견해 신고하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손이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전화기를 찾았다. 물론 남준이 제지해서 신고는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비가 멈추면 난 돌아가. 치료받다 사라지는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그리고, 바뀌는 건 내 미래가 아니더라. 아예 세계가 다른 거였어... 우리 세계에서 너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그렇기에 나도 더이상 살아갈 이유는 없어. 마지막으로 이 세계의 너를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해. 넌 행복하게 살아. 아미야, 내가 정말 사랑하는 너만은 다른 세계의 너라도 좋으니 제발 행복하게 살아. 이 세계의 나를 만나던, 만나지 않던 더 좋은 놈 만나고 알겠지?"
남준이 말을 다 마쳤을 무렵,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곧 비가 멈추고, 자리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정자 위에서 케이블 타이만을 붙잡고 울고 있는 나였다.
그렇게 김남준과의 만남은 거기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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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로부터 1년이 지나고 이제 남준과의 기억은 추억 한켠에 자리잡고 일상을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그 범인은 묻지마 살인을 하던 연쇄살인범으로, 그 날 도주하다가 잡혔다고 한다. 물론 기록상 그 날의 피해자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이상할만큼 아침부터 화창했다. 나는 새로운 도서관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구경갈 생각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쁘게 지어졌다는 생각을 하며 구경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나올 때였다.
화창하던 아침과는 달리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소나기였다.
그리고 내 옆으로 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갑자기 비가 오네요. 우산 같이 쓰실래요?"
그와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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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21년 5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