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그녀가 당신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네요.
그녀의 질문에 알맞은 해답을 찾아내세요!

승철의 A
"···나 살찐 것 같지."
"··· ···어?"
굳었다. 음···.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건가..! 앞에 얼음이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를 집어 들었다. 차가웠다. 한 모금 쭉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이럴 때 남자들은 대부분 무슨 대답을, 아니 100점짜리 대답을 생각해야 한다. 입에 머금은 커피를 삼키며 컵을 내려놓았다. 손에 물기가 촉촉했다. 나 대신 식은땀이라도 흘려주는 건지.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닦으며 웃어 보였다. ···젠장, 긴장해서 웃음이 분명 어색해 보였을 거다. 100%다. 이제 슬 다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고3, 세상이 주는 첫 번째 관문을 시험 볼 때도 이러진 않았다. 더욱 심해지는 다리 떨림을 손으로 눌러가며 굳게 닫아두었던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간, 분명 화를 낼 거다···.
"..아니, 전혀?"
"진짜?"
"당연하지!"
"근데 왜 망설여?"
사실 고민할 시간도 없었던 거다. 기다리게 해선 안 됐다. 질문에 0.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했어야 했는데, 애초에 거기서부터 실패였던 거다. 이번에는 진짜로 식은땀이 흐를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두 번째 질문이라고 고민할 시간이 생긴 것이 아니다. 여기서 또 망설이고 만다면 나는 날카로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겠지. 그녀가 바라는 100점짜리 대답은 무엇일까. 아무리 눈을 굴리며 머리를 써봐도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큰일 났다. 속에서 연신 망했다,를 외치며 다시 컵을 들어 빨대를 입에 물었다. 고민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촉촉하다 못해 축축해진 손을 허공에 슬쩍 털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구나. 재빨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망설이긴, 네가 너무 예뻐서 잠깐 넋을 놓은 거야."
"..변명 그런 건 아니지?"
"당연하지, 나는 언제나 진실만 말하잖아."
긴장해서 후루룩 말한 것치고는 괜찮은 답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표정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만족한 것 같다. 그녀가 제 앞에 놓은 컵을 들어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더 이상 이런 위험한 질문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안심하며 커피를 들어 다 마셔버렸다. 식은땀도, 다리 떨림도 멈췄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바라보지 못했던 그녀의 눈도 다시 볼 수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어색하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컵을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근데 있잖아."
"..응?"
오른쪽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 ···."
···이번엔 진짜로,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솔의 A
"나 달라진 거 없어?"
"··· ···. ···음."
햇빛 쨍한 어느 주말 오전, 난데없이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달라진 거 없냐는 말에 눈을 굴려가며 이리저리 살폈다. 헤어스타일은 언제나처럼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였고, 옷은 매일이 새로워서 딱히 달라졌다 말하기에도 뭐 했다. 신발도 편하고 예쁘다며 가장 좋아하던 검은 구두를 신고 왔다. 결론은 뭐가 바뀌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난 네가 뭐가 달라진지 모르겠어..'라고 한다면 분명 서운해할 것이다. 서운해하는 표정을 보는 건 씁쓸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이게 달라졌어.'라고 찍기에는 가짓수가 너무 많았다.
"왜 대답 안 해줘?"
"오늘 너무 눈이 부셔서 감탄하고 있었어."
"또 입에 사탕 발랐어?"
"그렇지만 사실인걸."
그렇다. 사실이다. 그런데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실을 누구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깨달았다. 가깝게 다가가 눈을 살피다 입술을 살폈다. 멀리 떨어져 보기도 하고, 주저앉아 보기도 하고, 뒤로 돌아가기도 하고, 옆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알지 못했다. 역시 그 많은 가짓수 중에서 택해야 하는 걸까. ···그러기로 했다. 더 고민을 해봐도 답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더 오래 세워둘 수도 없다. 찍자.
"음, ..역시 입술색을 바꿨나?"
"그리고 또?"
"음···."
맞았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런데 달라진 게 한 군데가 아니었다니. 어떻게 한담. 다시 한번 찍을까? 그렇게 하기에는 도박이었다. 두 번씩이나 운으로 맞출 자신도 없었다. 결국은 어디가 달라졌는지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봤지만 잘 모르겠다. 이럴 때에는 모른다는 걸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방법을 왜 이제서야 깨달았지? 물론 처음부터 모른다고 말했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럴 수 있냐며 서운해할 수도 있었다. ···찍어 맞춘 걸 감사히 여기자.
"..미안, 잘 모르겠어."
"그럴 줄 알았지. 짠, 나 손톱 색 바꿨어."
"아, 손톱이었구나. 잘 어울리네."
그녀가 양손을 펴 보여주었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달라졌지만 확연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맨 손톱에서 살구색으로 바뀐 건가? 이러니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색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입술색의 변화를 아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긴 했지. 비록 찍은 거지만.
"응, 아는 오빠도 그렇다더라."
아는 오빠···?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두 번씩이나 떨어질 수 있는 거였다니.

지훈의 A
여기, 한 남자의 심장이 방금 떨어져 나갔다.
"저 여자 진짜 예쁘지?"
"··· ···."
두 눈을 깜빡깜빡.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판단이 필요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티비에서 들리는 소리가, 어쩐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로맨스였는데, 로맨스 코미디였는데 분명. 들고 있던 팝콘을 떨어트렸다. 괜히 눈치가 보였다.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른다. 떨어진 팝콘을 치우면서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티비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을 보고 내게 예쁜가를 물었다. 연예인과 일반인, 당연지사 연예인이 더 미인일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내게 묻는다는 것은 사랑과 애정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팝콘을 거의 다 치워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팝콘을 떨어트렸을 때처럼 허둥지둥 거리지도 않는다.
"연예인이니까, 예쁘긴 하지.."
"그래?"
"그래도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순식간에 얼굴의 표정이 바뀌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잘못 본 건 아니었던 듯하다. 뭘 잘못 답한 걸까. 머리를 썼다. 다 주워 담은 팝콘을 주방에 가져다 놨다. 다시 돌아와 소파에 앉았는데, 옆 시선이 너무 따가운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서 말실수를 한 거지. 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영화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여자가 예뻐, 내가 예뻐."
"응? 당연히 네가 더 예쁘지."
"저 여자는 국민 첫사랑인데?"
"그게 어떻게 비교가 돼?"
눈빛이 사나워진 걸 보니 되나 보다. 되는 거였구나. 너밖에 없다는 말도, 네가 더 예쁘다는 말도 그녀의 마음에 와닿지 못했나 보다. 전부 다 진심인데. 어떤 답을 원하길래 집요하게 쳐다보는 건지. 내가 더 궁금해 기절하겠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배우가 예쁘긴 예쁘지만, 딱히 설렌다거나, 첫눈에 반해버린다거나 하지 않는데. 오히려 그런 건···. 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봤다. 역시 이쪽이 취향이었다. 내 눈에는 제일 예쁜데. 이걸 어떻게 증명해줄까. 사실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배우가 예쁘긴 한데,"
"뭐?"
"내 스타일은 아니야. 내 눈에는 네가 제일 예뻐. 정말이야."
"아, 뭐야~ 놀랐잖아."
아, 정답이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마음을 한결 덜어놓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라는 답을 바란 것 같다. 거의 다 끝나가는 영화에 드디어 집중할 수 있었다. 손에서 사라져 버린 팝콘을 옆에서 가져왔다. 하나둘 실종되어가는 팝콘과 내 손을 번갈아서 보던 그녀가 돌연 입을 열었다.
"···나, 혹시 살쪄 보여?"
팝콘 때문에 목이 매인 건지, 그냥 가슴이 답답해진 건지.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