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당신과 함께
| 07_속고 속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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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머리야.."
전날 밤 잔뜩 술에 취해 정국에게 끌려오다시피 집에 온 여주는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에 몸을 일으켰다.
"내가 집에 어떻게 들어왔지.."
기억이 나는 건 정국과 즐겁게 대화하며 술을 마시던 것 뿐, 다른 기억은 모두 흐릿해져 있었다.
그에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여주는 주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국에게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둔 뒤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왔다.
여주가 샤워실에서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어, 정국아. 나 좀전에 일어나서 씻고 나왔어."
- 아, 그래? 근데 나.. 오늘 아침은 누나랑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미안..
"아.. 어쩔 수 없지. 무슨 일 있어?
-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내 친구가 오전부터 알바가
있는데 집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대신 한다고 해서..
"아아, 우리 정국이 고생하겠네.. 그럼 내가 아침 먹고 너 보러 갈까?"
- 어 그게.. 난 좋긴 한데 누나 지금 머리 아플 거 아냐.. 푹 쉬고있으면 내가 일 끝나고 갈게!
정국은 현재 여주가 어떤 몸상태인지 알고있다는 듯 배려해줬고, 여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알고..ㅎ 알겠어, 정국이만 기다릴게!"
- 응 누나 나 빨리 끝내고 갈게, 사랑해ㅎ
여주는 나도 사랑한다고 말하며 통화를 끊은 뒤,
대충 준비하고 집 앞 국밥집으로 해장을 하러 나갔다.
✦✦✦
"이모, 여기 국밥 1인분만 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요~"
여주는 주문 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 앞자리에 앉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두통이 왔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앞자리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으아..!! 깜짝 놀랐잖아..!!"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는 다름아닌 호석이었고, 많이 놀란듯한 여주에게 미안하다며 웃었다.
"ㅋㅋㅋㅋ많이 놀랐어?ㅋㅋ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 미안ㅎㅎ"
"아 진짜..ㅋㅋ 놀랐잖아!
근데 호석이 네가 왜 여기있어?"
여주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호석이 자신의 동네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는지 물어봤다.
"아ㅎ, 나 이 동네 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이 동네에 산다고 말하는 호석에
여주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언제부터??"
"음.. 몇일 안됐을걸?"
"헐.. 몰랐네..."
"해장하러 온거지? 혼자 왔으면 같이 먹자ㅎ"
"응, 그래! 이모, 여기 1인분 더 추가요!
근데 내가 해장하러 온건 어떻게 알았어?"
"아, 너 어제 기억 안나려나? 너 취해서 정국 씨가
데려다주는 길에 나 만났는데."
"어어? 진짜로? 그럼 서로 인사했어?"
여주는 그때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호석의 말에
또 한번 놀란 것 같았다.
"응ㅋㅋ 내가 인사하니까 정국 씨가 네가 내 얘기 했다고 하던데? 나중에 밥 한 끼 하자고도 했고."
"아ㅋㅋㅋ 둘이 안 어색했어?
우리 정국이 낯 많이 가릴텐데.."
호석은 '우리' 정국이 라는 말에 약간 표정이 굳는 듯
했지만, 저번처럼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대화하지는
않았어, 네가 혼자 앞으로 달려가는 바람에ㅋㅋ"
아...
여주는 창피했는지 금새 얼굴을 붉혔고, 호석은 그런 여주를 귀엽다는 듯 보며 웃었다.
✦✦✦
"아- 잘먹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호석과 아침식사를 마친 여주는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안쪽으로 들어갔고, 호석은 밖에 있었다.
"..미안하다, 여주야."
호석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여주가 두고 간 핸드폰
내부에 무언가를 넣었고, 여주가 나오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나가자고 말했다.
딸랑-
"같이 식사도 해줬는데 계산까지 하고..
고마워, 다음엔 꼭 내가 살게!"
"에이, 오랜만에 만난 친군데 이런 것 가지고-ㅎ
그래도 기억하고 있을게ㅋㅋ"
"ㅋㅋ그래ㅎ 덕분에 재밌었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호석아, 안녕!"
"응ㅎㅎ"
밝게 웃어보인 여주가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쯤,
호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네가 알게되면..
그때도 나한테 환하게 웃어줄 수 있을까."
속고 속이는 이 관계는 언제쯤,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
쪼르륵-
빈 술잔에 위스키를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왜."
술을 마시기엔 꽤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람이라고는
고작 두 남자 뿐인 조용한 바에 앉아 술잔을 들이키던 한 남자가 먼저 입을 뗐다.
"왜 왔는데."
"..민윤기라고 했나, 네가 저번에 말했잖아.
그때 여주누나 쫓아왔던 거라고."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남자는 전에 카페 옆 골목에서 여주를 지켜보고 있었던 윤기였고, 그 옆에 서있는 남자는.. 여주에게 알바를 하고있다고 했던 정국이었다.
"..그래서 뭐, 난 더 말할 생각 없어."
"....."
어느새 윤기는 마시던 술잔도 두고 정국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일, 네가 원해서 한 거 아니지."
"네가 뭔 상관-,"
윤기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따지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정국의 말에 말을 멈췄다.
"너한테 그런 일 시키는 사람,
..박지민 맞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