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당신과 함께
| 08_거짓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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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과 인사하고 집에 온 여주는 항상 주말에는 정국과 놀았기에 마땅히 할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뭐하지. 정국이한테 몰래 가볼까..?"
알바를 하고있는 정국에게 몰래 가서 놀래켜줄까, 생각했지만 여주는 정국이 알바하러 간 장소를 알 수 없었기에 정국과 친한 남준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하였다.
- 여보세요?
"아, 남준아.. 혹시 정국이 어디서 알바하는지 알아?
친구 대신 갔다고 했거든!"
- 알바? 그런 말은 못들었는데.. 그리고 걔한테 친구가 있었어? 맨날 여주 너랑 논다고 친구랑 연락도 안하는 애가?
정국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었던 남준이였기에, 남준이 모른다는 사실은 꽤나 뜻밖이었다.
"어.. 그래? 그럼 정국이 주변에 알바하는 사람 있어?"
- 음.. 글쎄, 모르겠어... 그런데 전정국 그 성격에 너 제쳐두고 알바를 하러가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 한번 전화 해볼게, 고마워."
- 아냐, 별 도움도 안됐는데..
나중에 정국이랑 한번 보자, 수고해~
"응, 남준이 너도!"
뚝-
"....."
남준과 짧은 통화를 끝내고, 여주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말로 정국이가 거짓말을 한걸까? 무슨 일이 있나?
여주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찼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 여주는 결국 정국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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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야"
정국의 말에 잠시 눈을 깜박이던 윤기는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며 물었다.
"박지민, 몰라?"
"뭐라는 거야, 박지민이 누군데 그래."
윤기는 자꾸만 꼬치꼬치 캐묻는 정국에 눈살을 찌푸리며 마저 따라놓았던 술을 마셨다.
"..그럴리가 없는데."
정국은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에 큰 의문을 품었다. 박지민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선을 나가라고 했던 아버지에게는 여주가 눈엣가시였을 터, 아버지에게는 뭔가를 시킬 사람이 없으니 박지민에게 이야기해 여주에게 사람을 붙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기의 반응을 보니 연기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윤기를 여주에게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
정국이 계속해서 고민하며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 회로를 돌리고 있는 사이, 술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었던 곳에서 정국의 핸드폰 벨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아.. 여보세요?"
- 정국아, 너 어디야?
"나 지금 알바하고있ㅇ,"
- 너 주변에 알바하는 사람 없다며 ..무슨일 있어?
"...아.."
"허.. 나를 이렇게 추궁하고 있을 게 아니라, 네 여친부터 좀 챙겨야겠는데."
윤기는 그 말을 하며 아까 정국의 질문으로 조금 어지럽혀진 머릿속을 숨기기 위해 정국과 함께있는 곳을 벗어났다.
"야, 잠ㄲ..!"
- 정국아?
"어 누나.. 기다려, 내가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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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햇살이 내리쬐어 블라인드로 가려놓은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방 안에서 여주는 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정국이 지금까지 한 적 없던 거짓말을 나에게 한 것일까, 고민에 빠져있던 여주는 짧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아, 왔네 정국아."
어째 정국을 평소처럼 대하기가 쉽지 않다. 혹시 정국이 자신을 믿지 못해서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응, 누나 그 내가.."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다리 아프겠다.ㅎ"
.
.
.
정국은 거실 식탁에 앉아 말없이 자신을 위한 코코아를 타고있는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많이 실망했겠지, 하는 생각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입에 테이프를 붙여놓은 것처럼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탁-
식탁에 코코아를 올려놓는 소리가 이 순간만큼은 크게 들렸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어색한 적이 있었나.
"....."
"....."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피했다. 잠시 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정국에게는 여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여주는 자신이 물어보면 정국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볼 시간 말이다.
"저기, 누나.."
어렵사리 먼저 말을 꺼낸 정국이 코코아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내가.. 거짓말해서 미안해."
정국은 여주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누구를.. 좀 만났는데, 누나한테 말하기가 뭐해서.. 거짓말, 했어.."
"누굴.. 만났는데..?"
여주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정국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이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는지, 걱정할 일이 생긴 건 아닐지, 무엇보다 정국이 자신이 괜찮은지를 알고싶었다.
"그.. 누나가 어제 그랬잖아, 카페 나가는 길에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고.."
"아.. 응, 그때 누구 있었어?"
"어.. 누나가 불안해할까봐 말 안하려고 했는데.. 민윤기라고 하는 사람이 카페 골목 쪽에서 누나가 어디로 이동했고, 나랑 있었다는 것까지 누군가한테 보고하는 것 같았어.. 처음엔 날 미행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물어보니까 누나를 따라왔다고 하더라.."
길게 쏟아지는 정국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주는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를 다른 누군가에게 보고했다는 말에 카페에서 만났던 V라는 글자가 새겨진 반지를 낀 그 남자를 떠올렸다.
"V.. 그 남자와 관련이 있을것 같은데.."
"V..? 그게 뭔데?"
"아-, 사실 그 카페에 있을 때 모르는 남자가 나한테 말을 걸었거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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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정국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일지도.
